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잠에서 깬다. 마치 세렝게티 초원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곳의 자연 속 여행도 하고 싶다.
기차가 곧 멜버른에 도착한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도심이 한산하다.
먼저 멜버른 교통카드 사고 트램을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당연히 너무 이른 시각이라 아직 방이 없다. 호텔 뒤편에 넓은 공원에 있어 그곳에 자릴 잡는다.
정말 널찍널찍한 공원이 여기저기 참 많다. 이렇게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정신적인 면도 따라가지 않을 리 없다. 작은 나라에서 매일 같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알 수 없는...
집에서 뭘 하고 놀아야 하는지 심심해하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지들이 알아서 잘도 논다. 땅도 파고, 벌레도 잡고... 이렇게 자라면 좋겠는데.... 결국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거다.
전날 손님 체크아웃할 시간쯤 로비로 가니 방이 준비됐다며 카드키를 준다. 방에 들어와 짐을 풀고 여독을 좀 푼다. 웬만하면 쉬고 싶은데 멜버른에서의 일정이 길지 않아 우선 밖으로 나간다.
멜버른은 시드니보다 사람이나 차들이 더 많아 좀 북적거림이 있다. 시드니가 더 깔끔한 느낌인데 난 왠지 멜버른이 더 맘에 든다. 우선 만만한 박물관으로 간다.
유료 박물관이었는데 전시물이 어찌나 다양하고 많은지 다 둘러보기가 힘들 정도다. 전시물을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훑어보듯 쭉 둘러보고 나온다.
박물관에서 나오면 또 넓은 공원이 있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좀 쉰다.
쉴 데가 이렇게 많으니 쉬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쉬엄쉬엄 살게 되는 게 아닐까? 숙소로 돌아와 좀 늘어진다.
저녁을 먹으러 간다. 호텔과 같은 건물을 쓰는 대형 어린이 병원에 딸린 식당가에서 일본 라멘을 먹는다. 여행 중엔 가급적 현지 음식을 먹자는 주의지만 호주는 딱히 호주 음식이라 할만한 게 없다. 그냥 뻔한 감자튀김과 튀김류, 고기구이 같은 평범한 서양식. 그래서 그런지 일본 식당이 상당히 많고, 중국, 인도 그리고 태국 식당도 많다. 한국 식당도 가끔 보이지만 주류의 범주에 있는 것 같진 않다. K 열풍이 난리라지만 일본과 중국이 만들어 온 역사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맛없는 일본 라멘을 먹고 다시 뒤편 공원으로 간다. 한쪽 어린이 놀이터에서 또 한 번 신나게 논다. 밖에서 참 놀기 좋다. 짜증 날 정도로 부러운 환경이다.
그레이트 오션로드 투어가 있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 투어버스 픽업 포인트로 간다. 잠시 후 버스가 온다.
여행지를 호주로 정하기 전까지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존재를 몰랐었다. 사진을 보니 언제가 언뜻 본 이미지들이었지만 마음에 둔 곳은 아니었다. 그러다 멜버른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라기에 투어 신청을 했다.
투어 일정은 단순하다. 버스 타고 가다 중간중간 지점에 내려서 30분 정도 각자 구경하고 다시 버스 타고... 그러니까 투어라기보단 교통편을 대절한 셈이다. 300km가 넘는 길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 혼자 다니긴 힘든 길이다. 렌트카로 움직이기도 하던데 귀찮아서 그냥 투어 버스를 신청했다.
점심 식사 시간까지 들은 몇 군데는 굳이 멈춰 구경할 필요가 있나 싶은 평범한 바닷가였다. 평범한 호주 바닷가. 한번 보면 멋지지만 그것도 자주 보면 평범해진다.
내가 기대한 건 파도에 침식돼 만들어진 기암절벽들인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아 그냥 내렸다 탔다 하는 게 귀찮다. 잠깐 야생 코알라를 건 좋았다. 야생 코알라를 볼 기회가 있을 리 없으니까.
마지막 두 코스에서 드디어 내가 바랐던 풍경이 나타난다. 내가 웬만하면 탄성을 지르지 않는데 보는 순간 '와~!"가 나올 정도로 멋진 풍경이다. 그 기괴한 모양이며 그 크기며, 황톳빛 절벽과 푸른 하늘 짙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색감 하며. 부서지는 파도에 반사돼 반짝이는 햇살까지 근사하다. 정말 대단한 풍경이다. 한번 걸음 하기가 쉬운 곳은 아니지만 멜버른에 오면 꼭 방문해야 할 코스가 맞다.
하나 아쉬운 점은 단체버스를 타고 움직이다 보 니 다 비슷비슷한 단체 버스들이 비슷한 시간대로 움직이고 그렇기에 구경하는 순간에 관광객이 너무 물린다는 것이다.
언제가 또 기회가 생긴다면 단체 여행객이 움직이는 지점과 다른 경로로 렌트카를 이용해 구경해 보고 싶다.
투어버스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가 간 곳보다 더 멀리까지 구경거리가 있었다. 말 그대로 그레이트한 오션로드인거다. 뭔가 좀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에 또 오겠지. 어쨌든 오랜만에 본 좋은 구경거리였고, 무척 피곤하다.
여행을 마치기 전 바다에서 물놀이를 한 번 더 하기 위해 해변으로 향한다.
종일 해변에 있을 수 없으니 가는 길에 있는 로얄 보타닉 가든에 들른다. 시드니든 멜버른이든 넓디넓은 공원은 참 마음에 든다.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공원을 둘러본 후 세인트 킬다 비치로 이동한다.
멜버른 시내에서 접근하기 쉬운 곳 중 나름 유명한 비치라던데 별 볼품이 없다. 멀리 항구도 보이고 날도 흐려서 물도 탁하다. 시드니에서 갔던 맨리와 본다이 비치와 같은 풍경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 어쨌든 왔으니 자리를 펴고 몸에 물을 적신다.
햇볕이 들어오니 조금 낫긴 하다. 아이들은 아무 상관없이 모래놀이를 하며 잘 논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해변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해변 식당에 들어갔는데 비빔밥이 있어 시켜본다. 야채만 있고 계란후라이는 4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 고추장을 초장으로 쓰고 결정적으로 참기름을 뿌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이걸 비빔밥이라 내놓으면 곧 망할 맛이지만 한식당도 아니고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호텔로 돌아와 늘어진다. 호주 여행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 간다.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을 떠난다. 체크아웃 시간을 꽉 채우고 방에서 나온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뭘 할지 고민하다 기념품이나 살까 싶어 퀸 빅토리아 마켓으로 간다. 유명한 관광 포인트 중 하나인데 딱히 끌리지 않았던 곳이다.
역시나 크게 다를 것 없는 시장이다. 관광객에게 유명한 시장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관광객들이 사는 게 어디서든 비슷비슷하니까. 딸내미가 코알라 인형을 지대한 관심을 보여서 하나 사고, 쭉 둘러보다 에보리진 전통 패턴의 예쁜 쿠션 커버가 있어서 그것도 산다. 아들놈은 난데없이 스피너를 다 사달라 졸라서 그것도 하나 사준다. 가격이 좀 되지만 품질은 좋아 보인다.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는 타입이지만, 여행할 때마다 그 나라를 떠올릴 수 있는 작은 기념물 하나 정도 사는 건 괜찮은 것 같다.
시장 구경을 다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알아서 잘 노는 덕에 난 그늘에 누워 낮잠이나 늘어져 잔다.
6시가 넘어서 공항으로 가려 했지만, 풀밭에 늘어져 있는 것도 지겨워 5시쯤 우버를 부른다. 만 7세 이하의 아이는 반드시 카시트에 앉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우버 타기 힘들다고 하던데 우리가 만난 인도 청년은 별 신경 쓰지 않고, 우리를 태우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오랜만에 새로운 나라, 새로운 대륙을 여행했고 새로운 느낌도 많이 받았다. 이제부터 아시아를 벗어나는 여행을 더 적극적으로 계획해 봐야겠다.
난 좀 실망스럽지만, 각종 동물들의 박제를 보는 아이들은 즐겁다. 관람객도 가족 단위가 많다. 아이들로 시끌벅적 한데도 그 나름대로 분위기에 맞다. 전날 동물원에서 봤던 호주 동물을 떠올리며 관람을 즐긴다.
딱히 체계가 잡힌 전시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세인트 메리 성당이라고 꽤 유명해 보일법한 자태의 성당이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돼 있어 찍지 못했지만 딱히 특별할 건 없다. 관련 지식이 없으면 그냥 크고 웅장한 다른 성당과 다를 게 없다. 특히 종교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말이다.
성당에서 나와 조금 더 걷는다.
오늘 구경하려고 찍어놓은 곳들이 2~3km 반경에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걷기엔 좀 먼 거리지만, 모든 길이 공원 주변 걷기 좋은 산책로를 끼고 있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아트갤러리에 들어간다. 모두 무료입장이라 좋다.
이런저런 그림이 전시돼 있는데 그림이 너무 많이 벽에 다닥다닥 걸려 있어서 집중이 안 된다.
그래서 크게 값어치 없는 그림들인가 싶었는데 개중에는 모네와 고흐, 세잔, 모딜리아니의 그림도 끼어있다. 설마 하며 물어보니 모두 진품이라고.... 유명한 그림들은 아니지만 당대 화가들의 작품이 이렇게 전시돼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좋은 면에서든 나쁜 면에서든...
마침 좋아하는 화가인 마그리뜨의 특별전시가 진행 중인데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해서 그냥 나온다.
아이들이 투정을 부려 공원 풀밭에 잠시 앉아 쉰다.
여유로운 어쩌고저쩌고하며 TV에서 보여주는 공원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공놀이를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그냥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진짜 여유로운 풍경이다.
우리나라였으면 돗자리와 그늘막이 텐트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거다. 너무나 확연한 인구밀도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풍경이 부럽다. 난 이런 여유로움 정말 잘 즐길 자신 있는데...
조금 더 걸어 유명하다는 맥퀴어리 포인트에 간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한 시야로 잡히는 곳이다.
매번 여행지에서 가족사진을 찍는데 시드니에선 이곳을 가족사진 장소로 정했다. 일몰 시간이 더 멋있다고 하지만 아이들 데리고 밤에 나오기 번거로우니 이것으로 만족한다.
사진을 찍고 다시 서큘러키 부두 쪽으로 걷는다.
역시나 이 여유로운 풍경들. 내가 웬만하면 뭘 부러워하는 성격이 아닌데 이곳 시드니에서 부러움을 많이 느낀다.
공원에 심겨 있는 나무의 크기를 보면 이건 단순히 인구밀도 차이가 아니라 행정가의 근시안적이고, 빈곤한 상상력과 함량 미달의 인문학적 소양 때문에 나타난 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물며 친위쿠데타마저 실패하는 똘아이가 리더로 있는, 그럼에도 제 이익을 위해 그를 감싸고 도는 정치인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판예야.. 결국 나의 부러움은 내가 가질 수 없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절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행 중에라도 이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는 수밖에...
여행 전 찍어놨던 포인트는 대충 다 둘러본 것 갈아 오늘은 숙소에서 쉬기로 한다. 많이 돌아다녔으니 하루 정도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덕분에 아이들이 더 신나서 호텔 수영장으로 간다. 수영장이 좀 더 근사했으면 더 자주 수영장을 찾았을 텐데 꽉 막히고 볼품없는 수영장이라 물놀이 그 자체의 재미밖에 없다. 어쨌든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그것으로 족하다.
점심엔 아내가 찾아놓은 세르비아 식당에 간다. 가보니 세르비아 식당이 아니라 발칸 식당이지만 비슷한 음식을 먹으니까..... 나도 오랜만에 세르비아 음식을 즐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나 혼자 밖으로 나온다. 내일이 내 생일이니 좋아하는 마그리뜨 전시 보고 오라고 아내가 자유 시간을 허했다.
오늘은 쉬기로 했으니 아이들은 유튜브 보기를 원하고 난 잘됐다 싶어 혼자 미술관에 간다.
역시나 넓게 펼쳐진 공원을 걷는 게 좋다. 근데 이것도 매번 보니 좀 심심해지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많은 면에서 시드니가 좋긴 좋은데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없다. 아무래도 땅이 크고 역사가 짧아 그런 것 같다. 난 자연과 교감하는 내공이 부족하여서 멋진 자연환경은 두어 번이면 족하다. 역시 여행 중 최고의 산책로는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한 사람 냄새 나는,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골목길이다. 아쉽게도 이곳엔 그런 길이 없다. 이제 이곳도 그만큼 익숙해진 건가?
미술관에 도착해 무려 35달러를 주고 마그리뜨 전시를 본다. 좋아하는 화가의 진품을 구경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다시 맥쿼어리 포인트로 간다. 이곳의 일몰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기 때문이었는데 구름이 잔뜩 낀 게 근사한 석양빛은 글러 먹은 것 같다.
바람이 너무 붙어 그냥 돌아갈까 싶었는데 맞은 편에서 치는 번개가 심상치 않다. 완전히 어두워진 후 번개가 내리치는 오페라하우스를 담으면 근사할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린다.
구름이 더 짙게 드리워지고 천둥번개가 내리친다. 아뿔싸! 이곳의 기후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르다. 이제 좀 찍어도 되겠다 싶은 순간 우리나라에선 대형 태풍이 몰려와야 접할법한 강한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내게 몰아친다. 카메라는 꺼낼 엄두도 안 나고 그저 바위 아래에서 몸을 웅크려 이 돌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30분쯤 지나고 비바람이 잦아들어 그 기회를 틈타 사진 몇 방 찍고 숙소로 이동한다. 비를 쫄딱 맞으며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먼 나라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어제부터 간헐적으로 내리치는 비바람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호텔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릴없이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지만, 날씨가 이러니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둘러보려 했던 곳은 대부분 갔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저녁 시간에 맛있는 미국식 바베큐 식당에 간다. 아내가 내 생일이라고 예약을 해뒀다.
그리고 마침 이곳에 여행 온 처남도 같이 자리한다. 먹음직스러운 바베큐 요리가 나오고 맛나게 먹어 치운다.
식당에서 나와 근처 산책을 한다.
바람이 강해 좀 쌀쌀하지만 구경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잠깐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온다.
멜버른으로 떠나는 날. 체크인 시간을 꽉 채우고 나온다. 처남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간다. 밤 기차를 타고 멜버른으로 가기 때문에 그때까지 처남이 묵는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오늘도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부는 날씨다. 여행 일정이 삼사일만 늦었어도 내내 찌뿌둥한 시드니를 구경할 뻔했다. 날씨가 안 좋아도 내내 호텔에만 있기 뭐해서 우선 밖으로 나온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 시간 때우기 좋게 먼 거리에 있는 본다이 비치로 간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비치여서 수영하러 가려 했는데 날씨 때문에 못 갔다. 수영을 못하더라도 경치나 볼 겸 본다이행 버스를 탄다.
45분이 걸려 도착한 본다이 비치. 엄청난 바람 때문에 몰아치는 파도가 장관이다. 해변 끝자락에 있는 수영장에까지 파도가 덮친다.
우리나라에 큰 태풍이 올 때 바닷가가 이런 모습일까? 해변을 좀 걸으며 하니 바람에 날리는 모래 때문에 얼굴이 따가워 가까이 가기가 힘들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시드니에서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날씨란다. 왜 하필 우리 여행 때 이런 날씨가 찾아왔는지...
다시 시내로 돌아와 시드니 박물관에 간다. 실내에서 시간 좀 보내볼까 싶었는데 딱히 볼 게 별로 없는 박물관이다.
마지막으로 보타닉 가든을 거처 호텔로 돌아간다.
처남과 인사하고 짐을 챙겨 나온다. 역에서 멜버른행 기차에 오른다.
이곳 사람들이 덩치가 커서 그런지 앞자리와의 간격이 넉넉해 좋다. 11시간짜리 기차여행은 오랜만이다. 인도 여행 때가 마지막이었나? 밤 기차니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도착하겠지.
매번 동남아만 간다는 불평이 들려와 이번 여행은 어딜 갈까 고심하다 아예 멀찍이 떨어진 호주를 선택했다. 아이들이 크기 전까진 그저 수영장에서 놀 수 있는 동남아가 제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른의 여행도 무시할 순 없으니까.
호주 여행 정보를 찾아보니 더욱 아이들이 더 큰 후에 장기로 떠나고픈 마음이 드는 곳이지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테니 맘 편하게 뻔한 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비행기값이니 숙박비니 전반적으로 높은 물가 때문에 마음이 편할진 모르겠지만...
일찍 비행기를 알아본 덕에 중국동방항공 티켓을 60만 원 초반 금액으로 살 수 있었다. 경유하는 시간이 좀 길다 하나 FSC 항공권치고는 만족스러운 가격이다.
갑작스러운 한파 예보에 잔뜩 옷을 껴입고 여름인 호주로 떠난다. 난징으로 가는 첫 비행을 마치고, 7시간을 기다린 후 시드니행 비행기에 오른다.
중국이 무비자 정책을 진작 시행했더라면 오히려 더 긴 경유 시간을 선택해 잠깐이나마 중국 구경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징에서 11시간이 걸리는 지루한 장시간 비행 끝에 시드니에 도착한다. 시드니 공항의 세관검사가 까탈스럽다고 해서 철저히 준비했는데 질문 몇 개 받고 그냥 통과한다. 아마 아이들이 있어 그랬지 싶다.
네 명이 움직이는 대중 교통비와 택시비가 거의 비슷해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편하게 택시를 탄다. 1시쯤 호텔에 도착했지만, 빈방이 없다며 3시 체코인 시간까지 기다리라 해서 겸사겸사 근처 마트로 장을 보러 나선다.
식당 물가가 만만치 않아서 일부러 주방이 있는 호텔을 선택했다. 장보기 물가는 언뜻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편이지만 기본적인 재료나 소스를 다 살 수 없어서 즐거운 식사가 될 것 같진 않다. 아직 부엌 상태를 모르니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때울 식재료만 사 온다.
호텔이 있는 곳이 시내 중심지인 듯싶은데 의외로 차도가 넓지 않아서 큼직큼직한 건물이 늘어서 있음에도 주변이 꽤나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국제적인 도시답게 생각보다 백인 비율이 낮고 다양한 인종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도시 여행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네임벨류가 상당한 곳이어서 그런지 나름 도시도 달리 보인다.
호텔 체크인하고 잠시 여독을 푼 후에 아이들을 위해 수영장으로 간다. 볼품없는 수영장이지만 아이들에겐 시드니 전체보다 이 수영장이 더 좋을 것이다.장시간 비행의 여파로 모두 피곤해해서 오늘은 그냥 쉬기로 한다.어차피 머무는 기간은 길고 할 일은 별로 없어 급할 건 없다.
한국에서 사 온 유심이 안 돼서 편의점에서 새로 샀는데 그것도 네트워크 연결이 안 된다. 예전에는 어떻게 여행했는지... 인터넷이 안 되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어제 산 유심 회사 매장을 찾아갔지만 지도가 잘못됐는지 보이지 않는다. 발걸음을 돌려 오페라 하우스 쪽으로 구경을 간다.
멀찌감치 하버브리지가 보이고 오페라 하우스도 보인다. 볼만한 풍경이다.
그 이름값치고는 사람도 그렇게 붐비는 것 같지 않다.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오페라하우스의 표면이 매끄러운 줄 알았는데 격자무늬 타일로 돼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옆으로 이어진 보타닉가든 쪽으로 계속 돌아보면 좋겠는데 아들놈이 배탈이 났는지 배가 아프다며 힘들어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오자마자 침대에 눕더니 곧 토를 쏟아낸다. 특별히 이상한 걸 먹은 건 없는데 장시간 비행의 여독 때문인 것 같다. 아들을 눕혀놓고 침대보를 세탁기에 넣는다. 방에 세탁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쉬는 사이 유심 문제를 조사한 결과 호주는 3G를 쓰는 핸드폰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구식인 내 핸드폰은 유심도 안 되고 해외 로밍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다. 동남아 여행할 때 문제 된 적이 없어 이런 이유일 거라는 상상조차 못 했다. 오래된 핸드폰은 쓰지도 못하는 이런 시스템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유심 때문에 내내 신경 쓰이고 짜증이 났었는데 아내의 아이폰에서는 잘 작동돼서 한시름 놓았다.
아들이 계속 토하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어 오늘은 그냥 호텔에서 쉬기로 한다. 아들놈이 안쓰러움과 동시에 이 먼 곳까지 와서 숙소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조금 속상하다.
저녁 거리를 사러 나 혼자 마트로 향한다. 술을 한잔하려고 동네를 빙빙 돈다. 왜 마트에서 술을 팔지 않는지 모르겠다. 구석진 곳에서 찾은 조그마한 술가게엔 만족스러운 술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저가에 파는 호주 와인도 가격이 비슷하고 맥주도 비싸다. 그 와중에 소주도 보이지만 여기서 소주를 먹을 일은 없다. 소주 안주도 없고.. 적당한 가격의 프로세코 한 병을 들고나온다.
마트에 가서 파스타 재료들은 좀 산다. 이곳에 중심가라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다국적인 길거리 풍경이 아시안으로서 이질감 없는 이질감을 만들어 낸다. 이틀의 인상으로는 이런 곳에 살아도 좋겠다 싶다.
여전히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바다에 가서 물놀이하자고 꼬신다. 여행 중 80%의 즐거움을 물놀이에서 찾는 녀석이라 힘들어하면서도 몸을 일으킨다. 트램을 타고 부둣가로 가서 맨리행 페리에 오른다.
페리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법한데 여느 대중교통과 다르지 않게 편리하게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대중교통용 페리에서 접할 수 있는 그 끈적한 소금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엽서에서나 볼 법한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의 풍경을 페리에서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시드니가 멋지게 느껴진다.
맨리 부두에 내려 비치 쪽으로 걷는다. 거리에서부터 비치 분위기가 물씬 난다.
에메랄드빛은 아니지만 청명한 짙은 푸른 바다. 해변이 너무 넓어 그늘진 곳이 없는 게 조금 흠이지만 햇살이 그리 따갑지 않아 그냥 모래밭에 타올을 깔고 자리를 잡는다.
파도가 높아 수영하기가 힘들어 대신 파도치기 놀이하며 논다. 아들놈이 이틀 만에 미소를 보이며 즐거워한다. 그럼 그렇지.
몸이 으슬으슬해질 때까지 물놀이한 후 자리를 이동한다. 맨리 비치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는 쉘리 비치 사이에 아담한 해수 풀이 있는 걸 봐 놨었다.
아무래도 비치 쪽은 아이들이 수영하기엔 파도가 부담스럽다.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 2차 시작.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코스다. 사람이 적지 않으나 부대끼는 정도는 아니다. 가까운 곳에 탈의실과 간이 샤워 시설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좋은 날씨와 밝은 분위기가 좋다.
더불어 아들놈의 배탈도 마무리된 것 같아 다행이다. 한참을 놀고 다시 페리와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저녁 장을 본다. 양념 된 두툼한 양고기 한 팩을 집어 든다. 호주는 소고기가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소고기보다 양고기가 더 저렴하다. 양고기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선택하는 재료가 아니어서 기회가 있을 때 먹는 게 좋다.
오븐에 구워 나름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완성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뿐만 아니라 보통 아이들이 싫어하는 당근이나 브로콜리 등을 더 좋아하니 혓바닥에 탑재된 미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하여 애들이 남긴 고기는 고스란히 내 배로 들어본다. 아~ 배불러...
페더데일 동물원에 가려고 일찍 숙소를 나선다. 시내에 대형 동물원이 있지만 호주 토종 동물 위주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 동물원을 선택했다. 일반적인 동물원의 동물은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까.
이곳에 도착한 날이 주말이어서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는 줄 알았는데 월요일 출근 시간에도 사람이 별로 없다. 이 고층 건물들을 채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지하철도 이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서서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한산하다.
널널한 자리에 편하게 앉아 긴 시간을 이동해 페더데일 동물원에 도착한다.
호주 토종 동물 중 대형 동물이 없기에 동물원의 크기가 전체적으로 아담하다. 위협적인 동물도 거의 없어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좋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다가오는 캥거루, 인형처럼 꼼짝도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자고 있는 코알라가 귀엽다.
이런 순한 동물들이 살아있는 걸 보면 이곳의 자연환경은 이들에게 그리 가혹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동물원에 가면 대개 대형 동물에 관심이 가게 마련인데 작은 동물들이지만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라 만족스러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동물원에서 나와 다시 긴 시간 기차를 타고 블루마운틴으로 향한다. 카툼바 기차역에서 내려 쓰리 시스터즈 포인트 쪽으로 슬슬 걷는다.
한적하고 정리 잘된 동네다. 이런 데 살면 좋겠다 싶은 집들이 많지만, 막상 여기서 살면 엄청 심심하겠지?
블루마운틴이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에선 접할 수 있는 지형의 산이 웅장하고 멋지다. 호주의 자연은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다.
작은 샛길을 따라 카툼바 폭포라는 곳으로 향한다.
천천히 걷기 좋은 트레일이다. 트레일을 걸으며 보는 풍경도 좋다. 이곳의 자연환경이 멋지고 조성을 잘해놔서 무척 마음에 든다. 특히 미세먼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청명한 하늘이 너무 부럽다.
블루마운틴 지역 구석구석 연결된 트레일을 걸으며 종일 구경해도 좋을 법하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해서 찍어놓은 코스를 포기한다. 어쩔 수 없이 또 다음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