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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에 다니니 이제 여행은 꼼짝없이 방학 때 밖에 시간이 안 된다. 체험학습을 신청해 학기 중에 시간을 빼면 못 뺄 것도 아니지만 여행한다고 학교를 안 보내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다. 말인즉 한창 성수기에 비싼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얘기다특히 동남아라면 더하다. 미얀마, 동티모르, 브루나이를 제외한 동남아 국가는 다 가본 터라 시선을 좀 멀리 해 봤지만 비싸기만 하고 아이들이 아직 여행보단 휴양을 선호하는지라 다시 베트남을 선택했다. 그 나라에 가봤다고 모든 곳을 구경한 건 아니니까 또 다른 재미를 찾으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로나가 하롱베이에 가보고 싶다고 하고, 나 또한 안 가본 곳이라 불만 없이 하노이행 티켓을 끊었다. 하노이엔 딱히 볼 게 없고 하롱베이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일정에 사파를 끼워 넣었다.

밤에 하노이에 도착해 공항 근처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말 그대로 잠만 자고 나와 사파행 버스를 타러 간다.

침대 버스인데 퀄리티가 좋다. 나에게는 길이가 좀 짧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편하게 누워 잤다 깼다 하며 6시간이 걸려 사파에 도착한다. 하노이까지 오는 비행기 시간보다 더 걸렸지만, 자리가 편해 수월했다.

사파 시내에서 머무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는 자연적인 것이 더 좋겠다 싶어 여행객이 투어로 돌아보는 타반 마을이란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래서 다시 20분 정도 택시를 타고 산 아래로 이동한다. 중간중간 보이는 경치가 좋다.

15년 전 이곳에 왔을 땐 사파에 대해 잘 몰라서 시내에서 술만 마시고 놀았었는데... 이곳의 다랑논 풍경이 근사하긴 하지만 이 분야의 최고 성지인 중국 원양에 갔었던지라 큰 놀라움은 없다. 그래도 언제나 자연 속에 들어온 느낌은 좋다.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요기하고 좀 쉰다

숙소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다

이거 보러 여기까지 온 셈이니...

아이들은 여행할 때만 허용하는 자유로운 유튜브 보기를 더 선호하는 듯하지만.....

나야 뭐 집에서도 여유로운 시간을 많이 갖지만 이런 경치가 보이는 발코니에 앉아 만끽하는 여유로움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다.

푹 쉬고 동네를 둘러본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금방 어두워진다. 나름 유명한 듯 보이는 식당이 간다.

뻔한 메뉴고 뻔한 맛이다. 여행객 장사 식당이라 가격이 좀 되는데 만족스럽진 않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발코니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가 듣기 좋다.

눈이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예술이다. 한참 풍경을 바라본 후 기지개를 켰다.

호텔 조식은 평범하다. 쌀국수와 팬케이크.. 쌀국수에 고수를 빼달라 했더니 쪽파도 안 넣어줬다.

저렴한 호텔이니 큰 기대는 없었다. 이런 식당의 쌀국수는 고기를 장시간 우려낸 국물이 아니라 농축액을 쓰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 맛이 좋을 리 없다.

아침을 먹고 판시판에 가기 위해 사파 시내로 이동한다

여기서 모노레일, 케이블카, 모노레일 순서로 갈아타며 베트남 최고봉으로 간다.

구름 가득한 날씨. 경치 즐기긴 글렀다 치면 그만이지만 이 정도로 가득 찬 구름이라니.. 간간히 걷히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풍경에 만족하며 정상으로 향한다.

우비를 입은 사람들 사이로 오른 정상은 그야말로 구름 속

정상 표시 조형물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흰 구름을 배경으로 우리가 이곳에 왔음을 증거로 남긴다.

3대가 공덕 쌓아야 판시판의 맑은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이 정도면 우리 할아버지는 이완용의 오른팔이 아니었나 의심스럽다. 하기야 힘들게 정상에 오른 것도 아니니 불평할 일도 아니다.

다시 사파 시내로 내려온다.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뜨내기 여행객 장사를 하는 뻔한 식당에서 먹는 뻔한 식사.

밥을 먹고 사파 시내를 둘러본다.

당연히도 15년 전의 소박함은 사라진 지 오래고 여행객을 유혹하는 화려한 상점 간판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소수민족은 직접 짠 직물 제품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15년 전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이곳 전통품을 파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까지 동원해 구걸하는 느낌마저 든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공사 모습. 이곳에 사람을 불러 모은 다랑논 풍경은 이렇게 거대한 호텔 공사로 사라지고 있다. 15년 뒤에 다시 오면 그땐 산등성이 호텔 구경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깟깟 마을로 간다.

사파의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히는 깟깟 마을은 이쪽 지역 소수민족이 사는 경치 좋은 시골 마을이라 한다. 지금 묵는 호텔이 있는 타반 마을도 트래킹 코스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라 굳이 깟깟 마을을 구경해야 하나 싶었지만 종일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깟깟 마을의 입장료가 70,000동이란 글을 읽었는데 150,000동으로 올라있다. 단번에 두 배로 뛴 걸 보면 여행자가 많이 찾긴 하나보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자마자 기념품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따로 돈을 받는 요상한 나무 조형물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계속 기념품 가게를 지나간다.

덥고 습한 날씨에 이 길을 다시 올라야 할 텐데.. 싶은 짜증이 날 정도로 기념품 가게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내리막 계단 끝에 다다르자 물이 흐르는 계곡과 함께 시원한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현지 소수 민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싸구려 유원지의 모습뿐이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의 풍경이 소수민족의 삶과 어우러져 있다면 근사하기 그지없었겠지만, 장사치가 장악한 계곡의 모습이 어떤지 우린 잘 알고 있다. 과거에 이곳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깟깟 마을은 싸구려 유원지일 뿐이다. 미리 알았다면 입장료인 150,000동을 되레 준다 해도 안 왔을 거다. 규모도 작아서 계곡길 2~300m가 전부다.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지... 실망스럽다.

사파 타운으로 가서 카페에서 좀 쉰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마트에 가서 과일을 좀 사고 호텔로 돌아온다.

시간 넉넉하다면 사파에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 그냥 좋은 경치 바라보며 책이나 보는 게 상책일 것 같다.

어두워진 저녁, 동네 작은 식당에서 뻔한 식사를 한다.

내일 아침 일찍 하노이로 떠난다. 빨리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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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 일정을 마치고 다시 프놈펜으로 향한다. 6시간 가까이 되는 긴 이동 시간에 잠을 청하려고 일부러 오늘 앙코르와트 일출 코스를 넣었다.

얼마쯤 달렸을까? 배가 고파져 중간에 허름한 휴게소에 멈춰 점심을 먹는다. 택시 기사에게 아무 데나 로컬식당에 멈춰달라 했는데 굳이 쓸데없이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비싼 휴게소에 데리고 왔다.

점심 식사 후 두어 시간 더 달려 프놈펜에 도착한다. 예약해둔 호텔은 과거 미국 대사관저로 쓰였던 곳이라던데 과연 방이 큼직하니 좋다.

오랫동안 택시를 타고 왔으니 여독을 풀기 위해 수영장으로...

저녁에는 피자를 시키고 근처 로컬식당에서 삼겹살 구이를 사 온다.

밥을 먹고 발코니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시내를 바라본다. 예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 그 느낌이 다른 건 이곳이 변한 것도 이유겠지만 여행 동반자가 달라져서 그런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펍의 음악 소리가 지금 내겐 멀게만 느껴지니까... 여행은 그렇게 여러 관점에서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캄보디아의 호텔 조식은 뷔페식보다 단품선택 위주로 구성되는 것 같다. 이 호텔 식당은 베이커리로 유명한 곳이라 하여 서양식 아침을 먹는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의 빵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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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왕궁 구경을 간다.

기대가 없던 만큼 볼만한 것도 없다. 그냥 거대한 왕궁 건물들. 왕궁 건축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체계 없이 그냥 큼직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왕궁 안에 또 따른 유명 볼거리인 실버파고다라는 것도 그냥 평범한 탑의 느낌.

도심이라 그런지 날씨는 씨엠립보다 확실히 더 덥다.

왕궁을 보고 나와 근처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간다.

박물관에선 핸드폰만 허용하고 카메라는 안된다 해서 그냥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편하게 둘러본다. 박물관도 뭔가 체계 없이 힌두신상과 불상만 즐비하다. 국립박물관이라면 모름지기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이 지역, 이 나라의 역사를 쭉 훑어볼 수 있게 전시해놔야 하거늘. 그냥 유물들이 쭉 나열해 놓은 느낌이다. 적당히 둘러보고 나온다.

호텔로 돌아와 다시 수영장으로. 박물관에서 그렇게 힘들어하던 아이들은 수영장에선 힘이 솟는다.

배달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뚜얼술랭 지노사이드 박물관에 간다.

캄보디아하면 떠오르는 게 앙코르 다음으로 크메르루즈의 학살이라는 게 안타깝다. 학교였던 이곳이 학살장으로 둔갑해 벌어졌던 가슴 아픈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만행을 보며 경중을 논할 필요는 없지만, 솔직히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행했던 처참함이 이곳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거나 모두 안타깝고 분노할 일이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늘어진다. 아이들은 이제 수영도 귀찮나 보다.

저녁엔 어제처럼 삼겹살 구이와 피자 배달.

아이들과 덥고 번잡한 도로를 걷는 것도 일이고, 요즘엔 어딜 가나 특히 동남아 쪽은 그랩 앱으로 손쉽게 배달을 시킬 수 있어 현지 음식을 충분히 경험한 여행 막바지엔 대개 호텔에서 배달 음식을 먹게 된다. 앱 덕분에 뚝뚝 흥정도 필요 없고... 세상 참 편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출발시각이 늦은 밤이라 비싼 하룻밤 숙박비를 고스란히 내기가 아까워 저렴한 호텔로 옮긴다.

아이들 놀라고 아담하지만 수영장이 있는 호텔을 골랐지만 이제 아이들은 수영이 귀찮아졌는지 관심이 없다.

방에만 있기 답답해 혼자 호텔 근처 시장 구경에 나선다. 돌아가기 전에 뭐라도 좀 사 갈까 싶었는데 관광객이 관심을 가질 법한 물건이 하나도 없는 로컬시장이다.

저녁에 대형 쇼핑몰에 간다.

캄보디아의 캄폿이라는 지역의 후추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추 때문에 프랑스가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을 정도라고 하니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 후추의 맛이 궁금하다. 씨엠립에서 조금 맛보았던 소금 후추 조합이 나름 괜찮았었다.

쇼핑몰에서 대용량 캄폿 후추와 저녁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온다.

시간이 되고 우린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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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도착한 프놈펜 공항.

올해 7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는 온라인 도착카드 시스템을 11일부터 테스트 운영한다기에 출발 전 온라인으로 작성을 하고 QR 코드를 프린트해왔다. 도착 비자를 받기 위해 프린트해온 QR코드를 내밀자 이건 뭐냐는 듯 고개를 젓는다. 출국 전 캄보디아 대사관에 물어봤을 땐 처음 듣는 얘기라며 알아보고 연락해준다고 하더니 국가 제1관문에서도 이런 식이라니. 나라 시스템이 이렇게 돌아가서야. 결국 하던 대로 출입국카드를 수기 작성하고 도착 비자를 받는다.

예약해둔 숙소에서 보낸 뚝뚝을 타고 숙소로 간다. 내일 아침 바로 씨엠립으로 갈 예정이어서 프놈펜 시내로 가지 않고 공항 근처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잡아놨다. 공항 근처 호텔은 죄다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평판이 좋지 않았다. 방에서 담배 냄새가 심하다느니 무례하다느니 등등. 아마도 본인들 나라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나 보다. 다행히 현지인이 운영하는 평판 좋은 저렴한 숙소를 발견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곤 한다. 현지의 관습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20~30분 늦는 건 기본인 나라에서 시간을 지키려 노력한다거나, 웃돈이 당연시되는 나라에서 정가를 제시한다거나, 기본적인 청결을 위해 애쓰는 것 등.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은 자연스레 신뢰가 간다. 예약한 숙소의 주인에게서 그런 느낌이 났다. 작은 게스트하우스지만 공항에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 하룻밤 보내기엔 딱 좋은 숙소다.

카페를 겸하는 숙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씨엠립으로 향한다. 340km 정도 되는 거리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여서 6시간이나 걸리는 길이다. 왕복 2차선, 즉 편도 1차선 도로에 각종 운송수단이 움직이니 그 속도가 달라 반대 차선을 통해 앞차를 추월하곤 한다. 양쪽에서 그렇게 역주행을 해대니 가끔 불안한 상황이 연출된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충돌사고라 위험이 크다.

착해 보이는 택시 기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이쪽 사람들의 영어는 알아듣기가 힘들다.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베트남, 태국 모두 영어단어의 마지막 발음을 안 하는 경향이 있다. massage를 마싸, rice를 라이, wife를 와이. 이런 식으로... 그러다 도로에서 바게트 파는 아줌마를 보고 문득 든 생각이, 한때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지 삼았던 프랑스의 영향으로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은 불어의 규칙을 영어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건 씨엠립에서는 앙코르와트보다 건물이 높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어서 4층이 넘어가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보이는 한자가 이곳도 중국의 자본이 상당히 들어온 것 같은데 이 자본의 힘이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존심을 언제 무너뜨릴지 자못 궁금하다.

6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한다.

다운타운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다. 방갈로 형태의 숙소가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아이들 데리고 수영장 왔다 갔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게 참 귀찮은 일인데 넓은 테라스에서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방갈로가 참 마음에 든다.

비행기 6시간, 하룻밤 자고 택시 6시간 타고 오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수영장을 보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이란...

잠시 물놀이를 한 후 숙소 주변을 둘러본다. 중심가가 아니어서 뭐 볼 건 없는데 그런 만큼 가게의 물건값이 관광지가 아닌 로컬의 가격이다.

큼직한 망고와 작은 수박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다시 휴식. 씨엠립은 앙코르 유적 관광이 여행의 처음과 끝이어서 다른 할 일이 없다.

날이 어두워지고 근처 길거리 꼬치 집에서 산 닭꼬치와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는다.

내일부터 앙코르 관광을 시작한다. 난 이번이 세 번째라 큰 감흥은 없지만, 아내가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 반대 의사를 표할 필요가 없었던 훌륭한 볼거리이기도 하니 다시 한번 그 경의를 즐겨봐야겠다.

예약한 시간에 차려진 아침을 먹는다. 이곳은 조식이 뷔폐가 아니라 일반식인데 레스토랑이 따로 없어 테라스 식탁에 차려준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음식을 차려줘서 뭔가 좀 대접받는 느낌이다.

아침을 먹고 뚝뚝을 타고 앙코르와트로 향한다.

먼저 티켓 파는 곳으로 간다.

씨엠립에는 20년 전, 14년 전에 왔었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 우선 큰 도로가 눈에 띈다. 쭉쭉 뻗은 대로가 여기저기 깔려있다.

예전엔 작은 시골 마을 느낌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느낌이 난다. 티켓 판매 건물을 따로 지어놓은 것도 그렇고... 앙코르와트도 바로 앞까지 툭툭을 타고 갔었는데 이제는 긴 진입로가 생겼다초입부터 아이들은 걷기 힘들다고 투덜투덜.

한참을 걸어 들어가 앙코르와트에 들어선다.

뭐 당연히 예전 모습 그대로다.

가족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자 나름 공부를 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냥 적당히 사진 찍고 적당히 둘러본다.

앙코르와트가 앙코르 유적군의 주요 유적 중 하나지만 그 역사적 의미에 관심이 없다면 솔직히 그 규모나 상징성에 비해 큰 매력이 있진 않다.

어쨌든 코스대로 쭉 둘러본 후 호텔로 돌아온다.

우리는 3일권을 끊었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봐 남들 하루 코스를 3일로 나눠 보기로 했다. 여느 여행처럼 오전엔 구경, 오후엔 호텔에서 휴식이다.

점심을 먹고 수영을 한 뒤 아이들은 놀게 놔두고 나만 혼자 나와 동네 구경을 한다.

역시나 예전 기억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저 여행객 위주의 상점들만 즐비하다. 씨엠립은 앙코르라는 위대한 유적을 품고 있지만, 그 외 소소한 볼거리는 거의 없다. 뭔가 점점 커지고 도시화하는 건 알겠는데 그 안에 들어갈 콘텐츠 개발에 힘을 더 쓰면 좋겠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호텔 매니저가 케잌을 들고 온다. 아내의 깜짝 생일 축하. 난 원래 음력 생일을 세는데 아내가 헷갈려해서 언젠가부터 양력으로 하자고 했지만 내가 그걸 깜박깜박해서 오늘이 내 양력 생일인 줄도 몰랐다. 언제나 깜짝 선물은 그 기쁨이 배가 되는 법.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2일 차 코스인 앙코르톰으로 향한다.

어제 앙코르와트에서 재미를 못 느꼈던 아이들은 출발부터 재미없는 표정이 한가득이다.

앙코르톰 입구에서 툭툭이 멈춘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와 고프라를 구경한다.

언제나 같은 코스. 여기서 코끼리로 이동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코끼리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뚝뚝을 타고 바이욘으로 간다. 앙코르 유적의 3대 볼거리 중 하나이고, 앙코르톰의 핵심 유적지인 바이욘. 다시 봐도 신비롭다.

아이들 때문에 바이욘 둘레의 부조상을 즐길 여유는 없어서 바로 위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런... 바이욘의 정수인 사면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막혀있다. 2020년부터 보수공사를 진행하느라 막아놨다고 한다.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인데... 씨엠립 방문 이유의 10% 정도는 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작업 속도로 봐선 10년 이내에 다시 개방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쉬운 대로 주변에서 위를 바라보며 바이욘 구경을 끝낸다.

우리의 발걸음은 바푸온으로 향한다. 쭉쭉 솟아오른 나무숲 덕에 그늘로 다닐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굳이 그늘을 찾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햇살이 뜨겁지 않다. 내 기억에 앙코르 유적 관람은 찌는 듯한 더위와 뜨거운 햇볕과의 싸움이었는데 이곳의 기후가 변한 건지 1월이라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기에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착한 바프온은 앙코르와트 3층처럼 12세 미만 아이들은 올라갈 수 없다 하여 아내만 올라 갔다 온다. 나는 귀찮아서 안 오른다.

길을 따라 걸으며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를 본다. 역시 그 모습 그대로...

호텔로 갈까 말까 하다 뭔가 아쉬워 마지막 코스로 프레아칸으로 향한다.

사람이 거의 없어 그늘진 나무 길 사이로 걷는 느낌이 좋다.

프레아칸 입구에서 잠시 쉰다. 바람소리, 새소리, 지뢰희생자들의 음악 소리가 자연과 오래된 유적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그 느낌이 충만한 곳이다.

프레아칸은 규모는 큰데 복원이 거의 안 돼 있고 멀리서 조망하기 힘들어 뭐 딱히 볼 건 없다. 군데군데 붕괴된 곳을 잘 찾으면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을 듯하지만 억지로 따라다니는 아이들과 구석구석 돌아다니긴 힘들어 그냥 나온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으로...

나름 생일 분위기를 내 보고자 스테이크를 시킨다. 역시나 질기고 질긴 얇은 소고기지만 그래도 고기니까...

3일 차의 목적지는 전쟁박물관이다. 씨엠립에 머무는 나흘 동안 사흘은 앙코르 유적을 보고 하루 비는 오늘은 어디 갈까 하다 고른 곳이다. 처음엔 컬쳐빌리지란 곳에 가려다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가 없을 것 같아 무료로 갈 수 있는 근처 전쟁박물관을 골랐다.

툭툭을 타고 가는데 무슨 인적없는 흙길로 방향을 틀길래 얼마나 볼 게 없으면 이런 외진 곳에 있나 싶은 찰라, 볼품없는 대문을 지나 구경꾼이 아무도 없는 박물관에 도착한다.

공짜로 알고 있었는데 성인은 5달러라 해서 기분이 살짝 안 좋다. 뭔가 전시물이 있어야 할 건물은 없고 뒤뜰에 망가지고 녹슨 전차와 장갑차 곡사포들이 펼쳐져 있다. 전시물 관리를 전혀 안 하는 듯해서 부담 없이 탱크에도 올라보고 함부로 건드려본다.

한쪽에 지뢰 경고문이 있는데 이게 하나의 전시물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없어서 쉬 둘러보긴 좋다. 아이들은 앙코르 유적보다 여기를 더 재미있어한다. 내전 중에 버려진 무기를 주워와 모아둔 듯한 총기류 코너에서 함부로 총을 갖고 놀아본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온다.

마지막 날. 4:40분에 기상. 씨엠립에 올 때마다 보는 앙코르와트 일출 코스. 사실 별 볼 것도 없는데 안 본 사람은 꼭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코스다. 졸려 하는 아이들을 툭툭에 태우고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앙코르와트로 간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해가 떠오르길 기다린다. 한 시간쯤 기다렸는데 날만 밝아지고 해는 보이지 않는다.

앙코르와트에서 한참 떨어진 숲 뒤로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20년 전에는 앙코르와트 뒤편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봤었는데. 1월엔

굳이 일출을 보러 앙코르와트에 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생애 첫 일출 구경을 기대했던 아이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앙코르와트를 빠져나온다.

보통 앙코르와트 일출 코스를 보고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우린 바로 따프롬으로 향한다.

따프롬이 워낙 인기 있는 곳이어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아침 일찍 가면 관광객도 별로 없고 햇살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710분쯤 도착해 7시 반 개방시간까지 기다린 후 따프롬 사원으로 간다.

역시 인적없는 앙코르 유적지는 분위기가 참 묘하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이의 느낌이 이랬을까? 미로 같은 폐허 속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상황마저 신비롭다. 일찍 오길 잘했다. 이번 앙코르 투어의 최고 수확이다.

오늘 씨엠립을 떠나는 날이 아니면 이곳에서 더 헤매고 싶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앙코르와트의 역사에 관한 책을 두어 권 읽었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리야바르만 2세 때가 첫 번째 전성기, 참파족의 침략을 격퇴하고 제2의 전성기를 연 자야바르만7세가 앙코르톰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을 지었고, 너무 많은 건설비용 때문에 국고를 탕진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다 아유타야 왕국에 의해 멸망한 역사.

텍스트로 입력된 역사 공부는 쉬 잊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현장답사가 동반되고 예전 베트남 호이안 여행 때 봤던 참파족의 유적지인 미선,

그리고 태국 아유타야

이렇게 이전에 둘러봤던 유적지와 연결되면서 보다 선명하게 머릿속에 새겨진다.

불교국가였던 아유타야의 몇몇 사원에서 인도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이유가 이제야 이해된다.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머릿속 지식이 이렇게 연결, 확장되면 작은 지적 희열이 느껴진다. 그저 과거의 여행을 답습한 듯한 이번 여행도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여행을 다 그만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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