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lan Korea
Columbia
Scott

아이들과 여행하면 구경거리도 아이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계획한 곳이 앨리펀트 사파리 파크. 코끼리를 가까운 곳에서 보고, 만질 수도 있다 하니 동물을 좋아하는 인후에겐 딱이다.

그제 이용했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친절해서 또 그 아저씨를 불렀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아저씨가 지도에서 봤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알아서 가려니 하고 그냥 있었는데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발리 사파리였다. 그곳은 코끼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을 구경하는 사파리였다. 다시 돌아가기가 그래서 그냥 이곳 사파리 티켓을 사려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외국인은 현지인보다 세배 이상 비싼 티켓을 끊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당 8만원 가까운 돈이라 좀 부담스러워 택시 아저씨에게 말해 원래 가려 했던 목적지로 가 달라 했다. 아저씨도 그제야 제 실수를 알고 미안해하며 서둘러 차를 몰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내내 택시에서 보낸 끝에 애초 목적지인 앨리펀트 사파리 파크에 도착했다.

이곳은 크게 둘러보는 코스는 아니고, 넓게 조성된 코끼리 우리 주변에서 코끼리를 구경하는 곳이었다. 코끼리가 난간으로 와서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같이 사진 찍고, 돈을 더 내면 코끼리에 올라타 주변 돌아다니고, 목욕도 시켜주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예전에 어린이 대공원에서 코끼리를 보고 무서워했던 인후는 역시나 겁을 먹어 뒤로 주춤거렸다.

하지만 다른 관광객과 친근하게 노는 코끼리를 지켜보다 이내 두려움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코끼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는 건 나도 처음이라서 재미있게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코끼리가 만만해진 인후는 나중엔 너무 적극적으로 먹이를 주려기에 내가 말려야 했다.

인후는 이제 지금의 경험을 나중에도 기억할 나이가 됐으니 오늘의 경험이 훗날 즐거운 기억으로 떠올리길 바란다.

동남아의 많은 코끼리 관련 투어 프로그램들이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몹쓸 짓을 한다는 비난이 많다.

나도 나름 그런 운동에 동참하고자 코끼리 라이딩이나 쇼 같은 건 보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것도 좀 망설였었다. 하지만 그런 이슈 때문인지 이곳은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방식으로 코끼리를 사육한다는 광고를 해서 그냥 모른 척하고 왔다.

하지만 조련사의 말에 따라 코끼리들이 척척 따르는 걸 보면 과연 혹독한 조련 없이 그런 게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광고가 뻥이 아니길 바라는 수밖에...

이제 어디 딱히 갈 데도 없고 멀리 움직이자니 택시비 때문에 짜증 나고 해서 남은 시간 동안에는 그냥 수영장에서 놀았다.

이나도 물놀이의 즐거움을 알았는지 구름 때문에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물이 찬데도 불평 없이 물속에 잘 들어갔다. 인후는 언제나처럼 이가 달달 떨릴 때까지 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래, 아이들에게 열대우림의 이국적인 풍경이며 유서 깊은 유적지의 가치가 무슨 소용이랴. 그저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놀이터가 필요할 뿐이다.

편리함 때문에 며칠 배달앱을 이용했더니 그것도 쌓이니까 마냥 저렴한 것만은 아니었다. 점심시간처럼 차 막히고 분주한 시간대에는 오토바이 기사가 배달료를 더 달라고 흥정을 해오기도 했다. 일이천 원 흥정이 귀찮아서 그냥 알았다고 빨리 갖다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건넨 일이천 원이 나중엔 꽤 큰 돈이 됐다. 그래서 산책 좀 할 겸 전에 맛있게 먹었던 피자가게에 직접 가서 피자를 포장해왔다.

Umah Pizza라는 가겐데, 내가 피자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돌이켜보건대 내가 먹은 피자 중 가장 맛있는 피자 중 하나였다(이 블로그에 가게 이름을 직접 언급한 건 아마 처음이지 싶다.) 일로나도 그런 소릴 하는 것 보면 맛있는 피자가 틀림없다. 여행 중엔 웬만하면 현지 음식을 먹으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볶음밥과 볶음면이 유명한 음식인 나라에선 현지식만 고집하기엔 한계가 있다. 비싼 음식 중엔 맛있는 음식도 많을 테지만 난 가난한 여행자니 저렴한 음식에서 맛난 음식을 찾을 수밖에 없다.

우붓에서 제일 맛있게 먹는 현지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바비굴링이었다. 새끼 돼지를 통으로 구워 밥, 반찬과 함께 내놓는 음식이다. 물론 돼지고기는 조금 썰어서 얹어준다. 고기는 야들야들하고 껍데기는 바삭하다. 내가 느끼기엔 바삭하기보다 좀 딱딱했는데 일로나는 좋아했다. 세르비아에도 같은 요리가 있다. 돼지 통구이야 특별한 조리법이 아니니 여기저기서 같은 방식으로 조리할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없다.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나라는 돼지를 구워 껍데기를 바삭하게 먹고, 졸깃한 식감을 좋아하는 우리는 족발처럼 삶아 먹거나 껍데기만 불판에 구워 역시 졸깃하게 먹는 걸 즐기는 게 아닌가 싶다. 바비굴링에 같이 나오는 반찬이나 소스는 꽤 매웠다. 한국 사람이야 좀 맵네..하며 먹을만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우붓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꾸따로 이동했다. 처음엔 우붓에만 머물려 했었는데 비행기가 아침 7시 출발이라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우붓에서 이동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공항에서 가까운 꾸따로 옮기고, 그러는 김에 꾸따에서도 이틀 정도 머물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우붓에서 오는 내내 도로 이정표가 하나도 없어서 네비도 없이 운전하는 아저씨가 참 신기했다. 관광지인 스미냑에 들어서면서 이정표도 좀 보이고 차도 막히기 시작했다. 어디 가나 왕복 2차선밖에 안 되는 좁고 막힌 도로를 통해 번잡한 스미냑, 르기안을 거쳐 꾸따에 도착했다. 발리는 오래전부터 유명한 관광지이고 그게 꾸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역시 좁은 골목길에 여행객과 여행자를 위한 상점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우선 호텔에 집을 풀고, 점심거리를 사러 나왔다. 죄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뿐이었다. 한참 골목골목을 돌아보며 깊숙한 곳에 갔더니 현지인이 찾는 식당이 보였다.

우붓에서 30,000루피아(2,500) 하던 미고랭(볶음면)10,000루피아였다. 그래, 이게 진짜 인도네시아 물가지. 싸구려 로컬 음식을 포장해와서 간단히 요기한 후 인후와 잠시 물놀이를 했다.

수영장이 호텔 건물에 둘러싸여 있어서 해가 기울면 볕이 들지 않아 물이 차가웠다. 그래서 조금 놀다 바닷가로 나갔다.

발리 바다는 그리 기대할 게 없다고 하더니 과연 탁한 색깔의 바다였다.

그리고 파도가 엄청났다. 발리가 유명해진 게 이 큰 파도가 서퍼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거친 바다를 보니 이건 물 때깔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그냥 다른 용도의 바다였다. 한껏 파도를 타고 있는 서퍼들을 보니 서핑을 배우고 싶어졌다. 서핑만 한 재미가 없다고 하던데... 어쨌든 가족과 함께할 바다는 아니었다.

그렇게 바다를 감상하는 중에 느끼하게 생긴 한 인도사람이 와서 인후와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나 물었다. 난 당연히 애가 귀여워서 그러는 줄 알고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일로나가 안된다고 평소 같지 않은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일로나가 소아성애자 같다는 생각지도 못한 소릴 하길래 놈을 자세히 뜯어보니 왠지 그런 느낌이 나긴 했다. 느닷없이 애랑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묻는 것도 이상했다. 지금껏 누구도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우리의 거절에 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섰다. 파도 때문에 아이와 놀기 힘들 것 같아 우리도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코끼리 바지를 몇 벌 샀다. 여행지에서 여행 기분 내기 딱 좋고 집에서도 편히 입기 이것만 한 게 없다. 어디나 그렇듯 가격을 너무 후려치길래 나름 깎는다고 확 줄여 흥정을 시작했는데 너무 쉽게 오케이를 해서 당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 장사치들을 어떻게 이기나. 그래도 2년 전 3천원가량 주고 샀던 베트남 호이안 코끼리 바지보단 품질이 좋아서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한 벌에 50,000루피아(4,100)를 주고 샀으니 이 글을 보는 사람은 40,000루피아로 흥정하길 바란다. 여행자들이 좀 모인다 싶은 동남아 전역에서 파는 이 코끼리 바지의 원가는 도대체 얼마인 건지 몹시 궁금하다.

다시 나만 혼자 저녁거리를 사러 나왔다. 이곳은 골목골목마다 여행지 분위기가 물씬 이다. 여행자 거리 하면 떠오르는 카오산 로드보다 이쪽이 규모 면에서 훨씬 더 큰 거 같았다.

남자 혼자 돌아다녀서 그런지 야시시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와 마사지 호객행위를 했다. 보아하니 마사지 그 너머의 것을 유혹할 요량인 듯했다. 가정적인 나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저녁거리를 찾아다녔다. 유명하다는 폭립 바비큐를 사서 돌아와 맛나게 저녁을 먹었다.

꾸따는 일로나와 둘이 왔으면 골목에서 근사한 라이브 펍을 찾아 맥주를 마시고, 서핑도 배우고 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니 딱히 할 일이 없는 곳이었다. 일로나는 우붓에서 만끽했던 초록빛이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 얘기를 나누는 도중 모기가 팔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붓에선 그 열대우림 환경에서도 모기가 거의 없었다. 신기하네...

꾸따의 골목길은 방콕 카오산 로드의 분위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사실 동남아의 여행자 거리라고 하는 곳은 대게 다 이와 비슷하다. 여행사들, 로컬 식당, 마사지샵, 옷가게, 기념품 가게. 심지어 상점에서 파는 옷이나 기념품도 다 비슷비슷하다.

처음 카오산 로드에 갔을 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 첫 해외 여행지는 인도였는데 비행기가 방콕을 경유해서 스탑오버로 잠시 머물면서 카오산 로드에 갔었다. 첫 여행에서 배낭여행자의 성지라고 하는 곳에 갔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수많은 여행자에게서 분출되는 그 자유롭고 흥겨운 에너지가 가득했던, 과장해서 말하면 파라다이스가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 뒤로도 여행하면 무조건 카오산 로드부터 떠올렸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애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행 경험이 많아져서 그런지 이젠 이런 분위기가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만 있고 할 게 없어 좀 심심하다. 애가 없어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별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발리라는 이름이 주는 로맨틱한 그런 느낌도 없었다. 그냥 많은 여행자가 몰리는 지역 중 하나일 뿐. 정말 서핑 아니면 할 게 없어 보였다.

해변이 서쪽이라 선셋이나 볼까 해서 다시 바닷가로 갔다많은 사람이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호기롭게 서핑 보드를 들었지만 막상 높은 파도 앞에서 더이상 들어가지 못하는 커플,

대형 연을 날리는 아이들,

일몰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 사이를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니는 인후.

선셋 자체는 평범했지만 그렇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서 이렇게 즐거워하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여행지의 겉모습은 언제나 즐거움뿐이다. 여행객은 그 즐거움을 취하는 것이고...

다음날은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가 이어졌다. 여기서 할 일이라곤 수영뿐인데 날이 흐려서 물이 찼다. 덕분에 인후는 신나게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을 봤다. 집에 TV가 없어 주말에만 한편씩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여행 중에는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짜증을 잠재우기 위해 자주 아이패드 카드를 꺼내 든다. 하긴 놈에게도 여행 기간인데 자기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게 둬야지. 나도 여행이라는 핑계도 끊었던 담배를 피우니 말이다.

낮에는 일로나의 친구가 발리에 왔다 해서 만났다. 나도 지난번에 베트남에서 터키 친구를 만났었는데, 어떨 때 보면 참 좁은 세상이다.

마지막 저녁 만찬으론 다시 폭립을 선택했다. Goku BBQ라는 유명한 집에서 한번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근데 가격이 좀 비싸서 그 옆에 있는 집에서 사다 먹었다. 역시 맛이 좋았다. 바베큐는 숯불 맛이 생명인데 인도네시아는 사테라는 꼬치구이 음식이 있어서 작은 가게에서도 불맛 가득한 구이요리를 잘 만들어낸다. 그러니 굳이 유명하다는 집만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폭립 바베큐 만찬을 끝으로 우리 네 가족이 함께한 첫 여행은 막이 내린다.

P.S) 아이 둘 데리고도 여행은 충분히 할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