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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S#1/C#1. 11월 20일

2017. 2. 17. 13:00 | Posted by inu1ina2

보통은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라 권유하지만 난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나 하는 입장이다. 여태껏 그래왔고, 특별히 늦어서 헐레벌떡한 기억도 없다. 허나 이번만큼은 더 여유 있게 출발한다. 애 하나에 달린 짐도 많고, 애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면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충분한 여유가 필요하다. 


공항에 도착해 발권한다. 일로나 임신 때에도 그랬는데, 애가 있어서 짐 검사를 빨리 통과할 수 있는 티켓을 준다. 그렇게 기다림 없이 탑승구에 도착하고 보니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래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한참을 기다린 후 비행기에 오른다. 애가 있는 관계로 맨 앞자리에 앉는다. 인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을 내보인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비행기 이륙 시에 생기는 기압 차 때문에 아이가 잘 운다고들 하던데 인후는 워낙 순하고 무덤덤한 애라 그런지 아무런 징후 없이 지 손가락 빠는 것에만 집중한다. 일단 이륙은 성공. 이륙 후 자리 앞에 설치해준 베시넷에 인후를 누인다. 자식이 민망하게 조용한 비행기에서 혼자 뭐라 뭐라 흥얼거린다. 그래도 안 우는 게 어디냐…

6개월이 조금 지난 인후는 세시간 간격으로 밥을 요구하고, 밥을 먹은 후 30분 정도 후에 졸음을 호소한다. 그러니까 세시간에 두 번의 찡찡거림이 있고, 그걸 세 번 반복하면 경유지인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거다. 그렇다고 나머지 시간에 그냥 놔둘 수는 없다. 계속해서 반응을 보여줘야 하기에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여유 따위는 없다. 식사 시간이나 제트기류에 들어섰을 때 찡찡거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첫 찡찡거림이 온다. 애를 안고 화장실 부근 승무원이 쉬는 지역으로 데리고 나와 달랜다. 무섭게 생긴 러시아 승무원들이 이 곳은 네 구역이 아니라는 듯 쳐다보지만 애가 다른 승객을 귀찮게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별 말없이 지켜본다. 근데 무뚝뚝한 러시아 승무원들은 어쩜 누구 하나 애한테 아는 척조차 안 하더라. 그렇게 인후가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만을 바라며 조그만 낌새에도 애를 달래주기를 대여섯 차례… 그쪽에 정신을 온통 쏟고 있으니 9시간이 마치 서너 시간인 듯 후딱 지나가고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모스크바는 단지 경유지일 뿐인데도 여권 검사와 짐 X레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것도 단 두 개의 검사대에서… 여러 비행기에서 내린 환승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우린 한참 기다려 검사를 받는다. 또 하필 다음 비행기가 제일 끝에 있는 탑승구라 25분을 걸어야 했다. 공항이 좀 불편하게 설계돼있는 것 같다. 일로나가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로는 2차 세계대전 후 죽은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 전범들이 모스크바 공항을 통해 지옥으로 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한다. 뭐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악명 높은 공항이기는 하나 보다. 


어쨌든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에 인후가 밥을 먹고 다시 잠이 든다. 시계는 7시 반을 가리키고 있지만 6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탑승하느라 자는 애를 들쳐 앉으니 살짝 깨고 다시 잠이 든다. 안전벨트를 메고 이륙하는 비행기가 덜컹거리는 사이에 다시 살짝 잠에서 깬다. 비행기가 제 고도에 진입하고 승무원이 달아준 베시넷에 아이를 내려놓는 사이 또 살짝 깨고, 제트기류에 진입했다고 다시 베시넷을 떼어가서 무릎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메는 사이 다시 잠에서 깨고… 그 사이에 뒤편에 앉은 러시아 아줌마들의 끊임없는 목청 높은 수다 소리. 푹 잠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가 졸음에 겨운 채로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여행이 좋다 한들 이런 장거리 비행은 6개월 아이에겐 무리인 듯싶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뒤편에 앉은 아줌마들에게 화딱지를 내고 싶었지만 너무 무섭게 생기셔서 찍소리 못했다. 


그렇게 다시 세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아이의 또 다른 고국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도착한다. 마중 나온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모두 인후에만 관심을 두었지만) 집에 도착한다. 인후는 어느새 잠이 깨서 화상채팅으로만 봤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다. 우린 간단히 요기한다. 장인, 장모님에겐 첫 손주라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으신지 아이를 보며 아주 흐뭇해하신다. 다행히 인후도 낯가림 없이 자연스레 품에 안기니 바라보는 나도 기분이 좋다. 8시간의 시차를 더하면 나에게 2016년 11월 20일은 32시간짜리 긴 하루였다. 이제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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