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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과 호이안을 벗어나 좀 돌아다니고자 하면 또 여기저기 볼 게 많을 테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우리는 다른 건 포기하고 미선 유적지만 돌아보기로 했다. 그것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여행 왔는데 뭐 하나는 봐야 하지 않겠냐는 괜한 의무감이 있으니까. 

미선 투어는 한나절 투어라 보통 아침 일찍 출발해 점심에 돌아온다. 우리도 일찍 일어나 왕복 차편에 가이드 딸린 그룹투어 버스에 몸을 싣는다. 돌아올 때 점심 딸린 보트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점심이 형편없어 보이고, 보트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우리는 그냥 빨리 오는 버스를 신청했다. 

한 시간 정도 달려 미선 유적지에 도착한다. 조금 걷고, 셔틀 차 타고, 다시 좀 걸으니 폐허가 된 유적지가 나온다. 

뭐 딱히 볼 건 없다. 이곳을 건설했던 참파 왕국이 2세기경에 시작된 왕국이라 최소 1,500년인 고대 유적인 걸 고려하고 꼼꼼히 둘러보면 그냥저냥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한데, 땅이 안 좋아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가 없어 아기띠를 매고 다니려니 그렇지 않아도 더워 죽을 것 같은 날씨에 땀이 줄줄줄 샌다. 유적에 생긴 작은 그늘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관리를 잘 안 하는지 건물 한쪽 구멍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들이 있다. 이곳에서 낳지 싶다. 천년이 넘은 유적지에서 개가 새끼를 낳는다는 게 참… 

어쨌거나 무지하게 더운 날씨에 애 안고 다니느라 너무 힘들다. 우리도 우리지만 애는 무슨 고생인가. 기억이나 할는지. 다시 한참을 달려 숙소로 돌아온다.

햇볕 내리쬐는 한낮엔 에어컨 나오는 방이나 수영장에서 노는 것 이상 없다. 솔직히 수영장에서도 애랑 놀아주느라 비치 배드에 누워 책이나 읽을 여유 부릴 한가함 같은 건 없다. 그래도 적어도 시원하게 물속에 있으니까…

저녁엔 숙소 식당에 간다.

숙소 식당에 사람도 없고 아기 의자가 있어서 인후 밥 먹이기가 좀 수월하다. 

밥을 먹고 산책 좀 하려 했더니 인후 놈이 스파게티 소스로 거의 세수를 하다시피 해서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목욕하고 에어컨 바람을 좀 쐬고 있으니 왠지 다시 나가기가 귀찮다. 시간도 많으니 오늘 할 산책은 내일로 미루자. 

보통 한 여행지에서 3~4일 지나면 일과가 대충 정해진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나 쥬스를 마시고 돌아와서 인후 낮잠. 일어나서 좀 있다 점심 먹고 수영장 가서 놀고 다시 인후 낮잠. 잠시 쉬다 저녁 먹고 저녁 산책. 이런 일정이 만들어졌다. 이래서 웬만히 멋진 곳이 아니면 3~4일 정도 있다가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여행을 선호한다. 하지만 아이가 배낭을 멜 수 있기 전까지는 한 곳을 정하고 계속 머무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부모의 여행.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보내던 차에 인후가 갑자기 설사를 하고 기저귀 발진이 일었다. 앉기를 버거워할 만큼 아픈가 본데 이런 상태면 모레 비행기를 어떻게 탈지 걱정이다. 게다가 배꼽도 빨개지며 살짝 튀어나온 게 염증이 생긴 것 같다. 간지러운지 계속 긁으려고 한다. 약국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보지만 늦은 시간이라 문 연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리조트 리셉션에 물어보니 간단한 상비약이 있다. 과산화수소와 거즈를 받아와서 간단히 배꼽 소독을 해준다. 기저귀 발진이 거의 없었는데 하필 이런 상황에서… 아마도 잦은 설사 때문인 것 같다. 일로나는 망고 때문일 거라 하는데 시장통 가게에서 음식을 사다 먹으니 인후의 면역체계로는 아직 버거울 수도 있다. 금방 나아져야 할 텐데…

여행을 떠나기 전 이스탄불에서 만났던 친구가 베트남 여행을 떠난다고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호이안에 올 계획이 있으면 만나자고 했었다. 어제 호이안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길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다.

사파는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친구다. 그땐 대학 초년생으로 같은 학교 친구 네 명이 한 집을 구해 같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서 거의 3주를 같이 지내며 근처 자취생들과도 어울려 놀고, 인생 선배(?)로서 술 잘 먹지 않는 무슬림에게 술도 가르쳐주고 했었다. 그땐 애 같았는데 이젠 좀 남자 느낌이 난다. 

터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취업이 쉽지 않은지 터키에서 손꼽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고향에 내려가서 취업준비를 하고 얼마 전에 취직해서 출근이 시작되기 전에 여행을 떠난 거라고 한다. 파일럿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터키 항공에서 2년간 월급 주며 교육을 해주는 코스가 있다고 한다. 대신 나중에 월급에서 교육비를 조금씩 까는 방식이라는데 어쨌든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5년 전 잠깐 만난 타국의 친구와 이렇게 다시 만난다는 건 참 특별하다. 내가 지금 통풍이 도져서 술 한잔 같이 못 한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다음에 또 어디에선가 만나길 바라며 짧은 만남을 끝낸다.

인후는 기저귀 발진이 좀 나아졌는지 어제보단 움직임이 자유롭다. 그래도 아직 사타구니 주변의 피부가 벌겋게 올라와 있어서 오늘은 수영장에도 가지 않고 계속 숙소에 머문다. 

저녁에 항상 가는 식당에서 밥 포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다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쌀국수 전문집을 발견한다.

쌀국수야 후딱 한 그릇 말아주기 때문에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한 그릇 시켜본다. 가격은 역시나 비싸나 맛은 다시 찾을만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와서 제대로 된 쌀국수 한 그릇 못 먹고 가다니…

인후 상태가 많이 나아진 것 같아 저녁에 마지막으로 산책에 나선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한 커피 전문점에 들른다.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 똥으로 만든 루왁은 들어봤는데, 베트남 샤향족제비 똥으로 만든 위즐이란 커피는 처음 들어봐서 호기심에 좀 샀다. 무엇보다 가격이 살만했다. 한국에서 루왁커피 한 잔에 몇만 원씩 하는데 1등급 위즐원두를 100g에 7,500원에 파니 말이다. 루왁은 100g에 10,000원에 판다. 들어왔던 명성에 맞는 금액이 아니라 커피 품질은 반신반의하지만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커피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므로 경험 삼아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호이안의 거리는 알록달록 등불에 거리 분위기가 좋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사람들로 북적이고, 물가는 올라간다. 7년 전엔 한적하고 좋았는데… 어디를 가던 그 전에 방문했던 때보다 나은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같은 곳을 또 방문하면 ‘옛날에 좋았는데...’라는 노친네 발언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도 동반자가 다르니 이곳에 대한 기억을 다르게 새겨질 거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달린 택시가 다낭에 도착한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새벽이라 하는 수없이 그때까지 기다릴 숙소를 다낭에 잡았다. 다낭 느낌이라도 받으려고 해변 옆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짐을 풀고 바닷물에 몸이나 적셔볼까 싶어 나간다. 

다행히 숙소가 해변 끝자락이어서 사람이 없어 좋다. 저 멀리 보이는 중심가는 과연 해외 나온 보람이 있을까 싶게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여긴 물 때깔도 엉망인데 왜 이리 사람이 많은지… 

솔직히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다낭은 여행자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코딱지만큼도 없다. 굳이 하나를 찾자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해변에 늘어선 고급 리조트들 정도다. 여유 있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그런 고급 리조트에서 여유 있게 대우받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근데 그것뿐이다. 남쪽에 호이안, 북쪽에 후에가 아니면 다낭 공항을 이용할 이유를 못 찾겠다. 어쨌거나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호이안에서 다낭으로 오는 내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해변엔 수많은 리조트가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럼 더 많은 사람이 찾게 되겠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하며 해변을 좀 걷는다. 

저녁이 되자 호텔 카페에서 작은 재즈 라이브가 펼쳐진다.

호텔 이름이 재즈 호텔이더니 역시나, 주인이 재즈를 좋아하나 보다. 한데 곡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일부러 재즈공연을 보러 찾아올 정도의 라이브 카페는 아니기에 손님의 취향을 고려하는 건 알겠지만, 재즈 공연을 하려면 진짜 재즈를 연주하면 좋겠는데, 이런 곳엔 항상 스탠다드 팝을 재즈로 연주하는 식이다. 그게 참 맘에 들지 않는다. 연주를 좀 듣다가 방으로 돌아와 짐을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