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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8. Singapore (2023. 07.27 ~ 07.30)

2023. 9. 9. 23:09 | Posted by inu1ina2

올여름 여행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다. 둘 다 와 본 곳이고 여행지로서 크게 흥미로운 지역이 아니어서 망설였지만, 일로나가 싱가포르에 가보고 싶어 해서 그냥 가기로 했다. 싱가포르도 뉴욕이나 파리, 도쿄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여서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었나 보다. 다만 싱가포르만 보기엔 거기까지 간 게 아까워 말레이시아를 추가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오전에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한다.

잠을 잘 자지 못해 온몸이 뻐근하다.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가려다 유명하다는 창이공항의 원형폭포를 보러 간다. 숲속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성스러운 물줄기가 연상되는 풍경이다.

규모가 커서 위아래로 자리를 옮겨 가며 시점을 달리해 보고 싶었지만, 지쳐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둘러보기가 힘들다. 그냥 한 곳에서 사진 몇 방 찍고 돌아 나온다. 창이공항에서 출국하는 경우에 여유 있게 도착해 둘러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MRT를 타고 호텔로 가 짐을 풀고 바로 수영장으로 간다. 낮잠으로 여독을 좀 풀어낸 후 여행을 시작하려 했지만, 피곤해하면서도 수영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아이들의 성화를 이겨낼 수가 없다. 우선 호텔 앞에 유명하다는 식당 '잠잠'이 있어 그곳의 주메뉴인 무르타박과 미고랭을 포장해 와 호텔 방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운다.

싱가포르 물가가 비싸다곤 하지만 30만 원 가까이하는 호텔에 테이블도 하나 없다니. 유명세가 자자한 무르타박도 그리 맛있다고 할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근처에 있으면 한번 맛이나 볼 수준이다. 배를 채우고 수영장으로 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선 수영장이 필수다. 사실 아이들은 어떤 나라든 상관없다. 그들의 관심은 그저 물놀이일 뿐... 수영장 물이 찼지만,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피곤한 상태에서 몸을 달달 떠는 걸 보니 감기에 걸릴까 싶어 잠깐 맛만 보고 방으로 돌아온다.

두어 시간 늘어진 후 밖으로 나온다. 호텔 근처에 술탄 마스지드와 하지레인이라는 유명한 거리가 있어 가본다.

하지만 술탄 마스지드는 관광객 출입 시간이 끝났고, 하지레인은 술 먹기에 좋은 곳이라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저 색색의 이국적인 건물 구경만 좀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시내 중심지라 그런지 밥값이 사악하다. 물가 비싼 나라는 싫다. 그렇지 않아도 걷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여독까지 쌓여 그냥 길바닥에 주저앉으려 하는 걸 간신히 달래 밥만 먹고 호텔로 돌아온다.

다음날, 시간에 맞춰 조식 뷔페를 먹으러 간다. 형편없다. 고기라곤 치킨 너겟뿐이다. 그 흔한 베이컨도 없는 뷔페라니... 적당히 끼니만 때우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MRT를 타고,

셔틀버스를 타고 싱가포르 동물원에 도착한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라는 이곳의 동물원은 마치 정글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동물의 종류와 개체 수는 여타 다른 동물원과 큰 차이가 없는데 규모가 크다 보니 우리도 더 크고 동물들도 더 자유로워 보인다.

그래 봐야 갇혀 있는 동물이라는 건 변함없지만 우리나라 동물원의 동물보다는 삶의 질이 좋을 것이 분명하다.

정글 속을 슬슬 걸으며 신기한 동물 구경하는 게 나름 흡족하지만, 더운 날씨에 큰 동물원을 둘러보는 게 아이들에겐 버거워 보인다.

동물원의 하이라이트 격인 동물들만 섭렵하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비싼 물가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고자 동물원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전체적인 물가에 비해 택시비는 좀 싼 편이라 우리 넷의 대중교통비와 오가는 수고를 생각하면 택시가 더 이익이다.

호텔 근처 터키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간단한 식사 메뉴를 시켰지만, 영수증엔 고급스러운 정찬 가격이 적혀있는 이 놀라운 현상.  

뭐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영장에서 휴식.

몸을 식힌 후 그 유명한 가든스 더 베이로 간다. 역시 사악한 가격인 플라워 돔과 클라우드 포레스트에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또 여기까지 와서 랜드마크를 지나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들어간다. 그런데 싱가포르 정도 되는 나라가 왜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에 구분을 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먼저 들어간 플라워 돔은 예상대로 이런 식물원에 왜 그런 입장료를 부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게 거대한 돔이라는 상징성이 없다면, 식물에 대해 특별한 조예가 없다면 올 필요가 있을까 싶다. 바깥과 다르게 시원하다는 것만 위로가 된다.

플라워 돔에 실망한 후 들어간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시작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첫인상을 보여준다.

마침 아바타 전시가 진행 중인데 이곳의 분위기와 아바타 속 나비 행성의 분위기가 자못 흡사하다.

아이들은 영화 속 캐릭터 조형물에 시선을 뺏겨 불평이 사라졌다.

아바타와의 조합이 너무 좋아서 이 전시가 끝났을 때 이곳의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나름 볼만하다.

양 돔 구경을 마치고 수퍼트리 라이트쇼를 보러 간다.

45분이 남은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우리도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쇼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날이 어두워지고 하나둘 조명이 켜진다. 745분이 되자 쇼의 시작을 알리는 음성과 함께 음악이 울린다.

처음에 사진 몇 방 박고 아이들과 드러누워 쇼를 감상한다.

내 이놈의 카메라를 어떻게 하든지 해야지.... 가만히 바라보면 이렇게 좋은 걸 매번 사진 찍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 하고...

그래도 또 찍어놓은 사진과 비디오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니 이게 참 딜레마다. 어쨌든 수퍼트리 라이트쇼는 조명 연출이 좀 아쉬웠지만 거대한 규모가 주는 웅장함은 충분히 즐길 만했다.

이튿날 역시 형편없는 조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오전 코스는 보타닉 가든.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절대 오지 않았을 곳이지만 아내가 원하고 아이들과 산책하긴 좋을 것 같다.

공원은 입구부터 그 울창함을 드러낸다.

한국 사람으로서는 공원이라기보다 숲에 가까운 느낌이다. 아마도 아열대 기후라서 가능한 풍경이리라.

그런 아열대숲의 분위기가 뭔가 이국적이고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중간중간 거대한 도마뱀도 기어다니고,

그 숲 사잇길로 산책하고 조깅하는 사람들. 집 근처에 이런 공원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뭔가 아이디어가 샘 솟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아이들은 더운 날씨에 넓은 공원을 걷는 게 힘든지 계속 호텔 수영장에 가자고 조른다. 규모가 큰 공원이지만 반만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온다.

점심 먹고 수영장에서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 후 방에서 좀 쉰다.

늦은 오후 머라이언과 마리아나 베이등 싱가포르의 상징들을 둘러볼 수 있는 싱가포르만으로 간다. 그랩 기사 아주머니가 89일 국경일 행사 리허설 때문에 요즘 주말마다 길이 막힌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저녁 무렵 선선한 바닷바람 맞으며 둘러보려 했던 싱가포르만 산책은 힘들겠군 싶었는데 이건 뭐 한걸음 옮기기가 힘들 정도다.

모든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해서 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3시간 뒤에 마리아나 베이 위에서 불꽃놀이를 한단다. 아이고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기에 이렇게들 모여있는 건지. 우리나라 세계 불꽃놀이도 이런가? 난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이라 안 가봐서 모르겠다. 나도 일로나도 기다리는 거 싫어해 어서 이곳을 빠져나올 길을 찾지만, 사방이 통제되고 막혀있어 빠져나오기도 힘들다. 간신히 도로로 나와 그랩 택시를 부르지만 가뜩이나 일방 도로가 많은 곳에서 도로 통제까지 하니 택시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결국, 사람 잔뜩 모여있는 싱가포르만만 찍고, 오가는 택시비만 날리고 호텔로 돌아온다.

싱가포르에서 육로 국경을 통해 말레이시아로 가는 방법으로는 택시, 버스, 기차가 있다. 우리는 말레이시아 국경도시인 조호바루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말라카로 가기 때문에 말라카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타려 했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면 국경을 건널 때 버스에서 내려 짐을 가지고 출입국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 줄이 길어서 한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단다. 기차는 수주전부터 예약해야 한다니 일찌감치 패스. 택시는 혼자 타면 가격이 비싸지만 우린 넷이고, 출입국 검사 시 택시 안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라면 택시를 타는 편이 낫다. 단지 택시는 조호바루 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하니 그곳에서 다시 티켓을 끊고 말라카행 버스를 타는 절차가 있지만, 출입국 심사대에서 한두 시간을 서서 기다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 종합적인 가격 면에서도 비슷해서 우린 택시를 선택했다. 다행히 호텔 근처에 국경으로 향하는 택시 종점이 있어 금방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국경에 다다르면서 교통 체증이 심해졌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나오는 택시 안에 앉아 기다리면 그만이다. 짐 검사도 없이 여권만 살펴보고 무사통과.

싱가포르에선 지출이 컸다. 제일 큰 실수는 시내 중심가에 숙소를 잡은 데 있다. 구경거리 많은 중심가라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호텔에서 아이들과 함께 걸어갈 만한 거리는 한정적이고 결국 어딜 가도 교통편을 이용해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택시비를 생각하면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에 숙소를 잡는 편이 나았다. 왜냐하면, 그쪽이 숙박비도 저렴하고, 로컬 식당도 많기 때문이다. 호텔이 위치한 시내 중심가 식당의 음식값은 정말 어마무시했다.

우리나라는 로컬 지역의 식당과 관광지의 식당 가격 차가 많아야 2~3배 정도지만 이곳은 5배 이상이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크다는 얘기일 거다. 싱가포르가 겉으로는 잘 발전하고 있는 선진국처럼 보이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국가 시스템을 가진 나라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치 전체주의 사회 같은... 싱가포르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으니 이곳 사람들은 이 시스템에 잘 길들여진 것 같다. 뭐 그럼 내 상관할 바는 아니지. 어쨌든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