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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그렇게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 년 중 최고 성수기인 여름 휴가 시즌에 비행기를 타는 건 처음이다. 그나마 7월 중순이라 나름 저렴한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8월 초, 중순의 비행기 값은 정말 어마어마하더라.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 휴가가 대부분 이때 몰려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주로 비수기를 노리고, 숙소 선택도 까다로운 편이 아닌 데다가 현지 음식을 잘도 먹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휴가 비용과 나의 여행 경비는 차이가 크다.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 놈이 잘도 여행을 다니는 걸 보며 팔자 좋다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보통 한국 사람은 벌이보다 휴가가 짧기 때문에 그 짧은 휴가에 큰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고, 난 반대의 경우이기 때문에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쓰는 것뿐이다. 

좀 덜해졌지만, 그렇게 큰 비용을 들이니 해외여행이 선뜻 다가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일주일이상 휴가를 보내보자 하면 비행기 값을 포함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동남아 쪽에서 노는 게 더 저렴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생각이 아니라 경험이 그렇다.

왜 이런 얘기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번엔 베트남 호이안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다낭이 요즘 많이 입에 오르내리던데 아무래도 다낭엔 볼 게 없는 것 같아서 바로 호이안으로 갈 생각이다. 자전거 여행할 때 호이안에 머물긴 했지만 벌써 7년 전이고, 난 간 데 또 가는 것도 상관없다. 그리고 경험상 아이를 데리고 움직이는 건 피해야 할 일이기에 8일간 내내 호이안에만 있을 거다. 바닷가였으면 좋았을 테지만 베트남의 바다는 그리 땡기지 않아서 그냥 수영장에 있는 숙소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7년 전에 묵었던 숙소에 또 묵게 됐다. 

서두가 길었다. 그리하여 밤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떠난다. 자정 무렵에 도착하는 비행기라 공항에서 가까운 싸구려 숙소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움직일 생각이다. 도착하고 출국 수속받고 나왔더니 새벽 1시가 됐다. 택시를 타고 숙소 근처에 갔더니 호스텔 사람이 나와서 하는 소리가 예약한 방의 전기 시설이 고장 나서 묵을 수가 없다. 대신 아는 한국인이 있다며 그 집에서 자면 된다고 한다. 새벽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고 잠만 자고 떠날 계획이어서 아무 말 않고 따라나선다. 아이를 데리고는 카우치서핑이 힘들겠다 싶어 알아보지 않았는데 본의 아니게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늦은 시각이라 집주인 내외분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2, 3층 집들이 늘어선 주택가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수탉 소리에 잠에서 깬다. 주인 내외분이 사다 준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와 인후를 위한 죽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주인분들은 일산에 살다가 한 달 전쯤 이곳으로 이주하셨단다. 여행을 왔다가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는 거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 둘이 있었는데 역시나 교육과 직업이 가장 큰 문제인가 보다. 그래도 이주 한지 한 달 밖에 안 지나서 아직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인다. 

아침 식사 동안 주인 내외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와 동네를 한번 둘러본다.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주택가라 조용하고 볼 것도 없다.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커피나 한잔 마시고 돌아온다.

어제 이곳을 소개해준 호스텔에서 불러준 차를 다고 호이안으로 간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어 세팅하고 수영장으로 간다. 역시 더운 나라에선 물놀이가 최고다. 인후도 이제 제법 물놀이를 즐긴다. 솔직히 아이가 칭얼거리면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 그것이 애 데리고 다니는 부모의 운명이다.

물놀이하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날이 너무 더워서 대충 눈에 보이는 시장 한쪽 식당에 자릴 잡는다.

베트남에 왔으니 물어볼 것도 없이 쌀국수를 시킨다. 주방을 보니 육수통이 없어 아차 싶었는데 양도 너무 적어 짜증이 난다. 아줌마가 인후랑 놀아준 덕에 그나마 편히 국수를 먹을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줄. 해가 지고 나서 움직이는 게 좋겠다 싶다. 인후가 아직 하루 두 번 낮잠을 자는 터라 때에 맞춰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해가 지고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올드타운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럴싸한 조명이 여기저기 켜져 있다. 중국의 리장과 비슷한 면이 있다. 또 그만큼 거리가 관광객으로 가득 차 유모차를 끌면서 걷기가 쉽지 않다. 

첫날이고 하니 유명하다는 식당에 간다. 사람들로 시끌벅적. 구석에 한자리를 얻고 앉는다. 그리고 재앙이 시작된다. 평소에 얌전히 잘 있던 인후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몸을 비틀며 울어 재끼는데 도대체 뭘 해도 그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 슬슬 자의식을 갖추기 시작하는지 혼자서 뭘 하려 하고, 왕성한 호기심을 내보이던 차였다. 대충 음식을 고르고 음식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놈이 얼마나 짜증인지, 이런 적이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스럽다. 구석에 데리고 가서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다.

놈은 식당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고 싶을 뿐이다. 말마따나 음식이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마음속에 참을 인을 새기며 간신히 이겨낸다. 

그런 상황에서 가게 유명세에 맞지 않는 맛대가리 없는 음식이 나와 짜증이 배가 된다. 대충 깨작거리다가 서둘러 애를 데리고 나온다. 기분 좀 내겠다고 한국에서도 외식하기 충분한 돈을 썼는데 완전 엉망진창. 문제는 앞으로 남은 기간 우리가 식당에 앉아 아무 탈 없이 밥을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불어 이 여행을 과연 즐겁게 끝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7년 전 묵었던 숙소를 다시 찾은 건 흔히 말하는 가성비가 좋았던 기억 때문이다. 특히 조식이 훌륭했다. 그땐 한창 굶주렸을 때라 조식 뷔페를 서너 번씩 접시 가득 채워 먹었었다. 그런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양과 질이 모두 떨어졌다. 3만 원대 리조트에 뭘 더 바라느냐마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 조금 실망이다. 

식사 후 수영장에서 좀 놀다 인후 낮잠 시간에 맞춰 들어와 좀 쉰다. 한 시간 후 일어난 인후를 데리고 산책에 나선다. 

아~ 너무 덥다. 조그만 걸어도 땀이 주르륵주르륵. 뜨거운 햇볕을 피하려는 순간, 한 아줌마가 베트남 모자 논을 팔려길래 햇볕도 가릴 겸 베트남 여행 기념 겸해서 두 개를 산다. 

햇볕은 좀 가려주는 것 같긴 한데 덥긴 마찬가지다. 

올드타운 내 여기저기 들어갈 수 있는 종합티켓 같은 걸 사서 사원이니 옛날 집이니 하는 곳을 구경한다. 딱히 볼만하다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으니 그냥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일본 다리에 가서 사진 좀 찍고 돌아온다.

오면서 먹을 걸 좀 사서 숙소에서 밥을 먹는다. 어제 경험 이후로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서 밥 먹긴 틀렸다는 생각이다. 그냥 맘 편하게 방에서 먹는 게 낫지 싶다. 

밥을 먹고 다시 수영장에서 놀면 곧 인후의 2차 낮잠 시간이 찾아온다. 인후가 한숨 자고 일어나면 또 금방 저녁 시간이 찾아온다. 역시 방에서 먹는 게 낫겠다 싶어 나 혼자 밥을 사러 나간다. 여긴 너무 관광지화돼서 가게는 작지만 구석 큰 솥에 육수를 내어 파는 제대로 된 쌀국수집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면 분짜가 낫겠다 싶어 가이드북에서 유명하다고 소개하는 식당에 간다.

이런… 많은 네이버 블로그에 소개된 식당이라는 걸 고려했어야 했는데… 작은 식당에 한국인들로 가득 차 있는 것도 모자라 마치 한국에서 소문난 맛집처럼 열댓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두 집 건너 사람이 덜한 식당이 있어 그곳에서 분짜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온다 .

맛있는 분짜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숯불 향 가득한 고기 경단인데, 포장해온 분짜는 경단 하나에 그냥 고기가 섞여 있다. 맛집이 아니라서 그러나… 그래도 첫날 먹은 포보보다는 그나마 먹을만했다. 뜨내기를 상대하는 식당이 그렇듯 여행객 가득한 호이안은 물가는 비싸고 맛은 시원치 않다. 조금 짜증 날라 그런다. 

낮엔 너무 더워서 아침 먹고 일찍 산책에 나선다. 

그래도 덥긴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좀 낫고, 무엇보다 사람이 없어 올드타운스러운 한적함을 즐길 수 있다. 

정처 없이 여기저기 걷다가 어제 갔던 카페에 가서 여유로운 여행객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의자가 넓어서 인후가 답답해하지 않아 칭얼거림이 없다. 

실내에서 선풍기 바람 맞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좀 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30도가 훌쩍 넘어가는 날씨인데 이 동네는 에어컨을 켜는 가게가 통 보이지 않는다. 여행지라고 물가는 엄청 높이고는 시설은 그에 걸맞지 않아 괘씸한 마음이 든다. 

베트남은 구석진 지역에 가더라도 외국인에겐 더 높은 금액을 요구하곤 한다. 그게 애교 수준이라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호이안은 그 정도가 심하다. 일례로 오늘 나와 일로나 인후의 코끼리 바지를 하나씩 샀다. 그러니까 큰 거 두 개랑 아기 거 하나. 바지 하나에 220,000동(약 11,000원) 부르는 걸 다 해서 200,000동(10,000원) 아니면 안 산다 했더니 흥정을 시작하려 길래 그냥 돌아서 나간다. 그랬더니 20m 정도 가격을 낮추면 쫓아오다 결국 그 가격에 주겠다더라. 난 흥정하는 게 귀찮아 그냥 적당하다 싶은 가격을 부르고, 그 가격에 안 주면 흥정 없이 그냥 돌아선다. 기어이 따라 나와 잡은 거 보면 더 깎을 여지가 있었을 거다. 무늬가 이쪽 패턴일 뿐 몸빼바지랑 별 차이도 없다고 생각하면 그 가격도 비싸다. 우리나라 시장에 가도 몸빼 바지는 3~5천 원이면 산다. 물가가 서너 배 낮은 곳이니 1~2천 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 동넨 물가가 너무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싸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어느 백반집에서 스위스 여행객에게 물 500ml 한 통을 5천 원에 팔았다면 그렇게 파는 가게도 문제지만 그렇게 사고 스위스보다 싸다고 좋아하는 그 사람은 또 뭔가? 그러고선 [한국의 정식을 15,000원에 먹고 생수도 5,000원에 삼. 한국 물가 완전 쌈.] 이란 코멘트와 함께 (나 호구에요 하는) 즐거운 표정의 사진을 자랑하듯 블로그나 SNS에 올리면 그거참 딱한 노릇 아닌가?

여하튼 우린 다시 배가 고파 유명하다는 반미집에서 한참을 기다려 반미 두 개를 사고, 다른 식당에서 인후 밥 될만한 걸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애가 크기 전까진 분위기 잡고 밥 먹고 하는 건 포기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