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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Airasia X에서 취항 9주년 캠페인을 했었다. Airasia X가 취항하는 9개 나라에서 한 명씩 뽑아 공짜 티켓을 주는 이벤트였다. Airasia X와 함께 한 사연을 응모하는 거였는데, 그간의 다양한 여행경험을 버무려 나름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냈더니 덜컥 당첨되고 말았다.

상품은 공짜티켓 두 장. 당연히 우리는 쉽게 갈 수 없는, 가장 먼 취항지를 살펴봤다. 뉴질랜드가 가장 먼 취항지였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우리는 몰디브나 모리셔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보다 먼 모리셔스를 선택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아마도 저 아프리카 대륙 옆에 떨어져 있는 그 조그만 섬나라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모리셔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에어아시아 모리셔스행은 쿠알라품푸르를 경유한다. 대기시간이 자그마치 열 시간. 우리 둘만 하는 여행이라면 어디든 누울 자리를 찾아 잠을 청하겠지만

아이 때문에 호텔을 예약했다.

짐 찾고 다시 수속 밟고 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일로나는 말레이시아 입국 시 비자가 필요하기도 해서 공항 내에 있는 트랜짓 호텔을 예약했다. 선택의 여지가 사라지면 비용이 비싸진다. 시간제로 운영하는 호텔 9시간 머무는데 9만 원이 넘게 들었다. 짜증. 올 때도 이 호텔에 머물러야 한다.

어쨌든 6시간 반 걸려 도착한 쿠알라룸푸르 공항 내 푸드코트에서 오랜만에 말레이시아 음식을 사 먹는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다민족 국가는 음식이 다양해서 좋다.

그리 길지 않은 비행이었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뭐든 쉽지 않다. 인후 스케쥴에 맞춰 잠을 자고 일어난다. 탑승구로 이동.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맨 앞으로 가서 비행기에 오른다. 아기가 있으면 이거 하난 좋다.

비행기가 모리셔스 부근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작은 탄성을 내지른다. 창가 자리가 아니어서 고개를 쭈뼛 들고 바라보니 작은 창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푸른 바다 빛이 가히 예술이라 할만하다. 이런 작은 휴양지 섬들을 검색하면 상공에서 찍은 멋진 사진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풍경 사진들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여행 중에 그런 시점으로 풍경을 바라볼 기회는 거의 없으므로 상공에서 찍은 풍경 사진으로 여행지를 선택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공항 앞에서 미끼를 노리듯 달려드는 사람 중 하나와 흥정한 후 택시에 올라탄다. 버스로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놨지만, 30도 가까운 날씨에 아기와 유모차, 30kg에 다다르는 캐리어와 또 다른 배낭을 들고 로컬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휴양 개념으로 온 여행이니 비용이 좀 들더라도 편한 쪽을 택하는 게 낫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모리셔스의 풍경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푸른 하늘, 더 푸른 바다

말 그대로 자연이 느껴진다. 아마도 지금껏 방문한 나라 중 제일 좋은 첫인상이지 싶다. 여길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택시를 타고 40분가량 걸려 카우치서핑 친구 아나엘레 집에 도착한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가족들

아나엘레의 성이 Armance인데 집 앞에 있는 길 이름이 Armance Avanue이다. 아마도 이 지역이 일종의 작은 집성촌이 아닌가 싶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를 주도적으로 맞아준 아나엘레의 엄마인 미렐라 아줌마는 9명의 딸과 이곳에서 살고 있다. 넷은 친딸이고, 다섯은 입양된 딸이란다. 결혼한 딸들도 남편과 이곳에서 산다. 백 살이라는 아나엘레의 증조할아버지부터 그와 동생들의 아이들까지 5대가 함께 사는 그야말로 대가족이다.

우리에게 내준 방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

장시간 비행에 따른 여독을 풀고 동네를 살짝 둘러본다

헌데 여긴 뭐가 없다. 멀리 바다가 보이나 걷기엔 멀다. 주변엔 식당도 가게도 없다

카우치서핑으로 숙소를 구하면 간혹 이런 일이 생긴다. 뭔가 주도적으로 할 수 없고 호스트에게 모든 걸 의지해야 하는 상황. 좀 골치 아프게 됐다. 바로 해변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오늘은 여독을 푼다는 마음으로 방에서 쉬며 앞으로의 일정을 점검한다.

집 앞 정원에 나와 인후를 풀밭에 앉힌다. 인후는 아마 처음으로 풀밭에 발을 딛는 순간일 거다. 인후는 풀도 만지고 나뭇가지도 입에 넣어보려 한다. 뭔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

대가족이 모이는 저녁 시간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여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후가 인기가 좋다. 놈이 처음엔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지만 워낙 사람 안 가리는 놈이라 금방 상황을 즐긴다.

식사시간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술을 홀짝이며 노닥거리기 바쁘다. 난 안주로 나온 똥집을 먹으며 메인요리가 나오길 기다린다. 프랑스 식민지였어서 그런지 말로만 듣던 천천히 오래 먹는 프랑스식 식사를 하나 보다. 난 그저 배가 고프고 졸음이 쏟아진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시각으론 이미 한시가 넘었다. 곧 인후가 졸음에 찡찡거리기 시작한다. 우린 인후를 재우러 방으로 간다. 그리고 우리도 같이 잠이 든다.

한국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꼭두새벽에 잠이 깬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미렐라 가족은 모두 자고 있고, 우린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멍하니 그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카우치서핑의 가장 짜증스러운 상황 중 하나다. 그렇게 멍하니 두어 시간을 보낸다. 가족들이 하나둘 일어나고 미렐라 아줌마가 차려준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오늘 일정을 묻는 아줌마에게 당연히비치!’. 아줌마가 택시를 불러 그걸 타고 가게로 가서 먹거리를 좀 산 다음 아줌마가 추천하는 해변에 도착한다

~!” 

여행객도 없고, 가끔 현지인이 차를 끌고 오는, 그래서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바다는 끝내주는 해변이다.

 

멀리선 높은 파도가 치는데 중간에 돌무더기 때문인지 해안가까지는 파도가 치지 않는다. 그런 파도 때문인지, 현무암 무더기 때문인지 열대 푸른 해변이 처음이 아닌데도 뭔가 다른 느낌이다

일로나와 눈을 마주치며좋다..”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5시에 데리러 오겠다 하고 미렐라 아줌마는 가고 우린 즐길 준비를 한다. 먼저 인후의 낮잠 시간을 위해 준비한 텐트를 치고

몸에 선크림을 바른다. 그리고 바다로

평소 목욕할 때 욕조에서 첨벙거리는 걸 좋아해서 인후가 바다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앉혀놓은 곳에 파도가 넘실거리며 올라오자 무서운지 바로 손을 뻗어 안긴다

준비한 튜브에 앉혀도 징징징

계속 시도해 봤지만 바다가 썩 맘에 들지 않나 보다. 물 밖으로 나와 일로나와 교대식으로 아이를 보며 물놀이를 즐긴다.

신기하게도 물이 그리 짠 것 같지 않는데 몸이 잘 떠서 놀기 좋다. 수온도 적당하다. 정말 멋진 해변이다. 집 앞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런 풍경도 질릴까?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모리셔스 사람들이 여행 중 찍은 핸드폰 사진을 보는 모습을 슬쩍 훔쳐봤는데 죄다 고층 빌딩 사진이더라. 이들이 말레이시아 해변에서 받을 감흥 같은 건 없겠지. 어쨌든 난 이런 해변에서 엄청난 감흥을 받는다. 너무 좋다. 정말로 11시부터 5시까지 한순간도 지루함 없이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부엌이 분주하다

프랑스 여행객이 오는 날이란다. 일주일에 두 번 프랑스에서 온 그룹 관광객들이 저녁 식사를 하러 온단다. 아마도 여행사와 계약을 맺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현지 문화체험 뭐 그런 것 같다. 딸들과 아줌마들이 모여 요리하고 우린 그 모습을 구경한다. 인후는 여기저기 안겨 다닌다.

관광객들이 오고 우리도 슬쩍 그 자리에 낀다. 집에서 준비한 음식과 다양한 홈메이드 럼을 마시며 한참을 노닥거린다. 그 사이 인후는 졸음이 쏟아진다. 딸 중 하나인 아나렐이 아이를 봐준다 해서 우린 저녁밥까지 관광객들과 함께한다. 관광객들이 모두 중년의 프랑스인이라서 딱히 할 말이 없다. 아줌마들의 수다에 지루해하던 아저씨와 축구 얘길 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후는 아나렐의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다. 인후를 안고 방으로 데려온다. 식사를 마친 관광객들은 디저트를 먹고, 노래하고, 한참을 꿍짝거린다. 그사이에 우린 또 일찍 잠에 빠져든다.

매일같이 아침 시간을 낭비할 수 없고 밥 해주기를 기다릴 수도, 택시를 타고 해변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이곳을 떠나려 한다. 사정을 말하자 미렐라 아줌마가 뜨루도듀스 해변 근처에 빈 스튜디오 아파트가 있다며 원하면 그곳에 머물러도 된다고 한다. 모리셔스의 숙소 가격이 만만치 않고, 뜨루도듀스도 나름 유명한 곳이라 기쁜 마음으로 호의를 받아들인다.

아침부터 내리는 빗속에서 택시를 타고 뜨루도듀스에 있다는 스튜디오로 간다. 젠장작은 스튜디오라더니 정말 작다

일로나도 나도 숙소에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애와 애에 딸린 짐이 많아서 기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창문에 모기장이 없어서 문을 열어놓으면 모기가 들어오고 닫아놓자니 선풍기밖에 없는 방이 너무 덥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선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간다. 여긴 나름 시내라 식당과 가게가 있긴 하다. 헌데 식당이 다 닫혀있다. 간신히 문 연 식당을 하나 발견해 들어간다. 주인 왈 11시에서 2시까지 점심, 5시 반에서 9시까지 저녁, 보통 그 시간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열대 섬나라 사람들의 여유로움이란

인도 스타일 식당에서 인도 스타일 중국요리로 밥을 먹는다

시내라는데 딱히 볼 건 없는 동네다.

밥을 먹고 해변으로 간다. 어쨌든 이곳에 온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변이니까. 어제 너무 좋은 바다를 본 걸까? 해변에 도착한 우리는 또다시 한숨을 쉰다. 물 때깔도 주변 환경도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날씨가 흐려 더욱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우선 자리를 펴고 앉아서 한참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 후 결심한다

내일 일찍 블루베이로 이동하자.

애초 계획은 카우치서핑을 통해 동쪽 바다에서 놀고, 북서부의 뜨루호비쉬로 가서 놀고, 마지막에 공항에서 가까운 남쪽 블루베이에서 노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차를 렌트해 구석구석 돌아보기도 하고더 애초의 계획은 모리셔스 가는 김에 마다가스카르도 가보자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게 얼마나 어림반품어치도 없는 소리였는지아이를 위한 장난감, 분유, 젖병, 이유식, 기저귀, 여러 벌의 옷 등이 배낭에 다 들어가지 않아 큼직한 캐리어에 짐을 싸는 순간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돌도 안 지난 애와 여행을 한다면 그냥 좋은 지점 하나 찍고 거기서 주구장창 늘어지는 게 최고라는 걸. 모리셔스는 처음이고 다시 올 일도 없을 것 같아 괜한 욕심에 너무 배낭여행 식 계획을 짰다. 오자마자 바로 떠나는 게 이곳에 숙소를 제공해준 미렐라 아줌마에겐 좀 미안하지만, 이쯤 되면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왔으니 몸이라도 잠시 담갔다가 코딱지만한 숙소로 다시 돌아온다. 침대가 작아 난 딱딱한 타일 바닥에 수건 하나 깔고 눕는다. 오랜만에 자전거 여행할 때 잠자리가 떠오른다. 그때는 매트라도 있었다. 태어나서 접해본 가장 딱딱한 잠자리가 아닐까

카우치서핑을 하다 보면 좋은 집, 좋은 주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주인은 좋은데 집의 위치나 잠자리가 별로인 경우도 많다. 그 어떤 경우라도 로컬과의 만남이 즐거워 카우치서핑을 고집하지만 애와 함께하는 단기 여행으론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인후처럼 돌도 안 지난 아이라면 더욱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거운 짐을 싣고 블루베이로 향한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나라는 죄다 2차선 도로라 어디든 시골길을 달리는 것 같고, 주변 풍경이 참 좋다. 차를 렌트해 돌아다니면 참 좋을 것 같다. 난 진작에 접었지만

도로 밖을 바라보면 어디든 사탕수수밭이 펼쳐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택시 기사가 말하길 모리셔스는 설탕을 많이 만드는데 정작 자기들은 남아공에서 설탕을 수입해 먹는다고 한다. 그게 더 싸다고. 말인즉 모리셔스 설탕이 질이 더 좋아 다 수출을 한다는 얘기. 아니면 아직도 프랑스에서 다 걷어가거나. 사실 이런 열대 나라에선 뭐든 잘 자라기 때문에 과일과 채소가 싸야 정상인데 모리셔스는 그렇지 않다. 과일, 채소 상태도 썩 좋지 않다. 작은 섬나라인 점을 감안해도 상품용이 아닌 집에서 소규모로 수확해 파는 느낌이랄까? 식민지 플랜테이션 때문에 사탕수수만 기를 수밖에 없었던 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걸까? 택시 기사는 품질 좋은 설탕을 자랑하고 있지만 난 그런 모리셔스의 상황이 좀 씁쓸하다

택시 아저씨와 그렇게 노닥거리는 사이에 예약해둔 숙소 앞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