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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템플을 구경하러 나온다. 시내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싶었는데 농장 아저씨 한 분이 자기도 나간다 하여 따라간다. 이 동네는 개인택시처럼 운영되는 일반 오토릭샤보다 되는 데로 합승하며 마을버스처럼 일정한 지점만 왔다갔다하는 오토릭샤가 많다. 아무데서나 손 흔들어 잡고, 세워달라 할 수 있어 좋다. 물론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골든 템플에 도착한다. 사람이 많다. C 17-1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어서 정문 양 옆에 있는 신발 보관소에 신발을 맡긴다. C 17-13템플 입구에서 시크교에 법도인지 뭔지 다른 시크교인처럼 머리에 손수건이라도 둘러야 한다. 여러 사람이 쓰고 남긴 두건을 모아둔 통에 있는 거 하나 집어 들면 된다.

템플은 조성된 해자 가운데 있고, 전체적으로 하얀 성곽이 둘러싸고 있다. C 17-3바닥은 모두 대리석이고 타즈마할처럼 부분부분 상감 처리돼 있다. 대리석 상감 기술은 인도에선 보편적인 건축양식인 듯하다. 템플 자체는 그리 멋있지 않다. 다만 템플 전체에 바른 금 도금 때문에 유명한 것 같다. 템플 중앙 돔을 도금하는 데만 750kg의 순금이 들었다고 하니 역사적 가치를 떠나도 값진 사원인 셈이다. C 17-5사람들은 템플 주변을 돌며 절을 하고 해자에서 목욕도 한다.C 17-4 C 17-2명상할 때 쓰일 법한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늘에 누워 쉬는 사람, 자는 사람이 많다. C 17-11나도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두 놈이 와서 말을 걸길래 잠시 노닥거린다. C 17-9

비수기라서 그런지 외국인이 거의 없다. 템플을 둘러싼 성곽엔 작은 방이 많이 있는데, 관련 성직자 같은 사람이 앉아서 무지하게 크고 두꺼운 책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가며 절을 하고 앞에 놓인 시주 통에 돈을 넣곤 한다. C 17-12

인상적이었던 건 성곽 모서리 세 곳에 사람들이 마실 물을 마련해 주는 곳이 있는데 설거지도 정성스레 하고 무엇보다 무료 제공이라는 것이다. C 17-7그거 물 얼마나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템플 입장료도 없고, 신발 보관도 다 무료다. 말 그대로 누구나 와서 템플에 예를 표할 수 있는 것이다. 인도는 물가가 싸서 그렇지 공짜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나라다. 인도에 있는 수많은 유적 가운데서도 손 꼽히는 이곳에서 이익을 보겠다 한다면 한 해에 수 십억은 거뜬할 텐데도 다른 유적과 다르게 완전 무료 형태로 운영하는 것도 아마 힌두교가 아닌 시크교 단체의 결정이 아닌가 싶다. 힌두교를 너무 미워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C 17-10C 17-6

템플 주변 전체에 전구 조명이 설치돼있다. 그 조명이 다 켜지는 저녁이 되면 훨씬 더 멋지게 보일 듯 싶다. 템플 중앙에 들어가려면 긴 줄을 서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나온다. C 17-8

정문 앞에서 국경 세레모니 보러 갔다 오는 짚차 삐끼가 접근한다. 난 어차피 국경을 건너야 하지만 국경 세레모니가 해질녘에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첫 도시인 라호르에 너무 늦게 도착할 것 같아 삐끼를 따라 차에 오른다. 20km쯤 떨어진 국경을 갔다 구경하고 돌아오는데 까지 85루피(약 2,125원)다. 흥정하면 좀 더 싸질텐데 그것도 귀찮아서 말았다. 2008년판 론리플래닛을 보면 골든 템플에서 국경 갔다 오는 지프 한 대에 400루피니 사람 모아 가라는 글이 있어 그렇지 않아도 여행자들 있으면 쉐어하자 할라 했었는데 잘 됐다. 꽉 찬 차를 타고 국경에 간다.

유명한 볼거리라 사람들이 많다. 주의해야 할 것은 국경에 들어서기 전 안에 들어가면 가게 없다고 물 사라고 유혹하는 손길이 많은데, 국경입구에서 안쪽으로 1km쯤에 있는 검문소에서 물 다 뺏긴다. 하여간 이 놈들 하는 짓이 이렇지…C 17-14

유명한 볼거리다 보니 아예 좌석이 마련돼 있다. C 17-19외국인은 VIP좌석에 앉을 수 있는데, VIP라기보다 그냥 한 쪽에 몰아넣은 듯한 느낌이다. 국기 하향식이 거행되기 전에 분위기를 띄우려고 신나는 댄스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에게 국기 들고 뛰게 하고, 여자들은 나와서 춤을 추는 등 학교 운동회 분위기의 작은 쇼타임이 펼쳐진다. C 17-17C 17-18국경 군인인 듯한 아저씨가 트레이닝 복을 입고 행사장 사회자인 냥 중간중간 멘트를 날리고 구호를 외치고 한다. 뭐 어쩌고 저쩌고 힌두스탄!이라고 외치면 관중들이 다른 말로 받아 친다. 파키스탄 측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로 어쩌고 저쩌고 파키스탄!이라고 외치고 받아 친다. 인도는 스스로를 힌두스탄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유럽의 많은 국가들 이름 뒤에 ‘land’가 붙는 것처럼 이 지역의 국가들 이름 뒤에 ‘stan’이 많은 이유는 ‘stan’의 뜻이 ‘land’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힌두스탄은 ‘힌두의 땅’ 쯤 되겠다.

한동안 그렇게 놀다가 드디어 본 행사가 시작된다. C 17-16누가 더 숨 안 쉬고 구호를 길게 빼나 경쟁하듯이 큰 소리로 명령을 외치면 군인들이 그에 맞춰 과장된 발 동작과 걸음으로 런어웨이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한다. 나름 의미를 둔 제식동작일 테지만 그 모습에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C 17-20그런 제식이 국기가 내려질 때까지 20~30분간 이어지는데,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외국인인 나뿐만 아니라 인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에서 놀이처럼 진행된다. 한마디로 볼만 하다. 확실히 난 유적보단 이런 퍼포먼스가 더 좋다. C 17-21

재미있는 구경을 마치고 짚차를 타고, 오토릭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피곤한 하루다. 씻으려고 음악을 틀었는데 마침 너바나의 노래가 나온다. 음… 오랜만이군. 생각난 김에 맥주를 한 병 사와서 마신다. 오늘은 커트 코베인의 기일이다. 대학시절 4월 5일이 되면 술잔을 기울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었다. 반항끼 가득하던 시절 불꽃처럼 살다간 그는 우리의 영웅이자 같은 이상을 꿈꾸는 동료였다. 짐 모리슨도 존 레논도 지미 헨드릭스, 시드 비셔스, 밥 말리 그리고 멀리 체 게바라 등 불꽃남자는 많지만 우리와 동시대를 살다간 커트 코베인에 가장 큰 애착이 갔었다.(물론 불꽃남자 정대만도 우리와 동시대다) 그렇게 먼 나라 이웃 나라의 한 롹커의 죽음을 우리는 동료의 죽음이라는 생각에 애도하고, 안타까워하며 멋지게 연소해보자 큰소리로 건배를 했었는데… 지금 그 친구들은 자신을 불사르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코베인에 건배!

I don’t have the passion anymore,
and so remember,
it’s better to burn out then to fade away.
  
                     - 커트 코베인의 유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