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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6. Hokkaido, Japan (2016. 1.31 ~ 2.3)

2016. 8. 12. 02:51 | Posted by inu1ina2

눈은 안 오고 매서운 한파만 몰아치던 겨울. 일로나는 눈이 소복이 쌓인 산장의 풍경을 보며 그런 곳에 가서 하루 이틀 머물고 싶다고 얘기했다. 세르비아는 조금만 외곽으로 빠져도 그런 운치 있는 오두막이 많은 모양이다. 임신 중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인지 고국의 풍경이 그리운 게지. 오래전 올랐던 설악산 대청봉 부근에 있던 산장이 떠올랐지만,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한겨울에 설악산에 오르자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던 차에 삿포로 맥주에서 무슨 이벤트를 하길래 슬쩍 사진 몇 장 던졌더니, 운 좋게도 삿포로 여행 티켓이 굴러들어왔다.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눈의 도시 삿포로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출발 당일. 이틀 전부터 슬슬 느껴지던 감기 기운이 새벽 4시 공항으로 향하는 첫차 속에서 그 기세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일이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할 정도로 유독 감기에는 강한 체질인데, 분명 4일 전 스페인에서 감기에 걸려온 친구놈에게서 옮은 게 분명하다. 독한 감기다.

출국장에서 가이드를 만나 티켓과 일정표를 받고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오한을 느끼며 바로 잠을 청했다.

삿포로 공항에 도착해 가이드 아줌마가 흔드는 깃발을 쫄래쫄래 쫓아 투어버스에 올랐다. 공항에서 가까운 도시로 이동해 간단한 싸구려 식단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일정표에 따라 기린 맥주 공장으로 향했다. 삿포로 맥주 이벤트로 받은 티켓인데, 오늘 삿포로 맥주 견학은 꽉 차서 기린 맥주 공장으로 바꿨다고 했다. 우리 말고는 다 제 돈 내고 온 일반 여행객이라 삿포로든 기린이든 상관이 없을 터였다. 우리도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맥주 공장 제조 시설을 쭉 둘러보고 식당에서 공짜로 제공되는 기린 맥주를 두어 잔 마셨다. 새벽부터 오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감기 기운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게 고역이었지만, 맥주 맛은 참 좋았다. 몸만 괜찮았으면 한참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일본 내 여러 기린 공장 중에서도 삿포로 공장의 맥주가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여행이 끝나고 한 달 후쯤에 한국에서 사 먹은 기린 맥주에서는 그 맛이 안 났다.

공장 견학을 마치고 삿포로 시내로 이동했다. 가이드 아줌마가 두어 시간 둘러볼 시간을 줬다. 일주일 뒤에 그 유명한 삿포로 눈 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눈 조각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지만, 아직 정리가 안 돼 있고, 무엇보다 바람이 너무 매서워서 빨리 버스에 오르기만 바랄 정도로 몹시 추웠다. 대충 둘러보고 지하 쇼핑센터 같은 곳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으로는 무제한 대게찜이 포함된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대게의 품질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호텔로 들어가 목욕을 하고 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꼭두새벽부터 시작하는 일정이나 가이드 아줌마를 졸졸 따라야 하는 패키지여행이 감기 기운에 더해져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 독한 감기가 임신한 아내에게 옮을까 조마조마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은 매일 호텔을 옮기는 터라 하루쯤 일정을 젖히고 몸을 추스를 여유도 없는 게 더욱 짜증스러웠다. 하필 이때 감기에 걸려가지고…

일정에 따라 7시 반에 일어나 간단한 호텔 뷔페로 아침을 먹었다. 일상보다 두어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 불편함. 젠장. 여행이 일상보다 더 힘들어서야 원…

또 버스를 타고 한참 달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에 도착했다. 딱 단체 관광객만 오게 생긴 곳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한국, 중국의 단체 관광버스만 주차장을 매우고 있었다. 그 규모에 비해 관광객이 너무 적었고, 추위 때문인지 테마파크 안에 상점들도 대부분 문이 닫혀있었다. 

날도 좋고, 감기도 없었다면 이런 한적함을 더 즐겼을지 모를 일이긴 하지만 하여간 전혀 흥이 나질 않았다. 

대충 둘러보고, 테마파크에 딸려있는 식당에서 처음 보는 찜우동 비슷한 걸 먹었다. 나름 특이한 요리였는데, 맛있다고 할만큼은 아니었다.

다시 이동. 지옥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 갔다. 계곡 아래의 온천수에서 뿜어지는 증기가 추운 날 눈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일본엔 이런 곳이 많은 모양이다. 가이드 아줌마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 카톨릭 선교사들이 들어오던 시절,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 군주가 뜨거운 온천에 빠뜨려 처형하면서 지옥 계곡이라는 명칭이 여기저기 생겨났다고 한다. 나름 볼만했는데, 규모가 작아 좀 아쉬웠다.

다시 도야호로 이동해서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둘러봤다. 아무런 흥밋거리도 없는 호수였다. 유람선 안에 난로가 있는 게 제일 좋았다.

도야호가 칼데라 호수라 산 위로 올라 바라보니 조금 괜찮은 경치를 보여줬다. 

그것보다 반대편 들판에 쌓인 눈에 더 관심이 갔다. 일본 훗카이도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난 바로 이런 풍경을 바랐다. 기분이 조금 좋아져 세찬 바람을 뚫고 들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었는데… 사진을 보다 보니 그 눈밭에서 한번 뒹굴지도 않은 게 한스럽다. 그 역시 감기 때문에…

그 뒤엔 무슨 화산엘 갔는데, 별거 없었다.

둘째 날에는 온천 호텔에 묵어서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온천으로 향했다. 한겨울 찬바람에 머리만 내밀고 몸을 지지는 노천 온천은 정말이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최고의 한량 짓 중 하나다. 아쉬운 점이라면 혼탕이 없어 일로나와 함께 할 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임신부는 온천을 하면 안 되고, 된다 하더라도 대중탕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알몸을 훑어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일로나가 싫어한다는 것. 기회가 생기면 나중에 가족탕이 있는 료칸에나 한번 가보고 싶다.

다음 날도 역시 버스를 타고 한참 이동해 오타루시에 도착했다. 일본의 베니스라 누가 그런 헛소릴 했는지 모르는 작은 운하를 끼고 있는 아기자기한 도시다. 

이와이 순지의 영화 ‘러브 레터’의 배경이 되는 도시라고들 하는데 사실 영화 속에서 도시 장면은 별로 나오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단체 관광객들만 우글거린다. 우리는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 작은 골동품점을 겸하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난 이런 데가 참 좋다.

개인 자유여행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패키지여행의 단점은 하나 둘이 아닌데, 그중 제일 짜증 나는 게 딱 돈벌이를 위해 관광객에게만 특화된, 그 나라의 모습도 현지인의 생활도 알 수 없을 뿐만이 아닌 오히려 오해하기 십상인 그런 곳에만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포장된 곳만 둘러본 사람들은 또 마치 그곳을 다 이해한 양 말하는데, 이건 개인의 짜증 문제가 아니라 자칫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사들이 그런 걸 좀 고려했으면 좋겠다.

오타루 시내를 둘러보고 다시 온천 호텔로 갔다. 그제야 슬슬 감기 기운이 사그라들었다. 참.. 감기가 와도 이런 식으로 오고 말이야… 좀 힘이 나는지 유카타를 입고 좀 히히덕거리곤 다시 온천으로 가서 한량이 된다.

다음날 역시 그저 그런 호텔 뷔페식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향한다. 패키지여행도 패키지여행이지만 감기가 여행을 다 망쳤다. 어쩌면 앞으로 십수 년간 하지 못할 둘만의 여행이었을 텐데… 내내 골골거리는 나 때문에 일로나도 여행을 즐기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훗카이도야 가까우니 언젠가 또 올 수 있겠지…

그래도 여행은 좋다. 그것도 꽁짜 여행이라면 더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