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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고 조호바루 라킨 버스 터미널에서 허겁지겁 버스표를 끊고 말라카행 버스에 오른다. 미리 표를 예매하면 좋으련만 싱가포르 국경을 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날에 따라, 시각에 따라 제각각이라 언제 도착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말라카행 버스는 30분마다 있어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탈 수 있었다.

세 시간이 걸려 말라카에 도착.

다시 그랩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호텔 아니 레지던스 아파트에 도착한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깔끔하니 좋다.

호텔이 아닌 레지던스에 묵는 건 처음인데 말레이시아엔 유독 이런 숙소가 많아 보인다. 지금 이곳 주변도 여러 고층 건물이 있고 또 공사 중이다. 그 모습이 10년 전 여행했던 중국의 모습과 비슷해 이곳에도 대규모 중국계 자본이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방 상태가 싱가포르에서 묵었던 호텔보다 더 좋은데 이곳에서의 3박 숙박비가 싱가포르 숙소의 하루치 반값도 안 되니 만족감이 크다. 우선 아이들을 위해 수영장으로 간다.

수영장 시설도 좋다.

특히 아이들 물놀이장이 잘 돼 있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문제는 무슬림이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여자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으면 안 된다는 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곳 규정에 맞는 수영복 자판기가 있지만, 이곳 사람들 체형의 수영복이 185cm의 아내에게 맞을 리가 없다.

결국 가장 큰 사이즈의 남성 수영복을 산다. 적당히 입을만해서 다행이다.

물놀이 시간이 끝나고 그동안 입은 옷들을 들고 코인 세탁소로 간다.

호텔이 아닌 레지던스라 이런 걸 직접 해야 하는 건 좀 귀찮다. 코인 세탁소 가격이 3천 원이면 건조기까지 돌릴 수 있어 기쁘다.

세탁기에 옷을 넣고 기다리는 동안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치킨 라이스와 완탄미가 맛있다. 음료까지 포함한 가격이 싱가포르에서 한사람 끼니도 안되니 그 기쁨이 더 크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에선 돈 쓰는 기분도 좀 내야 마땅한데 싱가포르에선 전혀 그러질 못했다. 남은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그 기분을 좀 내야겠다.

말라카 나들이게 나선다.

아파모사에서 오래된 건물을 보고 계단을 타고 세인트힐에 오른다.

언덕 위에 폐허가 된 교회가 있다. 지붕도 없이 돌로 지어진 벽만 남아있는 건물에 나무 넝쿨들이 감싸고 있는 느낌이 좋다.

아마도 말라카에서 제일 유명한 명소 중 하나인 듯한데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보통 말라카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당일치기로 오는 경우가 많아서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한 관광객들이 도착하기 전인 이른 아침엔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는 것 같다.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와 말라카의 중심이 되는 강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걷기를 불평하는 아이들의 불만을 잠재운다.

강변을 따라 쭉 걷는다. 이런 분위기 좋다.

오래된 낡은 건물들이 주는 이런 세월의 흔적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해서 도시보단 옛 모습을 간직한 여행지를 찾는 편이다. 그래서 싱가포르보다 그리고 다음 여행지인 쿠알라룸푸르보다도 말라카가 마음에 든다. 마음 같아서는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지만,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힘들어해서 강변만 좀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온다.

다시 수영 시간. 여행동반자로서 아이들의 즐거움도 중요하다. 깐깐한 경비아저씨가 사진을 못 찍게 해서 수영하는 모습은 담질 못했다.

해 질 무렵 존커 스트리트로 간다.

이곳 야시장이 유명하다는데 주말에만 열린다고 하니 우린 못 본다. 야시장이라 봐야 뻔하지 뭐. 뻔한 음식들 잔뜩 모아놓고 비싸게 팔겠지. 그냥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간다.

이상하게도 이곳엔 문 닫은 상점이 많다. 영업을 안 하는 건지 영업시간이 짧은 건지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도 마찬가지라 좀 의아하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리버크루즈를 타러 간다. 아이들과는 걷기보다 이게 낫겠다 싶어 선택한 코스. 이런 곳은 야경이 예쁘기 마련인데 대도시처럼 한눈에 보이는 고층 건물 야경이 아니니 강변을 따라 보는 것도 좋다.

리버크루즈 출발. 역시나 멋들어진 야경이 펼쳐진다. 나름 조명에 신경을 쓴 것 같다.

그런데 상류로 좀 올라가자 옛 건물은 사라지고 조명만 반짝여서 볼품이 없다. 크루즈가 다니는 강변만이라도 좀 신경 써서 꾸며 놓으면 좋으련만... 지역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변화를 주저하는 지방 행정가들의 한계다.

나름 볼만했던 리버크루즈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 근처에 CU편의점이 있어 들른다. CU는 페밀리마트나 세븐일레분처럼 현지화하지 않고 우리나라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지인들이 알루미늄 도시락통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즉석식품 판매대엔 떡볶이와 어묵도 판다. K 열풍을 이용해 나름 전략을 잘 짠 것 같다. 우리는 라면과 맥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말라카는 하루면 충분한 여행지라 더는 뭘 할 게 없다. 그래도 숙소에만 있을 수 없어 해양박물관으로 간다. 어제 집에 올 때 강변에 서 있는 큰 범선에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졌었다. 찾아보니 그곳이 해양박물관이었다.

공짜도 들어가도 될 법한 박물관에 인당 20링깃(5,700) 내고 들어간다. 역시나 뭐 볼 건 없다.

아이들이 큰 범선을 구경하는 걸로 족하다.

옆에 따로 전시건물이 있는데 그것도 뭐 고만고만하다.

박물관에서 나와 강변을 걷다 보이는 또 다른 정체불명의 공짜 박물관에 들어간다. 도무지 컨셉을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즐비한 정체불명의 박물관.

그나마 에어컨이 있어 쉬었다 가긴 좋다.

강변 옆 카페에서 음료를 마신다. 아이들은 주문한 음료를 재빨리 마시고 수영장에 가자고 성화다.

~ 이노무시끼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숙소로 돌아온다.

다시 수영 타임. 저녁에 또 어딜 둘러볼까 말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넷플릭스를 연결한다. 말라카는 하룻밤 묵어가는 거로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동네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방문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