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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좀 서둘러 출발하려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평소와 같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오르막이 계속돼도 보통 2,250m 정도에서 내리막이 시작되기에 그 고도에 맞춰 마음가짐을 갖곤 하는데 오늘은 2,450m 까지 올라간다. 지옥 같은 200m였다. C 23-1내려오는 길. 한참 신나게 달리는데 맞은 편 대형 화물차 뒤에 있던 승용차가 추월을 하려고 튀어나온다. 내 정면으로 갑작스럽게 나와서 잽싸게 핸들을 꺾는다. 좁은 산길, 아래는 낭떠러지에 가드레일도 없다. 순간, 여기서 멈추지 못하면 떨어진다. 넘어져야 한다. 핸들을 좌로 꺾고, 몸을 튕겨나가 군대에서 배운 회전 낙법을 이용해 두 바퀴를 돌아 착지하자, 그리고 승용차 운전자에게 욕해주자… 라고 판단했다면 뻥이고, 그냥 나도 모르게 일부러 넘어져 굴렀다. 일어나니 앞 페니어는 저만치 날아가 있고, 앞 거치대는 심하게 휘어 있다. 왼쪽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오른쪽 어깨 부분 옷이 찢어지고, 왼손바닥이 욱신거린다. C 23-2승용차는 신경도 안 쓰고 저만치에서 달리고 있다. 일부러 넘어지지 않았다면 윈난의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서 객사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만으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자전거를 정비한다. 신나게 내려오는 길을 캠코더에 담으려다 귀찮아서 말았는데 캠코더를 고정하려고 만든 모노폴 거치대가 떨어져 나갔으니 하마터면 캠코더를 잃을 뻔했다. 비자 기간에 마음이 급한데다 오르막길에서 손해 본 시간을 만회하려고 시야가 좁은 커브 길을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시속 40 ~50km를 유지하며 달린 것이 화근이었다.

정비를 마치고 한참을 내려가니 효일이는 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자전거와 씨름을 하고 있다. C 23-3우리의 짐이 많기는 하나 둘이서 분배하기 때문에 혼자 다니는 자전거 여행자와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자전거 여행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잔고장이 많은 것인지 우리가 아직 잘 몰라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담배 한 대 피고 다시 출발. 조그만 마을에 장이 섰는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앙증맞은 꼭지만 없지 맛이나 모양이 같은 한라봉을 8개의 540원에 산다. 정말 싸다. 그리고 한 켠에서 국수 한 그릇. 맛이 좋아 위험천만했던 순간은 이미 사라지고 이내 즐거워진다.

좀 달리다 뒤 페니어 거치대 나사가 부러진다. 하루에 한 개꼴. 오래 전 일싱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곳 주방장 형에게서 체념의 의미를 새롭게 배운 적이 있다. 반복되고 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그냥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 거기서 울상 짓고 있어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기간 내에 자전거를 타고 국경에 도착하기는 어렵다. 달리다 시간 없으면 버스 타고 가면 되는 걸 뭘 그리 조바심 냈는지… 간혹 뭔가에 몰입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나무만 보이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되곤 한다. 어차피 자전거는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닌 걸 잠시 잊었다. 마음을 고쳐먹자 윈난의 푸른 논밭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가게에 들려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면서 그 동안의 어리석음을 반추해본다.

어두워질 무렵. 대형트럭 운전사들이 잠시 머무는 허름한 숙소를 잡고 짐을 푼다. C 23-4주인 내외분이 친절하다. 밥을 먹었느냐 묻기에 아직이라고 했더니 돈 받지 않는다며 국수를 삶아준다. 주인집 방에 들어가서 국수도 먹고, 과일도 먹고, 차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웃고 떠들 수 있는 순간이다. 한동안 꺼내지 않았던 기념품과 포토프린터를 해준다. 중국인의 접대 예절은 무엇이 비면 바로바로 채워주는 것이라서 많은 차와 담배를 마시고 피워댄다. 목이 다 아프다. 그래도 오랜만에 맞는 따스함이다. 위험한 순간에 대한 두려움은 이런 순간들로 희석된다.C 23-6오늘의 포인트. 급할수록 돌아가라.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라. 우리나라 한라봉은 너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