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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대 후반 나의 첫 여행지였던 인도는 내 마음속에 좀 복잡하게 자리잡고 있는 나라다. 당시는 인도 여행의 붐이 막 일었던 시기로 산전수전 다 겪은 여행자들이 마지막에 찾는 곳으로 인식됐었다. 그런 인도를 첫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그냥 막연히 남들처럼 유럽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오리엔탈리즘이니 명상이니 하는 건 관심 밖이었다. 난 아무런 정보도 찾지 않았고, 가이드북만 하나 준비해가면 되려니 생각했다. 나에게 여행은 그런 것이니까. 첫 해외여행이라고 특별히 다른 마음가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여행은 즐거웠고, 여행 후엔 진작 해외여행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을 타박하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지금의 여행은 모두 거기에서 원인한다.

하지만 그때 나에겐 그 여행을 가야 할 이유와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가고 후회, 안 가도 후회되는 상황. 그 여행은 나에게 계륵이었던 셈이다. 조조는 계륵을 버리는 것으로 답을 찾았지만, 난 가능하면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쪽보다는 하고 나서 후회하는 쪽을 선택한다. 결국 난 여행을 하는 쪽을 선택했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많은 걸 얻었고, 또 그 만큼 많은 걸 잃었다. 사실 돌이켜보니 그렇게 생각되는 거고, 의미 부여를 하는 거지 당시에는 잃은 건 없으리라 판단했었다. 어쨌건 그 여행은 그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고, 그 영향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유지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C 17-22

장비를 도난 당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땐 굉장히 절망스러웠다. 여행을 중단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인도를 못 벗어나는 건가?’하는,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생의 패배감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꽤나 큰 각오가 필요한 이런 여행을 두 번이나 결심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단순히 이 여행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면 다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인도는 어느덧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트라우마 같은 게 돼있었다. Epilogue 2

그리고 이제 드디어 인도를 넘어 다른 나라로 간다. 이건 지극히 정신적인 문제다. 이제 극복했어 하고 하하하 웃을 일도 아니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 내가 인도를 넘어 갔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다. 누구나 그런 것 하나쯤은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너무 하잘 것 없어서 남들에게 토로하면 핀잔이나 들을 그런 트라우마 같은 것. 정확한 의미로 따지고 들자면 이런 건 트라우마가 아니다. 내가 염려했던 건 그런 짝퉁 트라우마도 머리 속에 남겨두면 어느새 진짜가 된다는 사실이다. 트라우마는 짙은 색안경 같아서 그것이 머리 속에 박혀있으면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가 없다. 단지 그걸 벗어 던지고 싶었을 뿐이다. 색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상이, 나의 상황이 하나도 변함없는 모습이라도 밝은 눈으로 대면하고 싶다. 그럼 아무래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Epilogue 1

현실은 변하지 않고, 내 앞에 놓인 문제는 여전하지만 적어도 정확히 쳐다볼 순 있겠지. 이제 나에게 인도는 내가 거쳐간 많은 나라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것도 짜증스러운 웃기는 나라.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인도의 추억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될 거야. 그때까지 철 좀 들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