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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 내 나라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비치는 우리나라가 궁금해진다. 나는 어차피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이란 나라에 호감을 갖고 있는 나라에 방문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고, 그 영향 때문에 나 또한 그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그럼 어떤 나라가 그러하냐 하면…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들 중엔 몽골, 베트남, 터키가 그렇다. 그밖에 몇몇 나라에서 한류 붐에 의해 호감을 보내는 나라가 있긴 하지만 그건 현재의 거품일 뿐이다. 베트남 같은 경우는 한류 붐과 한국인과의 국제결혼 증가,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경제 발전의 롤 모델로서 우리나라에 호감을 갖고 있다. 국제 결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사연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싶지만 그 과정이 선뜻 추천하고픈 방법이 아니기에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경제 발전에 관해서는 진짜 좋은 점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그런 일시적인 유행과 일종의 목표의식을 따지지 않고 그냥 좋은 관계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는 몽골과 터키다. 아무래도 그런 관계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그럼 우린 몽골, 터키와 무슨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몽골 같은 경우는 단순히 우리가 몽골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몽골과 우리의 생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아니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야 옳은 설명이 된다.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우리가 몽골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했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올시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런 기간이 훨씬 더 적었다. 땅에 금 긋고 니 나라 내 나라 따지는 상황에선 언제나 국익논리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몽골과 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건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언제나 혈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근거가 된다. 비슷한 의미에서 터키와의 역사적 관계를 보자면 그것 역시 몽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린 비슷한 혈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터키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와 나름 개인적으로 조사 한 자료를 토대로 조합해 써내려 갈 글이기에 몽골의 경우는 다루지 않고 터키에 집중하고자 한다. 우선 당부하는 말은 기본적으로 고대 유목민의 역사는 그 사료가 전무하다 할 수 있고, 학술적으로 체계적인 조사를 한 것도 아니기에 이 글은 사실과 추측이 뒤섞인 글이 될 것이다. 그 느낌만 받아들이고 보다 정확한 사실 여부는 개인의 관심에 따라 더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1장

2002년 월드컵 즈음이라 생각되는데 언젠가부터 터키가 우리의 혈맹국이니 어쩌니 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언론이나 사람들은 터키가 한국전의 참전했다는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그 전까지 터키는 그냥 아시아인지 유럽인지 헷갈리는 쩌~기 어디에 있는 나라였을 뿐이었다. 근데 한국전에 참전한 나라가 터키만이 아닌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난 그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인터넷을 뒤졌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찾았다. 지금은 나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그 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터키가 한국전에 참전해서 혈명국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럼 왜 터키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한국에 파견한 것인가? 그 이유는 터키가 오래 전부터 우리와 동맹관계였기 때문이다. 터키민족을 부르는 말인 투르크를 한자로 표기하면 ‘돌궐’이 된다. 그리고 돌궐은 고구려와 형제국이라 여겨진 나라였다. 터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역사시간에 그 사실을 배우고 그때의 관계를 생각하며 한국을 여전히 형제국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외교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하며 큰 환대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터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터키로 돌아가서 어느 일간지에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라는 내용의 글을 싣는다. 이제 우리도 터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멋진 미담이 아닌가? 특히 마지막 대목은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왠지 용서를 구하고 싶을 만큼 짠한 마음이 드는 내용이다. 아마도 이 글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뒤 우연치 않게 터키와 월드컵 3, 4위전 경기를 하게 됐고, 세계적으로도 멋진 모습을 선사한 대형 태극기 세레모니를 터키의 국기로 재현해주고, 선수들 서로 어깨동무하고, 우린 형제국, 혈맹국이고, 잘 지내보자… 뭐 그런 흐뭇한 스토리로 흘러가게 된다. 나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다시 잊혀진 친구를 만나는 건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다. 그리고 나도 앵무새처럼 몇몇 친구들에게 그런 내용을 설명해 주곤 했다.

그런 마음이 있던 난 터키에 들어서기 전에 굉장한 기대를 했다. 정말 멋진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터키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고구려와 형제국이라 도와준 것이면 왜 북한이 아닌 남한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야?’, ‘고구려가 돌궐과 정말 좋은 사이였나?’

그 뒤 터키에 들어서고 터키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는 좀 더 ‘꼬레’를 환영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인이라서 떡 하나 더 얻어먹은 건 아니었지 싶다. 많은 떡을 얻어먹었지만 그건 내가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터키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서도 한국과 터키의 역사적인 관계를 들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난 그 사실여부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기에 이른다.

2장

우선 터키와 우리의 역사적 관계만을 말하는 것보다 터키의 역사를 훑으며 우리와의 관계를 연계하는 게 나을 듯 하다. 근데 이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한민족의 역사가 한반도의 역사와 동일한 우리와 달리 터키의 역사는 터키 민족의 역사와 터키 지방의 역사가 따로 놀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키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거의 세계사의 절반을 알아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혹시 현역 학생이 이 글을 본다면 우리나라의 긴 역사 때문에 국사공부 어렵다고 투덜거리지 말길, 우린 아주 양반이다) 그래도 한번 간략하게 정리해보겠다.

터키 민족 즉 투르크인들은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당시 투르크는 중앙 아시아에서 동쪽 끝까지 퍼져있던 많은 북방 유목민족의 하나였다. 그 뿌리를 흉노에서 찾기도 하는데 흉노의 직계 혈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투르크’를 중국인은 ‘돌궐’이라 표기했고, 우리도 그렇게 불렀다. 북방 유목민의 역사를 좀 알고 있는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당시 유목민은 뭉치면 굉장히 강해져 우리가 항상 아시아의 절대 강국이라 생각하는 대륙의 지배자 중국에도 조공을 받아낼 정도가 되지만(그 대단하게 그려지는 한나라의 유방도 흉노의 선우-여기서 ‘선우’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왕을 말하는 직위 명이다-에게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쳤었다), 그 땅이 척박해 부유해지기 힘든 여건이라 다들 자기 먹고 살기 급급해서 협력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투르크인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하더니 급격하게 땅 따먹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동쪽에 있던 ‘유연’을 삽시간에 깨부순다. 유연의 난민들은 동쪽으로 이주. ‘북제’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북제는 돌궐의 눈치를 보며 거절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동쪽으로 이동.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고 유연의 동맹국이었던 고구려는 그들을 받아준다. 유연의 난민을 쫓던 돌궐은 고구려라는 정주민인 것 같은데 유목민처럼 강인한 이상한 나라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그게 우리와 터키의 전혀 호의적인 교감을 찾을 수 없었던 첫 만남이었다. 당시 돌궐은 서쪽으로는 키스피해부터 동쪽으로는 만주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누리고 있었다.

한편 그 무렵 지금의 터키지역을 일컫는 아나톨리아 지방은 비쟌틴 제국의 영역이었다. 아나톨리아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찍이 문명이 꽃피고, 수많은 제국에 의해 주인이 바뀐 땅이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계 4대 문명이라 배우는 지역의 유적보다도 오래된 기원전 9,000년 전 문명의 흔적을 발견되기도 한다. 하타이트, 프리지아, 리디아, 카리아 등 듣보잡 나라들이 그 지역에 있었다. 그 뒤로 페르시아가 대부분의 땅을 차지했고, 서쪽 해안가는 그리스의 식민지 영역이었다. 애초 ‘Asia’란 말은 그리스 동쪽에 있는 아나톨리아 지역만을 뜻했다(어떤 땅, 지역, 나라를 말할 때 쓰이는 접미사 ‘ia’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이고, ‘stan’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됐다). 그 뒤 알렉산더에 의해 아나톨리아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가 뿌리내린다. 그 말은 유럽 문화의 동쪽 경계가 보스포루스 해협(이스탄불을 유럽과 아시아로 나누는 해협)에서 아나톨리아 지역까지 확대됐다는 의미이다. 그 방점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어로 ‘비쟌티움’이라 불리던 도시를 로마의 새로운 수도로 명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불리우기 시작한 것에 있다. 그 후 로마는 동서로 분열하고 콘스탄티노플과 아나톨리아 지역은 동로마제국의 영역이 된다(비쟌틴제국은 비쟌티움을 수로로 하고 있던 동로마제국의 별칭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터키에는 선사 시대부터, 그리스 신전, 로마의 건축물 등 다양한 고대 유적지가 곳곳에 졸라 많이 분포돼있다.

3장

다시 동쪽으로 와서…

돌궐과 고구려는 국경을 맞대고(이 부분에서 의문이 가시질 않는데, 북방 유목민의 역사는 칭기스칸 이후 몽골의 역사가 그 시작이라 할 만큼 남긴 혹은 남아있는 사료가 거의 없다. 그것도 몽골이 대제국을 만든 후 꽤 지난 시점에서 테무진을 기원으로 만들어진 몽골역사가 그들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역사다. 고구려의 역사서 또한 모두 유실된 상태여서 대부분 중국의 역사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중국이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오랑캐들의 역사를 얼마나 축소해서 기록하려 했을지, 얼마나 폄하하려 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땅을 엄청나게 크게 그려놓고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무리들이 있긴 한데, 그들의 말에 진위여부를 판단할 순 없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유목민들이 차지했던 땅이라는 게 급격하게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던걸 고려하면 적어도 고구려의 영역은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영역보다는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 아웅다웅하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사이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힘을 내기 시작한다. 수나라가 강력해지자 드디어 돌궐과 고구려가 손을 잡는다. 손을 잡았다기보다 서로에게 겨눴던 칼을 수나라에게 돌렸다는 게 맞다. 그런 식으로 서로 싸우다 협력하다 하는 건 수 천년 전이든 지금이든 크게 다르지 않은 국제관계의 룰이다.

수나라는 껄끄러운 두 나라가 서로 동맹을 맺으려는 상황을 보다못해 고구려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수나라는 고구려를 향한 무리한 세 차례 원정으로 급격히 쇠락해 멸망한다(세 차례 원정 중 첫 번째 전쟁 때 을지문덕 할배의 살수대첩이 나오는데, 살수대첩 또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청천강 유역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는 설이 많다. 백만 대군을 몰살시키기엔 청천강은 너무 좁은 강이고, 당시 평양이라는 말도 고유명사가 아니라 어떤 의미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였으니 평양성의 평양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현 북한의 평양 아닐 거라는 설이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같은 내용으로 우리가 대륙사관에 갇혀있다고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중국엔 당나라가 들어선다. 그 시점에서 돌궐은 다시 힘을 내 당나라에 조공을 받아낼 정도로 강력해진다. 하지만 당나라의 이이제이 정책으로 돌궐은 서돌궐과 동돌궐로 나뉘게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북방 유목민의 협력관계란 그런 것이었다(우리도 같은 민족이 삼분할 해서 좁은 땅을 나눠 갖고 있었지만 북방 유목민들의 협력관계와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북방 유목민들과 달리 우리는 확실한 국가 개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소서노가 킹 메이커로 활약해 세워진 고구려와 백제는 대치하고 있던 기간에 비해 큰 사건이 그리 많지 않은 반면 신라에 경우는 의심할 바 없이 우리민족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신라의 김씨 왕조가 흉노족이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화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에도 고구려는 양 돌궐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를 위해 연개소문은 동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했고, 서돌궐에도 사신단을 보내 연대를 유지했지만, 알다시피 연개소문을 끝으로 고구려는 무너지고, 협력국가를 잃은 동돌궐 또한 무너진다(그 훨씬 이전에 만주에 정착한 동돌궐이 바로 고구려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건 거의 헛소리에 가깝다).

당나라를 견제할 세력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자 서돌궐 또한 쫓기듯 조금씩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아무리 힘이 없다 한들 당시 뚜렷한 강자가 없었던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지방(지금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조지아 지역)으로의 이동은 서돌궐로서는 그리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비쟌틴 제국도 세력이 많이 축소된 시점이었다. 슬슬 서남쪽으로 이동한 서돌궐은 비쟌틴 제국의 변방인 아나톨리아 동쪽 즉 지금의 터키 동쪽지역에 자리를 잡는다. 서돌궐이 이 지역에 자리를 깔기 전에도 아나톨리아는 페르시아가 점유했다가, 다른 어떤 나라가 차지했다가, 다시 비쟌틴이 차지하는 혼전 지역이었다.

4장

투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에 자리를 잡은 이후 드디어 셀주크 투르크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전까지는 나라 이름 같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터키의 역사도 시작된다. 돌궐의 역사 즉 투르크인의 고대 역사는 그들의 의해 기록된 역사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기록된 역사를 기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터키사람들도 그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터키의 국사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최고의 명문대를 다닌다는 애들도 잘 모르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으로 하는 친구조차 잘 모른다. 그냥 투르크족이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만 알뿐이고, 중앙아시아를 기준으로 그 동쪽에 있던 나라들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아마도 사료가 전무하고, 현재 아나톨리아에 거주하는 유럽 지향의 국가라서 아나톨리아 지역에 관련된 역사와 유럽국가와의 관계만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현재 터키는 EU에 들어가려 애쓰고 있지만 EU에서는 그리 긍정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한다.). 이제서야 터키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과거 유목민 생활을 하던 때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이 많이 추진되고 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처음 문제제기를 했던 혈맹국 미담은 조작된 글이 분명하다. 나는 처음에 터키 사람에게 ‘왜 우리가 형제국이냐?’고 물을 참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우린 역사적으로 가까워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한국 사람들은 터키를 형제국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설명을 해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은 터키 사람은 ‘맞아 우리는 같은 피야..’하며 동조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들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좀 특별히 여기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이유는 백이면 백 한국전 참전과 월드컵이라고 말한다. 이 얘긴 뒤에 더 얘기하도록 하고…

아나톨리아 지역에 자리를 잡은 투르크 인들 중 셀주크 족(이주해온 투르크인들 사이에도 또 여러 분파가 있다)이 세력을 넓혀 셀주크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고 대부분의 아나톨리아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그 뒤 어깨에 힘을 좀 주고 살고 있는데 역사상 최강의 제국인 몽골의 팽창으로 셀주크 투르크가 폭삭 망해버리자 아나톨리아 서쪽에서 작은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오토만 족이 기회를 틈타 드디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등장한다(터키에서는 오스만 투르크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그냥 오토만이라고 말한다).

오토만이 강성해질 무렵 동쪽에는 중앙 아시아의 정복왕 티무르(티무르는 지가 몽골의 혈통이라 주장했지만, 사실은 몽골의 명성을 등에 업으려고 구라쳤을 가능성이 크다)가 있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어쨌는지 오토만은 서쪽을 공격한다. 오토만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스탄불로 개명해 수도로 삼는다. 비쟌틴제국은 그렇게 오랜 역사를 끝낸다.

그 후 오토만은 승승장구해 엄청난 강국이 된다. 그 영역은 서쪽으로는 지금의 모로코, 동쪽으로는 지금의 이란 서부, 북쪽으로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남부, 남쪽으로는 지금의 예맨에 이를 만치 광대했다. 즉 지중해와 동서양 교차로 전 지역을 영역으로 삼는 절대강자로 군림한다.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이주해온 뒤부터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던 투르크인의 오토만이 대제국이 되면서 이슬람 문화의 주인이 된 건 말할 것도 없다(현재 북아프리카 지역의 나라들은 아프리카라기보다 아랍이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가장 최근까지 그 지역의 주인이었던 오토만 제국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최고 지도자인 술탄은 정치과 더불어 종교적인 리더로서의 역할도 겸했다. 중세 유럽에서 교황과 왕들의 권력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사실을 비추어보면 그 두 권력 모두를 쥐고 있던 술탄의 힘은 가히 엄청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토만 제국은 그 힘이 늘었다 줄었다 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암기과목을 싫어해서 오스만 투르크하면 그냥 오래 전 지중해 지역의 제국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토만 제국이 끝나는 시점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이다.

5장

여전히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던 오토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에 붙어 전쟁을 치른다. 오토만 제국은 결국 패전국이 되는데, 그 영향으로 알바니아, 그리스, 불가리아 등 많은 주변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나톨리아 지역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점령당하게 되고, 그 꼴을 보다 못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 아저씨(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고, 현재 터키 국민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가 술탄 체제에 반기를 들고 터키의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전쟁은 주로 연합군을 등에 업은 그리스와의 전쟁이었다. 아타투르크 아저씨의 노력으로 터키는 다시 아나톨리아 지역을 회복한다.

1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될 무렵, 연합군은 아타투르크 아저씨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그 내용은 ‘니네가 서쪽 섬들이나 이스탄불 중 하나 포기하고 이 전쟁 끝내자.’되겠다. 나라 꼴이 이렇게 된 것이 이슬람에 매몰된 현 술탄 왕조 때문이라고 여겼던 아타투르크 아저씨는 유럽 쪽에 발을 얹어놓는 게 좋겠다 싶었는지(수백 년 수도를 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스탄불을 선택하고 서쪽 섬들을 포기한다(그 이유로 현재 터키 서쪽에 위치한 에게해와 지중해 지역 섬들은 터키와 아무리 가깝다 해도 거의 다 그리스 영토여서 터키의 서쪽 해안 영해는 해안선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리스와 초강력 앙숙인 건 말할 것도 없다).

아타투르크 아저씨는 공화국을 선포하고 생존하고 있던 술탄에게 ‘죽을래 꺼질래.’의 선택을 강요한다(1990년대 와서야 술탄의 핏줄에게 터키 입국을 허락했다고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 종교 국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공식 언어표기를 아랍 알파벳에서 아닌 라틴 알파벳을 변경하고, 무슬림 제국의 영향이 남아있는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도 옮긴 것도 그때였다.

그 뒤 터키는 2차 세계대전 때 줄곧 중립을 지키다 막판 승기를 잡은 연합군에 합류하는 척만 한다. 그 뒤로도 중립국의 입장을 취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NATO에 가입하길 원했고, 마침 한국전이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유처럼 대규모 병력을 한국전에 투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무슬림에는 ‘시아’와 ‘수니’라는 두 개의 큰 분파가 있는데, 아나톨리아 지역에만 ‘알레비’라고 하는 하나의 분파라고도 할 수 없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부류가 있다고 한다. 그건 무술림과 샤먼이 결합된 형태라서 일반 무슬림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규율을 갖고 있다. 현재 터키의 젊은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지향하는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투쟁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박하는 이슬람 규율에서 벗어나고 싶은 세속적 욕망이 아니라 현 정부의 입장이 터키 무슬림의 전통과 공화국의 신념을 져버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터키의 간략한 역사다.

6장

다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로 돌아와서…

그럼 과연 터키와 우리의 관계는 뭐냐? 라고 되물어보자.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은 무슬림 문화에서 친분을 말하는 흔한 표현이다. 그런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몽골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에게 ‘안다’라고 부르며 ‘친구’를 의미한다고 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안다’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형제보다도 중요한, 피의 의식을 나누는 정말 ‘피를 나눈 의형제’라는 의미였다. 처음엔 그렇게 중요한 의미로 쓰였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친하다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터키 사람에게서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냥 ‘우리 친하잖아.’라고 해석해도 된다.

지금의 터키 사람은 거의 다 한국전을 가지고 한국과의 관계를 얘기한다. 일부 역사를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비슷한 혈통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비슷한 혈통에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몽골, 일본, 아메리카 인디언 등 모든 몽골계가 포함된다. 그러니 터키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와의 관계만을 말할 때 한국전을 말하는 게 당연하다.

무슬림 문화에서는 명분 있는 전쟁에서 죽게 되면 천국에 간다고 믿으니 단순히 같이 싸웠다는 의미보다 더 크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뒤로 특별히 틀어질 관계도 없었으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월드컵을 통해 난데없는 환대를 받으니 누가 기분 좋지 않겠나. 남아공 월드컵 때 갑자기 남아공 사람들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우리를 응원해주고 경기 후 서로 얼싸안고 포옹을 했다면 우리 또한 그쪽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됐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터키와 우리의 관계는 수천 년 전까지 들먹일 수 있는 그런 사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역사를 쥐 잡듯 뒤지면 좋은 미담 한둘 정도는 뽑아낼 수 있겠지만, 터키 사람들은 그때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뿐더러, 알더라도 역사적으로 우리가 혈맹국이라고 할 명분은 없다.

7장

그래서 결론은 뭐냐 하면은… 누가 퍼뜨린 얘기인진 모르겠지만, 그 날조된 사실을 믿고 있던 사람들에겐 애석한 일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 얘기의 진위여부가 아닐 거란 생각이다. 어찌됐건 터키와 우리는 굉장히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그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터키사람 많다. ‘에이 그게 뻥이었어? 좋다 말았네.’ 할 필요가 있을까? 호감을 받는 입장이 되고 싶은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먼저 호감을 주는 게 지고 들어가는 건 아니다. 저 멀리 있는, 우리와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나라가 우리를 특별히 생각한다. 우리가 먼저 좋아해준 것이지만 그쪽도 좋은 반응이다. 왠지 멋진 친구가 생긴 것 같지 않은가? 속으로 졸라 미워하면서 괜히 친한 척 해야 하는 중국과 일본 때문에 짜증이 날 때, 그래도 우린 저 멀리 좋은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면 한결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너무 빠르게 사회가 변한 탓에 역사와 현실을 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나 지금도 역사의 일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수천 년이 지나면 지금 우리가 기대했던 수천 년 우방국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거짓된 정보를 퍼뜨리는 건 한참 잘못된 일이다. 특히 요즘같이 쓰레기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그런 건 범죄로 분류해도 지나침이 없다. 누구 짓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친구를 얻고 싶었던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에서 빚어진 헤프닝이라고 믿으면 한결 편할 듯싶다. 방법은 틀렸지만 친구를 얻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찍어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좋은 친구를 얻었고, 정말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좋은 상황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왜..를 따져 뭐하나.

뻔한 얘기이고 수백 번도 더 들어본 얘기겠지만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거다. 거들먹거리며 ‘니네 우리나라 좋아한다며?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고 물으려 했던 나의 입장이 ‘야. 이래 이래해서 우린 좋은 관계였어. 그래서 우리가 너희를 좋아한다니까.’라고 바뀌었지만, 그 말에 기분 좋아하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터키 사람을 보면 그것이 꼭 자존심이 상하거나 억울한 일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에필로그

외국에 나가면 어디서도 한국, 중국, 일본 사람 구분 못한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그 빌어먹을 폭압적인 중화사상 때문에 모두 싫어한다. 일본 또한 그들의 제국주의가 손을 뻗쳤던 아시아권은 모두 싫어한다. 하지만 돈 잘 쓰니 환영 받는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대치할 일도 없었고, 하나 둘쯤 역사 속의 관계를 끄집어 낼 꺼리도 있어서 특별한 반감 없이 그들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외교가 정말 중요한 나라다. 외교라는 것이 대부분 국익의 논리로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서로를 향한 국민의 정서가 좋다면 훨씬 쉽게 풀릴 일이 많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아시아 나라들이 그렇지만 특히나 몽골계의 나라에서는 정말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몽골계 사람들은 술을 진탕 마시는 문화가 있어서 술에 취해 어울리다 보면 우리는 정말 비슷한 인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터키와의 역사적 관계가 어쨌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고, 그들도 잘 모르지만 그냥 지금처럼, 그리고 그 보다 더 잘 지냈으면 한다. 적어도 난 터키 전역에서 너무 잘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그네들이 참 좋다. 친구로 삼기 참 좋은 사람들인 것 확실하다. 그래서 모두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