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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S#1/C#3. 11월 22일

2017. 2. 17. 13:34 | Posted by inu1ina2

6시 반.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시각에 일어난다. 더 자고 싶지만, 인후 놈이 밥 달라고 보채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아침을 먹고 좀 있으면 장인, 장모님이 오신다. 지금 장인, 장모님 집을 우리가 차지하고 있다. 방이 하나뿐이라 두 분은 잠만 이웃집에서 주무시고 오신다. 인후는 낯가림도 없이 벌써 장인, 장모님만 보면 미소를 짓는다. 좀만 움직이면 손뼉 쳐주고 관심을 보여주며 놀아주니 우리랑 있을 때보다 더 신이 나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자식이 하루 만에 남의 품에서 희희덕 거리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섭섭함을 넘어 배신감이 인다. 배신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놈을 알고 있을까…


장인어른이 새벽같이 경찰서에 가서 예약하고 오셨다. 6시 반에 갔는데도 스무 명이 넘게 줄이 서 있었고, 예약하고 나올 무렵엔 건물 바깥까지 쭉 줄이 서 있었다고 한다. 실업률이 높아서 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던데 심부름센터 같은 거 있으면 잘 안 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어쨌거나 경찰서는 1시 예약이어서 그 전에 한국 대사관에 들른다. 어제 전화로 얘기해 놔서 별 절차 없이 담당자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한국은 원래 이렇게 빨라’하고 어깨에 힘 좀 주려 했는데, 그것도 일이라고 내일 오란다. 귀찮게시리… 별수 없이 물러서서 경찰서로 간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한시 예약이지만 딱 그 시각이 아니라 그즈음인 예약이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름을 부르면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앞사람이 빨리 끝나면 빨리 부를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제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며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일로나는 기다리는 내내 잔뜩 긴장해있다. 담당자가 준비한 서류를 보다 “이거 하나 없네?” 한마디 하면 처음부터 다시 예약을 잡고 해야 하니 그렇다. 그것도 완전 행정편의 위주라 담당자 맘이다. 공식적으로 필요하단 서류를 다 준비해도 담당자가 다른 걸 요구하면 다른 방법이 없다.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시스템이지만 뭐 어째. 이게 이 나라가 굴러가는 모습인걸… 다행히 일로나의 서류는 무사 통과된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등록증이 있는 걸 고려해(타국에서 사는 게 증명됐으니) 빨리 재발급을 해준다고 했단다. 모레 오라고…


어쨌거나 중요한 건 하나 끝냈다. 여권이 바뀌면 여권번호도 바뀌기 때문에 미리미리 비행기 표 정보도 바꿔놔야 해서 마음이 좀 급했다. 그러고 보니 일로나가 한국에서도 항상 약속 시각보다 훨씬 일찍 움직이고 하는 게 갑자기 이해가 된다.


집에 돌아와서는 잠깐 산책. 배신자가 장인, 장모님과 잘 노니 우린 이 기회를 이용해 오랜만에 우리만의 시간을 보낸다.



시내에서 떨어진 주택가라 딱히 볼 건 없지만, 너무 볼 것이 없는 적막함이 오히려 흥미롭다. 서유럽을 본격적으로 여행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이쪽 동유럽에는 실패한 사회주의의 이미지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그 이미지란 적막함이 깃든 오래된 건물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다. 이쪽에도 관광지 지역은 그렇지 않지만, 좀만 중심가를 벗어나면 이런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러시아나 동유럽 영화를 보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꼭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며 노닥거린다.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의 핵심은 역시 키릴문자.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세르비아는 공식적으론 키릴 알파벳을 쓰고, 일반적으론 라틴 알파벳을 쓰는 것 같다. 젊은 세대는 점점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는 듯하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라피티는 대게 키릴 알파벳으로 쓰여있다. 그게 왠지 적막함과 또 잘 어울린다.








여담으로 키릴 알파벳을 우리는 보통 러시아 글자라고 하지만 키릴 알파벳을 정리했다고 하는 키릴 형제는 그리스 지역 사람이고 당시엔 불가리아가 그 지역을 아우르는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불가리아의 키릴 형제가 그 문자를 만들었다는 게 통념이다. 그걸 우리가 러시아 글자라고 하는 건 당연히 러시아의 국력이 세기 때문일 거다.


가만 보면 러시아로 대표되는 슬라브인들도 유럽에선 꽤 큰 세력이다. 그러니까 유럽도 문화로 나누자면 카톨릭을 따르는 서로마 즉 서유럽과 정교회를 기반으로 하고, 슬라브인이 주축인 동로마 지역 즉 동유럽하고 차이가 있다. 인종이나 문자도 그렇고…


그냥 하나의 대륙으로 퉁치는 아시아도 중국 문화권, 인도 문화권, 무슬림 문화권으로 다르게 바라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를 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왕 분류하자면 인구수나 영토 면적, 종교, 문화를 봐도 그렇게 분류돼야 맞는다고 여행하면서 생각했었다.


어쨌든 배신자를 장모님 손에 맡겨두고 동네를 거닐고 대형 마트에도 가본다. 다양하게 쌓여있는 치즈를 보고 일로나는 그리움에 탄성을 지른다. 한국에선 원하는 치즈도 별로 없을뿐더러 비싸기까지 하니까… 



고기 역시 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닭 다리가 가슴살보다 싼 것과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가격이 비슷한 게 흥미롭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의 생선값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난 여기서 요리할 일이 없으니 내가 가야 할 곳은 맥주 코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수입 맥주는 3분의 1이나 절반 가격이고,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다양한 맥주가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라트라페 750ml가 5천 원도 안 되는 가격이라니… 맥주 신나게 먹어줘야겠다. 이러니 내 통풍은 즐거운 듯 내 발에서 떠날 생각은 않는 것이겠지… 모르겠다. 우선 맛난 건 먹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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