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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여행 관련 상품이 걸려있는 손쉬운 공모전이나 이벤트를 찾던 중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주최한 [Iloveindonesiabecause...]라는 공모전을 발견했다. 오랜 여행으로 관련 콘텐츠가 많은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을 여행했을 때의 비디오를 훑어보고 하나 뚝딱 만들어 응모했다.

좀 낯 간지러운 내용이었지만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다. 인도네시아 대신 다른 나라를 집어넣어도 다 얘기가 된다는 것 빼고는... 어쨌든 공모전 수상으로 받은 발리 여행 티켓을 이리저리 조합해 가족 여행으로 바꿔 발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발리의 위치를 대강 알고 있긴 했으나 이번에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호주와 상당히 가까워 놀랐다. 그 말인즉슨 비행시간이 상당하단 얘기. 직항으로 7시간 이상. 우리는 한번 경유, 기다리는 시간 포함해 12시간 가까이 걸린다. 네 살 아들, 6개월 딸과 함께하기엔 부담스러운 거리였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발리에 가겠나.

그렇게 로얄 브루나이 항공을 타고 발리로 향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로얄 브루나이 항공은 가격은 저렴한데도 저가 항공사로 분류되는 항공사가 아니라서 유아 할인도 제대로 적용되고, 식사니 뭐니 추가 비용도 없다. 밥도 꽤 먹을 만했다.

제일 좋았던 건 오며 가면 환승 포함 4번의 비행기를 탔는데, 한 번도 비행기가 꽉 차지 않아 빈자리를 차지하고 나름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야 했던 우리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쨌든 인천에서 떠난 비행기가 브루나이를 거쳐 발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1시 반. 수속 밟고 짐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온 시각은 12시 반. 택시를 타고 목적지인 우붓에 도착해 숙소 방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새벽 2시 가까운 시각이었다.

아이들이 제법 잘 버텨줬지만 그만큼 옆에서 비위 맞춰주느라 나와 일로나는 기진맥진. 샤워나 하고 자려는데 뜨신 물도 안 나오고, 그나마 나오는 물도 샤워기를 타고 졸졸졸 흘러내렸다. 순간 종일 쌓였던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여행 시작부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올라오는 짜증을 꾹꾹 눌러 앉혔다. 그리고 모든 게 귀찮아져서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 방에 널려있는 짐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리셉션에 가서 졸졸졸 나오는 물과 뜨신 물 그리고 신호도 안 잡히는 wifi에 대해 불평을 한 뒤 아침을 먹으러 갔다.

몇 사람이 방에 왔다 갔다 하더니 해결이 안 되는 듯 다른 방으로 짐을 옮겨줬다. 새로 옮긴 방은 앞선 방과 다르게 모든 것이 잘 작동했다.

컴플레인 하기 전에 미리 잘 확인해줄 수는 없는 것인지...

새로 옮긴 방에 캐리어의 짐을 풀어 잘 정리하고 나니 이제야 즐거운 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같이 느껴졌다.

어제의 피로도 있고 해서 어디 나가지 않고 아이와 수영장에 갔다. 크기는 작았지만, 아이와 놀기에는 충분했다.

호텔의 건물 양식이나 이끼 낀 돌, 주변 정글 풍경이 머릿속에 그렸던 우붓의 이미지와 잘 맞았다.

딱히 뭘 하지 않고 마냥 수영장에 늘어져 있어도 좋을 법했다. 날씨가 흐린 탓에 물이 조금 차가워 6개월둥이 딸 이나가 물만 닿으면 울음을 터뜨린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인후는 입술이 퍼레질 때까지 물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았다.

한참을 놀다 방으로 돌아와 아이들 낮잠 재우고 나만 혼자 나왔다. 동네 파악을 하고자 중심가를 관통해 멀리까지 가서 달러를 환전했다. 우붓의 중심가는 왕복 2차선 도로와 좁은 인도에 차와 사람이 빼곡해 번잡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유모차 끌고 아이와 돌아다닐 거리가 아니었다. 딱히 볼 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식당에 들러 점심거리를 포장했다. 인후가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서 레스토랑보다 방에서 먹는 게 낫다.

이곳에서 사려고 아이 물품을 준비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밥을 먹고 장을 보러 나섰다. 우붓에서 제일 크다는 빈탕 수퍼마켓에 가려면 또 중심가로 나가야 하는데 아이와 걷고 싶은 길이 아니어서 택시를 불렀다. 이곳엔 다른 대중교통이 없다. 택시와 오토바이 택시가 전부였다. 또 택시비가 전반적인 물가에 비해 크게 비싼 건 아니었지만 움직일 때마다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오토바이 렌탈이 최선의 방법으로 보였으나 아이가 있는 우리에겐 택시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퍼마켓에 가서 과일과 아이 기저귀, 이유식, 맥주 등을 산 뒤 돌아왔는데 4만원어치의 물건을 사려고 1만원에 가까운 택시비를 지불했으니 또 갈 일이 있으면 혼자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가는 편이 좋겠다.

장 본걸 방에 갖다 놓고 뭔가 다른 게 있을까 싶어 중심가 반대편으로 좀 걸었다. 길 양옆에 호텔과 식당, 여행사들만 늘어서 있을 뿐 별 볼 건 없었다. 건물 사이 사이로 논이 조성돼 있는 게 좀 독특했다.

그밖엔 전혀 흥미로운 게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담배를 한 갑 샀다. 항상 말하지만, 하루를 마치고 발코니에 앉아 좋은 음악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파트너와 노닥거리는 시간은 빼놓을 수 없는 여행 중 최고의 순간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땐 담배를 좀 펴줘야 한다. 금연을 깨기에 이보다 더 좋은 순간도 없다. 아이들 때문에 여유롭게 발코니에 앉아 있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열흘 동안 몇 번의 기회를 있겠지.

아이와 여행을 하면 종일 돌아다니는 일정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지난번처럼 오전에 한군데를 둘러보고 오후엔 수영장에서 노는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코스는 몽키 포레스트. 걷기엔 먼 거리라 택시를 타고 몽키 포레스트로 갔다. 수풀이 우거진 정글 사이로 자유롭게 뛰어노는 원숭이들을 구경하는 코스.

길이 너무 오르락내리락해서 계단 때문에 유모차를 끄는 구간 보다 들어야 하는 구간이 더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땀이 많은데 힘까지 쓰려니 일로나가 안쓰러워할 정도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동물을 좋아하는 인후가 가까운 거리에서 원숭이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아빠로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단지 인후가 아기 원숭이에게 너무 접근했다가 어미로 보이는 원숭이에게 귀싸대기 한 대 맞은 후론 계속 유모차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해 좀 힘들었던 게 문제였다면 문제.

이곳에서는 그냥 포레스트라고 하지만 확실히 우리나라의 숲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열대우림이 보여주는 그 원시적인 느낌. 그 사이를 원숭이들이 뛰어 돌아다니니 그 느낌이 더 했다.

땀 나지 않을 만큼 슬슬 걷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하며 천천히 즐기면 좋으련만, 한시도 가만히 있는 못하는 아이들에겐 그것이 또 고충일지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 기분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만하면 원숭이 충분히 봤다 싶을 만큼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 먹고 아이들 낮잠을 잔 후 수영장으로 갔다. 종일 구름이 낀 날씨라 물이 좀 찼지만, 인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속에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이나를 물속에 넣으려 시도를 해 보았지만 역시 물이 찬지 발끝만 닿아도 울음을 쏟아냈다. 어쩔 수 없이 유모차에 앉혀놓고 우리만 물놀이를 즐겼다. 한참을 놀아서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나오지 않으려는 인후를 설득해 방으로 돌아왔다.

저녁엔 또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이곳에서 쓰는 배달 어플이 있나 찾아봤다.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한 미고랭(볶음면), 나시고랭(볶음밥)이 맛있다고 하던 일로나도 벌써 입에 물렸는지 다른 음식을 찾던 차였다. 유명한 요리가 볶음밥과 볶음면이라면 이곳의 음식 문화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아시아 전역에서 먹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리이니 말이다. 특히 동남아 여러 곳에서 볶음 요리할 때 쓰는 간장류과 피쉬소스는 맛은 좋지만 금방 물린다.

다행히 Gojek이란 어플을 발견하고 피자를 주문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어플인 듯한데, 택시, 오토바이 기사와 연결해주는 어플이다. 재미있는 건 음식을 시킬 때 식당에 주문하는 게 아니라 식당과 메뉴를 지정해주면 오토바이 기사가 직접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해 받아오고 배달료를 챙기는 시스템이었다. 일종의 심부름 서비스라 하겠다. 어쨌든 주문한 피자는 직접 화덕에 구워 아주 맛이 좋았다. 남은 일정, 교통편이 안 좋은 이곳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것 같다.

매번 택시를 타는 게 부담스러워서 이번엔 걸어서 갈만한 코스를 골랐다. 메인로드에 있는 사라스와띠 사원(Saraswati Temple)과 우붓 궁전(Ubud Palace). 입장료도 없다 하고 1.5km 정도니 슬슬 걸을만했다. 차와 사람이 뒤범벅이고, 엉망인 보도블록 위에서 힘들게 유모차를 끌고 사라스와띠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은 아주 조촐했다.

그러니 입장료가 무료겠지. 해자에 핀 연꽃이 좀 예뻤을 뿐이었다.

인후는 나비를 쫓아다니느라 여기저기 분주히 뛰어다녔다.

어쨌든 왔으니 사진 몇 장 찍고

우붓 궁전으로 이동했다.

과거 우붓이 독립국이었을 때의 왕궁이라 하던데 뭐 볼 게 하나도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 우붓이 독립된 왕국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 궁의 사이즈를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왕국이라는 말이 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딱히 볼 것 없는 유적지였지만 그래도 뭐 하나 둘러본 것에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붓의 길은 참 불편하기 짝이 없다. 1~2km 정도 되는 메인로드 좌우로 가지처럼 길들이 길게 뻗어있는데 그 가짓길들을 연결하는 길이 없다. 그러니까 이쪽 블록에서 저쪽 블록으로 가려면 무조건 메인로드까지 나가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참 비효율적인 길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도 그런 사이사이 골목길이 없으니 걷는 재미가 없다.

저렴하고 근사한 분위기의 호텔도 많고, 차를 타고 나가면 근방에 구경거리도 많지만, 일부러 찾아 움직이거나 호텔에서 늘어져 있을 게 아니라면 우붓 그 자체는 명성만큼 큰 매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붓의 명성에 크게 기여를 하는 것 중 하나가 논 풍경인데, 그건 쌀이 주식이 아닌 서양인에게나 이국적인 거지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니 말이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아이들과 수영장에 갔다. 어제는 울음을 터뜨리던 이나도 처음엔 좀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다 햇살이 좋아서인지 이내 첨벙거리며 즐거워했다.

비록 아이들을 잡고 있어야 해서 나 혼자 자유롭게 수영을 즐길 순 없지만, 이 여행이 아이들에게 고생스러운 경험으로 기억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기에 항상 아이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물놀이를 좋아해서 수영장 딸린 호텔만으로도 기본적인 즐거움은 줄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