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오더니 그치질 않는다. 여행 떠난 뒤 낮에 비를 보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일 처리를 끝내서 집에만 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어제 받은 새 휠을 자전거에 장착한다. 누구나 그렇듯 새 걸 얻으니 기분이 좋다. 빈둥거리고 있는데 어제 못 본 박영시 씨에게 전화가 와서 만나러 간다.
친구가 준 판초우의를 처음으로 사용한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새 휠을 장착한 자전거를 타고 빗속을 달린다. 모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그런지 이곳에선 비가 오면 우위를 많이 입는다. 우산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영시 씨가 묶는 호텔 앞에 있는 해산물 집에서 조개, 고둥등과 함께 간단히 맥주를 마신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만 초면인지라 오래가진 못한다. 내일 일정도 이르고 해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느 때처럼 옥상 옆 우리 잠자리에 가서 쉬고 있는데 세드릭의 친구인 오를리앙이 올라온다.
“니들은 왜 밑으로 내려와 놀지 않냐?”
나무라는 듯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굉장히 미안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자리를 내줬는데 간단한 인사만 건네고 우리 일만 봤으니 집에 있는 사람으로선 불쾌했을 수도 있다. 샤워를 하고 2층으로 내려간다.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 사람 중엔 우리의 호스트인 세드릭이 끼어 있었다. 우리를 신경도 안 쓰고 인사만 건낸다. 어제 썼던 카우치서핑에 대한 얘기는 나의 오해이지 싶다. 그러니깐 각자 알아서 지내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노는 거다.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이 모여서 따로 논다. 어쩌면 문화의 차이다. 우리는 모임이 있으면 모두를 고려한 말을 하고, 같이 건배를 하며, 혼자 있는 사람을 가만 두지 못한다. 이곳에 있던 세 친구도 알고 보니 여행 중에 이곳에 와서 몇 달씩 지내고 있는 거였다. 세드릭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자기는 그냥 방에 가서 잔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신다는 게 이상하지만 바로 그 차이였던 것이다. 자기 아는 사람들과만 대화하고, 자기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알아서 술 따라 마시고 행여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사람에게(설령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묻고 답해준다. 아직 이런 게 어색하지만 익숙해지면 굉장히 편한 자리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우리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전혀 소근소근 말 할 필요가 없다. 가끔 영화 속에서 보는 스탠딩 파티가 이런 분위기 일 듯 싶다. 그러니까 이들은 매일 이렇게 작은 파티를 열면서 즐기고 있다. 어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없으면 항상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 그 자체다. 오늘 중요한 걸 또 하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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