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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소리에 잠이 깬다. 이삿짐 내 가는 소리다. 내가 자고 있던 쇼파만 남고 거의 다 치워졌기에 일어나서 짐을 견착하고 나온다. C 4-1샤미 아저씨가 와 있다. 올 때 갈 때 딱 두 번 보게 됐다. 여긴 일 때문에 왔고 집은 이슬라마바드에 있다고 주말에 거기서 밥이나 먹자고 한다. 라호르에서만 열 명 가까운 호스트의 승낙을 받았는데 샤미 아저씨를 선택한 이유는 동생이 플랜 파키스탄에서 일을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플랜 파키스탄에 방문할 예정이니 아마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이삿짐 빼는데 정신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온다.

오늘은 하늘이 흐린 게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다. 샤미 아저씨도 원래 4월엔 굉장히 더운데 올해는 전혀 덥지 않다며 이상해 했다. 지구 전체의 기후가 패턴을 벗어나고 있는 듯 하다. 어쨌거나 그 벗어난 패턴 덕에 난 좋은 날씨에 길도 좋아서 자전거 타기가 수월하다. 내친김에 40km를 달리고 첫 휴식을 한다. C 4-4

처음 보는 음식이 보이길래 먹어본다. C 4-2감자와 양파, 그리고 콩으로 만든 듯한 푸석한 유부느낌의 재료를 정체 모를 흰 소스에 버무려 먹는다. C 4-3맛 졸라 없다. 다신 거들떠 보지도 말아야겠다. 옆에 있는 가게에서 음료수 하나 달랜 후 가격을 물으니 공짜라고 그냥 먹으라 한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겨움이다. C 4-5담배를 하나 사려고 제일 싼 거 하나 달랬더니 그것도 그냥 주려 한다. 이제 니맘 알겠으니 담뱃값은 받아라. 30루피(약 400원)짜리 담밴데 제조회사가 KT&G다. 이게 우리나라 KT&G인지 로고 기억이 안나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왜 이렇게 맛대가리 없는 싸구려 담배를 만드는지 모를 일이다. C 4-9

이제 떠나려 하니 한 친구가 와서 자기 학교에 가자고 한다. 그럴까 그럼. 그 친구를 따라 학교에 간다. 학교라고 하는데 그냥 옆 건물에 있는 학원 같은 곳이다. 시험을 보는 중인지 학생들이 마당에 띄엄띄엄 앉아서 문제를 풀고 있다. 난 교직원실 같은 방에 가서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눈다. 선생님들도 영어를 잘 못한다. 그리고 학교장 같은 할아버지 사무실에 가서 인사를 하고 짜이 한 잔 마신다. 잠시 후 선생님들끼리 의견을 나누더니 나에게 학생과 대화시간을 가지면 안되겠냐 묻는다. 그러지 그럼. 시험이 중단되고 교실에 모든 학생이 모인다. 선생님도 영어를 잘 못하는데 애들은 오죽 하려고… 항상 되풀이되는 여행 얘기가 오가고 다시 교장실로 들어온다. 교장 할아버지가 밥 먹고 가라고 치킨 비르야니를 시켜줘서 그거 먹고, 건네는 바나나 한 봉지를 받는다. 아이들과 사진 한 방 박고 인사를 하고 나온다. C 4-6정체됐던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갑자기 신이 나서 쭉쭉 페달을 밟는다.

하루 종일 흐리더니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먼지가 너무 많아 잠깐 비를 반겼지만 그칠 생각을 않는다. 60km를 달리고 멈춘다. 비가 오면 잠자리가 걱정된다. C 4-7빗줄기가 좀 줄어들어 다시 달리고 한 주유소에 멈춘다. 주유소 구석에 타이어를 봐주는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그 친구 밖에 없어 물으니 텐트 치지 말고 안에서 자라고 한다. 안에 있는 그물 침대 위에 놓인 이불 상태가 영 맘에 들지 않았는데 나름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기로 한다.

C 4-8먼지 젖은 빗물에 차에서 튀긴 흙탕물을 뒤집어써서 장난 아니게 지저분하다. 샤워를 한다. 돌아오니 친구들이 잔뜩 모여있다. 동네 백수들의 아지튼가 보다. 역시 영어는 전혀 안 통한다. 좀 있으니 비닐에 쌓인 고무 찰흙 같은 걸 내민다. 뭐냐 물으니 담배 가루를 빼서 섞는 시늉을 하는데 아무래도 하시시인 것 같다. 담배 속을 빼고 동그랗게 만 덩어리를 불에 잠시 태워 부순 후 담배 가루와 섞어 다시 담배 속에 넣는다. 분위기 맞추느라 한 번 빨고 넘긴다. 고무 찰흙 모양의 하시시가 마치 상품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다. 마리화나나 하시시 정도는 참 여러 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듯 한다.

잠시 후 한 친구가 로띠와 커리를 들고 온다. 간단한 상이 차려지고 밥을 먹는다. 맛있게 잘 먹고 트름 한 방 때려 줬더니 좋단다. 그리곤 전화를 걸면 여자 온다고 하나 불러줄까 한다. 파키스탄에선 길거리에서 여자 보기가 쉽지 않다. 그걸 보며 얘넨 어디서 연애 하나 싶었는데 어디서든 할 건 다 하는 구나 싶다.

이 친구들과 있으면서 비디오를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모두 담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왠지 참아야 할 것 같았다. 장갑을 뽀리까려 했던 인도네시아의 노래하는 청년들도, 캠코더를 뽀리깐 게 확실한 인도의 라훌도 그리 나쁜 애들은 아니었다. 그저 비싼 게 눈 앞에 아른거렸을 뿐이다. 그걸 어떻게 탓하랴. 경우에 따라선 욕망을 참지 못하는 이보다 욕망을 제공하는 이가 더 나쁠 수도 있다.

오늘은 두 번의 휴식만 갖고 세 타임에 130km를 달렸다. 혼자 달리니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주행을 조절할 수 있어 좋다. 이렇게 홀로 여행의 장점이 하나씩 발견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