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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0. Epilogue: 여행의 목적

2012. 7. 23. 14:54 | Posted by inu1ina2

세르비아를 끝으로 여행은 끝났다. 두 번의 귀국을 제외하면 782일간의 여행, 여행을 시작한 날로 따지면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처음 세웠던 물리적인 여행 계획에서 35% 정도밖에 완수하지 못한 여행이 됐다. 사실 여행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하게 될지 몰랐고, 혼자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이렇게 빨리 끝나게 될지 몰랐다. 어쨌거나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남미에 가지 못한 것 말고는 아쉬움 없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이제 여행은 끝났고, 난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니 돌아가게 된다.

이쯤에서 간략하게나마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건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고민했던 문제이고,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

“왜 이 여행을 하지?”

그래 ‘난 무얼 위해 달리고 있지? (what am I running for?)’.

사람들에게는 그냥 “그냥 여행이 좋아서…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라고 반문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물론 그게 중요한 이유인 건 분명하지만, 많은 장기 여행자가 꿈꾸듯 이슈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나중에 책을 써서 대박을 낸다든지 하는 꿈도 꾸었다. 왜 아니겠는가. 그래서 개중에는 세계 평화를 위한다든지, 환경보호를 위한다든지 하는 나로서는 그게 진심일까 의심스러운 명분을 내걸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장기 여행자와의 대화 속에서 나타나듯이 분명히 이 순간이 행복하긴 하지만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이후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들처럼 즐거운 순간을 위해서, 그리고 혹시나 이 여행을 잘 팔아먹기 위해.. 라는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또 다른 목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다름 아닌 ‘내 짝을 찾자’였다.Epilogue 01

누구에게도 ‘내 짝을 찾기 위해’ 이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할 수 없었다. 나름 낭만적이고 멋진 이유지만 까놓고 말해 졸라 유치하기 때문이다. 가진 것 하나 없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건 영화에서나 멋진 거지 현실에서는 한심한 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남들이 혀 차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았고, 또 떠벌린 후에 짝을 못 찾으면 더 한심하게 보일까 봐 혼자만 가슴속에 묻어뒀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 난 어느 정도 목적한 바를 이룬 것 같다. 단지 여자친구가 생긴 게 성과가 아니라 짝을 찾은 게 성과다. 그냥 여자친구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단지 여자친구가 필요하다면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학이든 직장이든 연인이든 알게 모르게 자기 원하는 기준의 한계치가 있어서 그렇지 그 기준만 낮추면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 ‘베오그라드에서 사는 그녀가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35억 분의 일인 네 짝이냐?’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 그건 확신할 수 없다. 첫눈에 반하고, 운명을 느끼고 하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그걸 누가 그걸 확신할 수 있나. 누가 사랑이 유통기한 3년짜리 도파민 작용이라는 과학자의 말을 부정할 수 있나. 그저 운명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적어도 멋진 짝일 순 있겠다는 느낌이다. 어차피 나 같은 우연론자에게 운명이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능력 있는 이야기꾼이라면 멋지게 윤색하여 운명이라 꾸며댈 수 있는 꽤나 그럴싸한 스토리가 만남 중에 있었다. 그 정도면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사춘기 소년들이나 쏟아낼 말을 진지하게 내뱉는 이유는 적어도 내겐 제대로 된 짝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겐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난 내 짝과 함께하기 위해 가장 많은 걸 포기할 수 있다.Epilogue 02

달콤했던 여행은 끝났고, 현실이 시작된다. 완전 제로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 잔인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내가 그토록 달려 얻은 짝의 진위를 보다 쉽게 가려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여행할 때보다 더 흥미진진할 것 같다.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