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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우리가 자전거를 이용한 세계일주를 계획한 건 순전히 가진 게 없어서였다. 4~5년 전 여행을 계획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스케일이 커져 세계일주가 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 흥분하며 즐거워 했지만 결정적으로 세계일주를 할만한 경제적 능력을 갖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상상만으로 즐거워하다 끝나는 한 여름 밤의 꿈 정도로 끝날 뻔 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그걸 붙잡고 있는 손을 펴기가 너무 힘든 간절한 소망이었다.

당시 여행을 준비한답시고 한 일은 도서관에 꽂혀있는 아무도 대출해 가지 않는 수많은 여행기를 읽는 게 전부였다. 대책 없는 계획과 여행기 탐독이 우리의 꿈을 현실화 시켜 줄리 만무했지만 결국 우리는 그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책 속에서 지구 위를 달리는 자전거를 본 것이다. 배낭여행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여행비용의 가장 큰 부분은 숙박비과 교통비이다. 우리가 고생해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세계일주가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을 했다.

난 20년이 넘도록 자전거를 타본 일이 없다. 한 친구는 자전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자전거 여행을 하느냐 물었다. 난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거다. 그것이 자전거 세계일주든 비행기 세계일주든 기차 세계일주든 뭐든 상관이 없다. 자전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전거가 삐쳐서 안 굴러가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어쨌든 난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할 거다. 그런 눈초리는 그만. 친구가 중대한 결정을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지지해 주는 것이 친구의 도리다.

자전거로 여행하기를 결정하고 보니 나름 장점이 있었다. 난 우리 여행에 [선의 여행]이란 의미를 부여했다. 비행기타고 기차, 버스 타고 관광도시 찍고 움직이는 여행이 [점의 여행]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이정표와 지도를 꼼꼼히 살펴가며 길 위를 달리는 여행은 [선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길을 잃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갈 수도 있고, 상술에 찌든 장사치들을 피해 때 묻지 않은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단점이라면 단 하나, 무지 힘들다는 것이지만 여행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난 손 꼽히는 건강한 아저씨가 될 테니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게 지지부진했던 4~5년의 시간은 두어 달 만에 구체화되어 떠나기에 이르렀다. 흔히 말하는 라이더들이 들으면 괘씸하겠지만 우린 자전거를 좋아하지도 않고, 자전거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자전거 세계일주를 계획한 이상 우리도 자전거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싫어하는 것 보단 좋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어쨌든 자전거는 우리의 세계일주를 가능하게 해준 고마운 물건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억할 건 자전거는 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 난 자전거를 타려고 떠나는 게 아니라 떠나기 위해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 그걸 잊으면 안 된다. 우리 자전거 세계일주의 자전거는 바로 그런 존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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