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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도착한 프놈펜 공항.

올해 7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는 온라인 도착카드 시스템을 11일부터 테스트 운영한다기에 출발 전 온라인으로 작성을 하고 QR 코드를 프린트해왔다. 도착 비자를 받기 위해 프린트해온 QR코드를 내밀자 이건 뭐냐는 듯 고개를 젓는다. 출국 전 캄보디아 대사관에 물어봤을 땐 처음 듣는 얘기라며 알아보고 연락해준다고 하더니 국가 제1관문에서도 이런 식이라니. 나라 시스템이 이렇게 돌아가서야. 결국 하던 대로 출입국카드를 수기 작성하고 도착 비자를 받는다.

예약해둔 숙소에서 보낸 뚝뚝을 타고 숙소로 간다. 내일 아침 바로 씨엠립으로 갈 예정이어서 프놈펜 시내로 가지 않고 공항 근처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잡아놨다. 공항 근처 호텔은 죄다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평판이 좋지 않았다. 방에서 담배 냄새가 심하다느니 무례하다느니 등등. 아마도 본인들 나라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나 보다. 다행히 현지인이 운영하는 평판 좋은 저렴한 숙소를 발견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곤 한다. 현지의 관습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20~30분 늦는 건 기본인 나라에서 시간을 지키려 노력한다거나, 웃돈이 당연시되는 나라에서 정가를 제시한다거나, 기본적인 청결을 위해 애쓰는 것 등.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은 자연스레 신뢰가 간다. 예약한 숙소의 주인에게서 그런 느낌이 났다. 작은 게스트하우스지만 공항에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 하룻밤 보내기엔 딱 좋은 숙소다.

카페를 겸하는 숙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씨엠립으로 향한다. 340km 정도 되는 거리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여서 6시간이나 걸리는 길이다. 왕복 2차선, 즉 편도 1차선 도로에 각종 운송수단이 움직이니 그 속도가 달라 반대 차선을 통해 앞차를 추월하곤 한다. 양쪽에서 그렇게 역주행을 해대니 가끔 불안한 상황이 연출된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충돌사고라 위험이 크다.

착해 보이는 택시 기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이쪽 사람들의 영어는 알아듣기가 힘들다.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베트남, 태국 모두 영어단어의 마지막 발음을 안 하는 경향이 있다. massage를 마싸, rice를 라이, wife를 와이. 이런 식으로... 그러다 도로에서 바게트 파는 아줌마를 보고 문득 든 생각이, 한때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지 삼았던 프랑스의 영향으로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은 불어의 규칙을 영어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건 씨엠립에서는 앙코르와트보다 건물이 높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어서 4층이 넘어가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보이는 한자가 이곳도 중국의 자본이 상당히 들어온 것 같은데 이 자본의 힘이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존심을 언제 무너뜨릴지 자못 궁금하다.

6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한다.

다운타운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다. 방갈로 형태의 숙소가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아이들 데리고 수영장 왔다 갔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게 참 귀찮은 일인데 넓은 테라스에서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방갈로가 참 마음에 든다.

비행기 6시간, 하룻밤 자고 택시 6시간 타고 오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수영장을 보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이란...

잠시 물놀이를 한 후 숙소 주변을 둘러본다. 중심가가 아니어서 뭐 볼 건 없는데 그런 만큼 가게의 물건값이 관광지가 아닌 로컬의 가격이다.

큼직한 망고와 작은 수박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다시 휴식. 씨엠립은 앙코르 유적 관광이 여행의 처음과 끝이어서 다른 할 일이 없다.

날이 어두워지고 근처 길거리 꼬치 집에서 산 닭꼬치와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는다.

내일부터 앙코르 관광을 시작한다. 난 이번이 세 번째라 큰 감흥은 없지만, 아내가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 반대 의사를 표할 필요가 없었던 훌륭한 볼거리이기도 하니 다시 한번 그 경의를 즐겨봐야겠다.

예약한 시간에 차려진 아침을 먹는다. 이곳은 조식이 뷔폐가 아니라 일반식인데 레스토랑이 따로 없어 테라스 식탁에 차려준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음식을 차려줘서 뭔가 좀 대접받는 느낌이다.

아침을 먹고 뚝뚝을 타고 앙코르와트로 향한다.

먼저 티켓 파는 곳으로 간다.

씨엠립에는 20년 전, 14년 전에 왔었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 우선 큰 도로가 눈에 띈다. 쭉쭉 뻗은 대로가 여기저기 깔려있다.

예전엔 작은 시골 마을 느낌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느낌이 난다. 티켓 판매 건물을 따로 지어놓은 것도 그렇고... 앙코르와트도 바로 앞까지 툭툭을 타고 갔었는데 이제는 긴 진입로가 생겼다초입부터 아이들은 걷기 힘들다고 투덜투덜.

한참을 걸어 들어가 앙코르와트에 들어선다.

뭐 당연히 예전 모습 그대로다.

가족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자 나름 공부를 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냥 적당히 사진 찍고 적당히 둘러본다.

앙코르와트가 앙코르 유적군의 주요 유적 중 하나지만 그 역사적 의미에 관심이 없다면 솔직히 그 규모나 상징성에 비해 큰 매력이 있진 않다.

어쨌든 코스대로 쭉 둘러본 후 호텔로 돌아온다.

우리는 3일권을 끊었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봐 남들 하루 코스를 3일로 나눠 보기로 했다. 여느 여행처럼 오전엔 구경, 오후엔 호텔에서 휴식이다.

점심을 먹고 수영을 한 뒤 아이들은 놀게 놔두고 나만 혼자 나와 동네 구경을 한다.

역시나 예전 기억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저 여행객 위주의 상점들만 즐비하다. 씨엠립은 앙코르라는 위대한 유적을 품고 있지만, 그 외 소소한 볼거리는 거의 없다. 뭔가 점점 커지고 도시화하는 건 알겠는데 그 안에 들어갈 콘텐츠 개발에 힘을 더 쓰면 좋겠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호텔 매니저가 케잌을 들고 온다. 아내의 깜짝 생일 축하. 난 원래 음력 생일을 세는데 아내가 헷갈려해서 언젠가부터 양력으로 하자고 했지만 내가 그걸 깜박깜박해서 오늘이 내 양력 생일인 줄도 몰랐다. 언제나 깜짝 선물은 그 기쁨이 배가 되는 법.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2일 차 코스인 앙코르톰으로 향한다.

어제 앙코르와트에서 재미를 못 느꼈던 아이들은 출발부터 재미없는 표정이 한가득이다.

앙코르톰 입구에서 툭툭이 멈춘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와 고프라를 구경한다.

언제나 같은 코스. 여기서 코끼리로 이동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코끼리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뚝뚝을 타고 바이욘으로 간다. 앙코르 유적의 3대 볼거리 중 하나이고, 앙코르톰의 핵심 유적지인 바이욘. 다시 봐도 신비롭다.

아이들 때문에 바이욘 둘레의 부조상을 즐길 여유는 없어서 바로 위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런... 바이욘의 정수인 사면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막혀있다. 2020년부터 보수공사를 진행하느라 막아놨다고 한다.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인데... 씨엠립 방문 이유의 10% 정도는 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작업 속도로 봐선 10년 이내에 다시 개방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쉬운 대로 주변에서 위를 바라보며 바이욘 구경을 끝낸다.

우리의 발걸음은 바푸온으로 향한다. 쭉쭉 솟아오른 나무숲 덕에 그늘로 다닐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굳이 그늘을 찾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햇살이 뜨겁지 않다. 내 기억에 앙코르 유적 관람은 찌는 듯한 더위와 뜨거운 햇볕과의 싸움이었는데 이곳의 기후가 변한 건지 1월이라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기에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착한 바프온은 앙코르와트 3층처럼 12세 미만 아이들은 올라갈 수 없다 하여 아내만 올라 갔다 온다. 나는 귀찮아서 안 오른다.

길을 따라 걸으며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를 본다. 역시 그 모습 그대로...

호텔로 갈까 말까 하다 뭔가 아쉬워 마지막 코스로 프레아칸으로 향한다.

사람이 거의 없어 그늘진 나무 길 사이로 걷는 느낌이 좋다.

프레아칸 입구에서 잠시 쉰다. 바람소리, 새소리, 지뢰희생자들의 음악 소리가 자연과 오래된 유적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그 느낌이 충만한 곳이다.

프레아칸은 규모는 큰데 복원이 거의 안 돼 있고 멀리서 조망하기 힘들어 뭐 딱히 볼 건 없다. 군데군데 붕괴된 곳을 잘 찾으면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을 듯하지만 억지로 따라다니는 아이들과 구석구석 돌아다니긴 힘들어 그냥 나온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으로...

나름 생일 분위기를 내 보고자 스테이크를 시킨다. 역시나 질기고 질긴 얇은 소고기지만 그래도 고기니까...

3일 차의 목적지는 전쟁박물관이다. 씨엠립에 머무는 나흘 동안 사흘은 앙코르 유적을 보고 하루 비는 오늘은 어디 갈까 하다 고른 곳이다. 처음엔 컬쳐빌리지란 곳에 가려다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가 없을 것 같아 무료로 갈 수 있는 근처 전쟁박물관을 골랐다.

툭툭을 타고 가는데 무슨 인적없는 흙길로 방향을 틀길래 얼마나 볼 게 없으면 이런 외진 곳에 있나 싶은 찰라, 볼품없는 대문을 지나 구경꾼이 아무도 없는 박물관에 도착한다.

공짜로 알고 있었는데 성인은 5달러라 해서 기분이 살짝 안 좋다. 뭔가 전시물이 있어야 할 건물은 없고 뒤뜰에 망가지고 녹슨 전차와 장갑차 곡사포들이 펼쳐져 있다. 전시물 관리를 전혀 안 하는 듯해서 부담 없이 탱크에도 올라보고 함부로 건드려본다.

한쪽에 지뢰 경고문이 있는데 이게 하나의 전시물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없어서 쉬 둘러보긴 좋다. 아이들은 앙코르 유적보다 여기를 더 재미있어한다. 내전 중에 버려진 무기를 주워와 모아둔 듯한 총기류 코너에서 함부로 총을 갖고 놀아본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온다.

마지막 날. 4:40분에 기상. 씨엠립에 올 때마다 보는 앙코르와트 일출 코스. 사실 별 볼 것도 없는데 안 본 사람은 꼭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코스다. 졸려 하는 아이들을 툭툭에 태우고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앙코르와트로 간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해가 떠오르길 기다린다. 한 시간쯤 기다렸는데 날만 밝아지고 해는 보이지 않는다.

앙코르와트에서 한참 떨어진 숲 뒤로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20년 전에는 앙코르와트 뒤편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봤었는데. 1월엔

굳이 일출을 보러 앙코르와트에 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생애 첫 일출 구경을 기대했던 아이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앙코르와트를 빠져나온다.

보통 앙코르와트 일출 코스를 보고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우린 바로 따프롬으로 향한다.

따프롬이 워낙 인기 있는 곳이어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아침 일찍 가면 관광객도 별로 없고 햇살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710분쯤 도착해 7시 반 개방시간까지 기다린 후 따프롬 사원으로 간다.

역시 인적없는 앙코르 유적지는 분위기가 참 묘하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이의 느낌이 이랬을까? 미로 같은 폐허 속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상황마저 신비롭다. 일찍 오길 잘했다. 이번 앙코르 투어의 최고 수확이다.

오늘 씨엠립을 떠나는 날이 아니면 이곳에서 더 헤매고 싶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앙코르와트의 역사에 관한 책을 두어 권 읽었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리야바르만 2세 때가 첫 번째 전성기, 참파족의 침략을 격퇴하고 제2의 전성기를 연 자야바르만7세가 앙코르톰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을 지었고, 너무 많은 건설비용 때문에 국고를 탕진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다 아유타야 왕국에 의해 멸망한 역사.

텍스트로 입력된 역사 공부는 쉬 잊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현장답사가 동반되고 예전 베트남 호이안 여행 때 봤던 참파족의 유적지인 미선,

그리고 태국 아유타야

이렇게 이전에 둘러봤던 유적지와 연결되면서 보다 선명하게 머릿속에 새겨진다.

불교국가였던 아유타야의 몇몇 사원에서 인도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이유가 이제야 이해된다.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머릿속 지식이 이렇게 연결, 확장되면 작은 지적 희열이 느껴진다. 그저 과거의 여행을 답습한 듯한 이번 여행도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여행을 다 그만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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