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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애초 나의 목적은 플랜차이나를 만나는 것이었지 후원아동을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플랜차이나를 만나려고 중국에 간 것도 아니고, 여행 중 하나의 프로젝트로 중국에 들른 겸 해서 플랜차이나를 방문한 것인데 결국 후원 아동 방문까지 하게 됐다. 후원아동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단지 온전히 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찾은 것이 아니라는 게 미안했을 뿐이다.

아이가 사는 마을에 들어섰을 때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열악한 마을은 아닌 듯했다. 다들 사계절 넉넉히 버틸 튼튼한 벽돌집이었다. 찢어지게 열악하지 않아서 실망했다면 우스운 일이겠지만, 나는 나의 후원금이 당장 생사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이는 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이가 아닌 국외 아동을 선택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비참한 기아 상태 정도는 정부의 의지로 대처할 정도는 된다. 그렇지 못한 처지에 놓여 있는 아이가 나의 작은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의 후원 아동인 류닝은 톡 하면 부러질 것 같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 다리를 가진 아이가 아니었다. 다소 마르긴 했어도 끼니 거르지 않는 나름 건강해 보이는 아이였다.

플랜차이나 측에서는 나를 비롯한 많은 후원자의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한 가정을 방문해 가스레인지를 보여주며 장작불로 조리하던 환경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설명을 해줬다. 각 가정에서 2,000위안을 부담하고 플랜차이나 측에서 700위안을 보조해서 마을 전체의 조리시설이 편리하게 바뀌었다. 후원금이 본인의 후원아동에게 얼마나 쓰이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대일 결연을 맺은 만큼 그 마음이 각별해서 아이에게 온전히 쓰였으면 하는 의견도 많지만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 허튼 곳에 쓰이지만 않으면 된다. 존 레넌은 “난 나의 돈이 어떻게 쓰이는 지 믿을 수 없어 기부하지 않는다.”라고 당당히 말했지만 난 누군가를 어떻게 도울지 몰라 신뢰가 가는 단체에 기부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볼 문제는 후원금이 생사 여부에 필요한 곳에 쓰이느냐 삶의 질 향상이 필요한 곳에 쓰이느냐 하는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은 전자에 손이 가게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영상이나 이미지가 홍보용으로 많이 쓰인다. 틀린 의견이라 할 수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게 100만 원의 여윳돈이 있다고 치자,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만원이 필요한 백 사람이 있고, 등록금 백만 원이 모자라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의대생이 있다며 누굴 도와주는 것이 더 큰 도움 인가하는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의대생이 나중에 천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면 골치 아픈 문제가 된다.

사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 크고 작음을 살피거나, 옳고 그럼을 따지는 건 한참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 되면 내 손을 절대 뻗을 수 없다. 도움의 손길을 주는 사람은 단지 누군가를 측은 시 하는 마음으로 움직일 뿐이다. 나 또한 불특정 다수의 아이를 측은 시 하는 마음으로 후원을 시작했고 류닝을 만났다.

이제 류닝이 건강한 아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난치면 입가에 미소를 보일 여유가 있는 삶을 사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곧 사춘기에 접어들 여자아이. 조리시설도 위생적으로 바뀌었으니 마당 구석에 천 쪼가리로 대충 가림막 해놓고 구멍 파 놓은 부끄러운 화장실도 바뀌면 더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