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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내겐 그 험한 길 때문에 자전거 주행을 포기하게 했던 라오스는 버스를 타고 가도 고되긴 마찬가지다. 진흙 길에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선 어디서나 잘 자는 나도 눈을 붙이기가 힘들다. 한참을 달리다 길가에 멈추면 사람들은 옥수수밭으로 흩어져 생리 욕구를 해결하고 돌아온다. 

직선거리 140km. 길이 꼬불꼬불해 실제 거리 310km를 거의 10시간을 달려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

짐을 풀고 바로 야시장으로 간다. 잡다한 옷과 기념품을 파는 시장을 살짝 둘러보고, 늘어선 노천 식당 중 하나를 골라 스프링 롤과 바게트 샌드위치를 맥주와 함께 먹는다. 비용 절감을 위해 저렴한 로컬 음식 위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일로나는 수많은 종류의 저렴한 샌드위치에 웃음꽃이 활짝이다. 난 세 번째 라오스 방문이지만 제일 유명한 루앙 프라방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빠르게 움직였으니 이곳에서 좀 여독을 풀어야겠다.

동네 구경을 시작한다. 루앙프라방이 라오스를 대표하는 도시이긴 해도 주요 지역은 다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큼 아담한 크기다. 숙소 앞에 있는 작은 사원을 의무감에 둘러보고, 

남칸강과 메콩강 주변을 산보하듯 걷는다. 원래 그런 빛깔에 우기가 겹쳐 강물이 더 진흙 빛을 띄는 것 같다. 그 모습이 정돈되지 않은 야자나무와 각종 넝쿨과 어우러져 마치 베트남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에서 제일 큰 사원을 둘러본다. 

언제나 그렇지만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은 한 별다를 거 없는 많은 사원 중 하나일 뿐이다. 

제일 큰 걸 봤으니 사원 구경은 이것으로 마쳐야겠다. 사원 구경을 접으니 딱히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없다. 더구나 우기인 탓에 날이 너무 후덥지근해 땀이 줄줄줄 흐른다. 숙소로 돌아와 에어컨 바람에 몸을 식힌다.

저녁엔 오랜만에 회포나 풀자는 마음에 자그마치 일 인당 8,500원 정도 하는 무제한 고기 뷔페 집에 간다. 강가 옆에 자릴 잡고 폭식 시~작! 신닷이라 불리는 이 요리는 우리나라처럼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방식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에 의해, 우리나라 건설업자들에 의해 시작됐다는 몇 가지 설이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의 방식을 따라 한 것 같긴 하다. 예전에 태국 꼬창에서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 가게 이름은 아예 Korea BBQ였다. 손님이 불판을 놓고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방식은 우리나라의 영향이 있는 게 맞을 거다. 

여담으로 일로나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왜 손님이 직접 요리를 하는데 돈을 다 내야 하냐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지금은 그 한국의 고깃집 때문에 한국을 사랑한다고 하는 지경이지만… 어쨌든 음식의 원류가 우리나라든 달나라든 내겐 이 고기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선 맛집으로 소문난 모양인데, 사실 고기 맘껏 먹는 것 빼면 별거 없다. 짧은 여행이라면 굳이 찾아와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난 메통강의 일몰을 바라보며 어두워질 때까지 열심히 먹는다.

배 터지게 고기를 구워 먹고 유명한 유토피아라는 펍에 간다. 딱 늘어지기 좋은 분위기의 펍이다. 

우리도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드러누워 맥주를 마신다. 유명세만큼 맘에 드는 곳이다. 좋은 음악과 자유로운 분위기. 배도 부르고 술도 알딸딸하니 기분 좋다. 그렇게 한두 시간 늘어져 있는데, 어떤 놈이 오더니 DJ랍시고 맘에 안 드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틀기 시작한다. 에잇! 시간도 늦었고 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가게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는다. 샌드위치를 먹는 사이 달라붙은 뚝뚝 아저씨와 꽝시 폭포 행 뚝뚝 요금을 흥정한다. 꽉 채우면 10인승 가까이 되는 뚝뚝과 흥정을 하려면 같이 갈 사람을 좀 모아야 얘기가 될 텐데, 사람들이 통 보이지 않는다. 흥정의 흥자도 모르는 일로나는 아저씨의 설득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더 얹어줄 판이다. 그냥 시간 버는 셈 치고 적당한 가격에 흥정을 마치고, 뚝뚝에 올라탄다.

한 시간을 달려 꽝시 폭포에 도착한다. 입구 근처에 작은 반달곰 우리가 있다. 곰들이 나름 귀염을 떨지만 몇 주 전에 판다는 보고 온 우리에겐 성에 안 찬다. 반달곰들을 무시하고 폭포로 올라간다. 서서히 폭포가 시야에 나타난다. 푸른 빛깔로 유명한 폭포지만 우기 때는 메콩강과 다를 바 없다는 정보를 들어서 아무런 기대도 안 했는데 이거 웬걸! 영롱한 푸른 빛의 폭포수가 아닌가! 몇 층으로 나뉘어있는 폭포를 쭉 둘러본다. 여기 참 멋지다. 

구경을 마치고 본격적인 물놀이를 시작한다. 이게 그저 바라만 보는 폭포였다면 그냥 하나의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폭포가 중국에 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기본 입장료 100위안에 발만 담가도 200위안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여기는 라오스. 20,000낍(약 2,800원)의 입장료로 모든 게 해결된다. 오히려 여행객들은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일로나와 나는 작은 언덕을 오르는 트랙킹도 짜증 내지만 물놀이 하난 정말 좋아한다. 물이 좀 차지만 몸을 담그는 순간 그런 걱정은 사라진다. 열대 우림 한복판에서 푸른 빛의 물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바다와는 또 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물속에 닥터피쉬 류의 고기가 사는지 각질을 뜯어먹으려 달라붙는 게 살짝 짜증 나지만 피라냐도 아닌데 뭐.

역시나 폭포를 찾은 한국 여행자도 많다. 어디서나 한국말이 들릴 정도다. 이곳 루앙프라방 여행객의 반은 서양인, 반은 동양인이다. 그리고 그 동양인의 80% 정도는 한국인이다. 라오스가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뒤에 이렇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한국인들만 옷을 꽁꽁 챙겨입고 물놀이를 한다. 솔직히 말해 좀 답답해 보인다. 일로나도 매번 그 이유를 내게 묻지만, 낸들 아나? 남들 앞에서 몸매 드러내기가 부끄러워서 그런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엔 남자들도 윗옷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는 걸 보면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살이 탈까 봐 그러나…? 잘은 모르겠으나 왠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즐거운 물놀이를 마치고 시내로 돌아와 또 다른 유명 맛집인 15,000낍(약 2,100원) 뷔페 골목에 간다. 

뭔가 먹음직스럽게 많이 차려져 있으나 가격이 저렴한 만큼 고기도 없고, 맛도 그저 그렇다. 우린 따로 삼겹살 구이를 사서 맥주를 마신다. 그 좁은 골목 탁자에 앉아 로컬 분위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사이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대충 막아놓은 천장 함석판이 떨어지면서 물이 쏟아져 한바탕 난리가 난다. 주변 사람들은 이 현지스러운 해프닝이 신기한 듯 카메라를 들이대고 주인아줌마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 조악한 상황에 어이가 없지만, 여행 중이니 이런 것도 즐거운 기억이 될 거다.

루앙프라방에서 예정보다 하루 더 묶기로 한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그 할 일 없는 시간을 맘껏 누리기엔 적당한 곳이다. 좀 더 늘어지는 기분을 맛보려고 마사지 샵을 찾는다. 누군 태국의 마사지가 어떻고, 라오스의 마사지가 어떻고 하던데 내게 다 비슷한 마사지다. 누군가가 내 몸을 조물조물 주물러주는 게 좋을 뿐이다.

한 시간짜리 전신 마사지를 받고 그제 갔던 유토피아에 가서 강가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릴 잡고 드러눕는다. 책 좀 읽다가 인터넷 좀 하다가, 또 졸기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참 맘에 드는 곳이다. 이런 자유롭고, 너저분한 펍이 서울에 있어도 장사가 잘 되려나? 서울에 있으면 지저분하다고 할 분위긴데… 뭐든 주변 환경과 잘 맞아 떨어져야 폼이 나겠지. 

며칠 동안 잘 늘어졌다. 내일 방비엥으로 가서 더 늘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