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 다니니 이제 여행은 꼼짝없이 방학 때 밖에 시간이 안 된다. 체험학습을 신청해 학기 중에 시간을 빼면 못 뺄 것도 아니지만 여행한다고 학교를 안 보내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다. 말인즉 한창 성수기에 비싼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동남아라면 더하다. 미얀마, 동티모르, 브루나이를 제외한 동남아 국가는 다 가본 터라 시선을 좀 멀리 해 봤지만 비싸기만 하고 아이들이 아직 여행보단 휴양을 선호하는지라 다시 베트남을 선택했다. 그 나라에 가봤다고 모든 곳을 구경한 건 아니니까 또 다른 재미를 찾으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로나가 하롱베이에 가보고 싶다고 하고, 나 또한 안 가본 곳이라 불만 없이 하노이행 티켓을 끊었다. 하노이엔 딱히 볼 게 없고 하롱베이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일정에 사파를 끼워 넣었다.
밤에 하노이에 도착해 공항 근처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말 그대로 잠만 자고 나와 사파행 버스를 타러 간다.
침대 버스인데 퀄리티가 좋다. 나에게는 길이가 좀 짧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편하게 누워 잤다 깼다 하며 6시간이 걸려 사파에 도착한다. 하노이까지 오는 비행기 시간보다 더 걸렸지만, 자리가 편해 수월했다.
사파 시내에서 머무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는 자연적인 것이 더 좋겠다 싶어 여행객이 투어로 돌아보는 타반 마을이란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래서 다시 20분 정도 택시를 타고 산 아래로 이동한다. 중간중간 보이는 경치가 좋다.
15년 전 이곳에 왔을 땐 사파에 대해 잘 몰라서 시내에서 술만 마시고 놀았었는데... 이곳의 다랑논 풍경이 근사하긴 하지만 이 분야의 최고 성지인 중국 원양에 갔었던지라 큰 놀라움은 없다. 그래도 언제나 자연 속에 들어온 느낌은 좋다.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요기하고 좀 쉰다.
숙소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다.
이거 보러 여기까지 온 셈이니...
아이들은 여행할 때만 허용하는 자유로운 유튜브 보기를 더 선호하는 듯하지만.....
나야 뭐 집에서도 여유로운 시간을 많이 갖지만 이런 경치가 보이는 발코니에 앉아 만끽하는 여유로움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다.
푹 쉬고 동네를 둘러본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금방 어두워진다. 나름 유명한 듯 보이는 식당이 간다.
뻔한 메뉴고 뻔한 맛이다. 여행객 장사 식당이라 가격이 좀 되는데 만족스럽진 않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발코니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가 듣기 좋다.
눈이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예술이다. 한참 풍경을 바라본 후 기지개를 켰다.
호텔 조식은 평범하다. 쌀국수와 팬케이크.. 쌀국수에 고수를 빼달라 했더니 쪽파도 안 넣어줬다.
저렴한 호텔이니 큰 기대는 없었다. 이런 식당의 쌀국수는 고기를 장시간 우려낸 국물이 아니라 농축액을 쓰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 맛이 좋을 리 없다.
아침을 먹고 판시판에 가기 위해 사파 시내로 이동한다.
여기서 모노레일, 케이블카, 모노레일 순서로 갈아타며 베트남 최고봉으로 간다.
구름 가득한 날씨. 경치 즐기긴 글렀다 치면 그만이지만 이 정도로 가득 찬 구름이라니.. 간간히 걷히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풍경에 만족하며 정상으로 향한다.
우비를 입은 사람들 사이로 오른 정상은 그야말로 구름 속.
정상 표시 조형물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흰 구름을 배경으로 우리가 이곳에 왔음을 증거로 남긴다.
3대가 공덕 쌓아야 판시판의 맑은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이 정도면 우리 할아버지는 이완용의 오른팔이 아니었나 의심스럽다. 하기야 힘들게 정상에 오른 것도 아니니 불평할 일도 아니다.
다시 사파 시내로 내려온다.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뜨내기 여행객 장사를 하는 뻔한 식당에서 먹는 뻔한 식사.
밥을 먹고 사파 시내를 둘러본다.
당연히도 15년 전의 소박함은 사라진 지 오래고 여행객을 유혹하는 화려한 상점 간판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소수민족은 직접 짠 직물 제품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15년 전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이곳 전통품을 파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까지 동원해 구걸하는 느낌마저 든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공사 모습. 이곳에 사람을 불러 모은 다랑논 풍경은 이렇게 거대한 호텔 공사로 사라지고 있다. 15년 뒤에 다시 오면 그땐 산등성이 호텔 구경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깟깟 마을로 간다.
사파의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히는 깟깟 마을은 이쪽 지역 소수민족이 사는 경치 좋은 시골 마을이라 한다. 지금 묵는 호텔이 있는 타반 마을도 트래킹 코스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라 굳이 깟깟 마을을 구경해야 하나 싶었지만 종일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깟깟 마을의 입장료가 70,000동이란 글을 읽었는데 150,000동으로 올라있다. 단번에 두 배로 뛴 걸 보면 여행자가 많이 찾긴 하나보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자마자 기념품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따로 돈을 받는 요상한 나무 조형물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계속 기념품 가게를 지나간다.
덥고 습한 날씨에 이 길을 다시 올라야 할 텐데.. 싶은 짜증이 날 정도로 기념품 가게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내리막 계단 끝에 다다르자 물이 흐르는 계곡과 함께 시원한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현지 소수 민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싸구려 유원지의 모습뿐이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의 풍경이 소수민족의 삶과 어우러져 있다면 근사하기 그지없었겠지만, 장사치가 장악한 계곡의 모습이 어떤지 우린 잘 알고 있다. 과거에 이곳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깟깟 마을은 싸구려 유원지일 뿐이다. 미리 알았다면 입장료인 150,000동을 되레 준다 해도 안 왔을 거다. 규모도 작아서 계곡길 2~300m가 전부다.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지... 실망스럽다.
사파 타운으로 가서 카페에서 좀 쉰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마트에 가서 과일을 좀 사고 호텔로 돌아온다.
시간 넉넉하다면 사파에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 그냥 좋은 경치 바라보며 책이나 보는 게 상책일 것 같다.
어두워진 저녁, 동네 작은 식당에서 뻔한 식사를 한다.
내일 아침 일찍 하노이로 떠난다. 빨리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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