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lan Korea
Columbia
Scott

캄보디아 프놈펜에서의 일상은 저녁에 술 먹고, 낮에 컴퓨터 앞에 앉아 올림픽 경기를 다운받아 보는 일이었다. 인터넷이 너무 느려 경기 결과를 다 알고 난 후 삼 사일 뒤에나 경기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난 하기 좋아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도 모든 스포츠 관전을 즐긴다.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룰을 공개하고, 그 룰을 아는 수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정한 심판까지 세워놓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오심, 약물 같은 부당한 경쟁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걸 포함시키더라도 스포츠는 세상 그 어떤 분야보다도 깨끗하게 승자를 가리는 분야다. 정당한 패배자는 박수를, 교활한 승리자는 비난을 받는 것도 스포츠의 훌륭함이다. 그것 역시 우리가 그 승리와 패배의 과정을 다 지켜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스포츠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난 스포츠를 좋아하는 만큼 경지에 다다른 위대한 선수들을 존경한다. 특히 이번 올림픽의 김연아처럼 우승의 키를 오직 본인의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압도적인 선수를 볼 때의 경이로움이란… 그런 선수를 동시대인으로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군대에서 축구를 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축구 좀 한다고 뻐기는 병장도 어렸을 때 잠깐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이등병에게 농락당하기 일수고, 뒷골목의 주먹대장도 아마추어 복싱선수에게는 손도 못쓰고 넉 다운 당한다. 그들은 격이 다르다. 하물며 최고의 선수들 가운데서 그들을 압도하는 선수는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일반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으로 신체적 진화를 이루어낸 인간들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도 한 개체가 스스로 진화를 이루어내는 경우는 없다. 오직 위대한 스포츠 선수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마지막 연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 한 방울이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성취감이었다면, 또 다른 한 방울은 그가 짊어졌을 국민들의 무게에서 헤어난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 당돌한 꼬마가 눈물을 흘릴 정도의 부담이었다면 그것 역시 일반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것임에 분명하다.

사실 우리는 올림픽을 관전하며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태극마크가 결승선에 몇 번째로 통과하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안톤 오노의 가슴에 태극마크가 달려있었다면 그는 전혀 비난 받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그에게 그러한 것처럼… Epilogue 1올림픽이 겉으로는 인류 화합과 평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제국주의와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근대적 이념이 가득한 대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땡은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대만은 자신들의 국기를 게양하지 못한다. 금메달을 많이 획득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들의 국기와 국가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근대 올림픽은 고대 올림픽처럼 전쟁을 멈추게 할 명분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내가 올림픽 폐지를 주장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난 여전히 스포츠관전을 즐긴다. 단지 그 훌륭한 육체의 향연이 그릇된 애국심에 가려지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선수들이 자신만을 위해 경기하고, 내 나라 선수를 이긴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면 스포츠의 즐거움이 한층 더 커질 거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을 놓치는 셈이니까… 어려운 게 아니라면 모든 즐거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Epilogue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