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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말레이시아에서는 일주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데이빗 아저씨를 만나 그 어떤 나라보다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여러 과일 농장도 가 보고, 파리 들끓는 로컬 주점에서 멧돼지, 도마뱀 안주로 코코넛 와인도 먹어보고, 시끌벅적한 중국 스타일 결혼식도 구경하는 등 오랜 시간을 보내야 우연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일들을 한 방에 끝내버렸다. 모든 것이 그곳 현지에서 사는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경험하기 힘든 훌륭한 체험이었다. 그래서 여행 중 만나는 현지인과의 교류는 언제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Epilogue 1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가끔 서로에게 “현지인 같으시네요.”, “현지인 다 됐네요.” 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어느 한 나라를 꼬집어 “그 나라 사람 같으시네요.” 라고 하면, 특히 그 나라가 저개발국이었을 땐 일반적으로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현지인'이란 표현은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 말은 생김새만이 아니라 그네들과 동화되어 이질적이지 않은, 여행객 그 이상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표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서 하는 대화는 주로 ‘누굴 만났네’, ‘그들과 무엇을 했네' 하는, 가끔은 과장도 많이 섞인 무용담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자연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네들과의 교류를 자신의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의 표현으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그 만큼 현지인과의 교류가 주는 즐거움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나 또한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괜히 으스대는 것 같아 말하지 않으려 하는데도, 묻지도 않았는데 지나온 경로를 읊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가끔은 버스도 기차도 타지 않고 자전거만으로 왔다고 거짓부렁을 할 때도 있다.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그 신념을 깨면서까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좀 더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이 큰가 보다. 그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많은 사람, 즉 많은 현지인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네들과의 만남이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는 단초는 내가 제공할 수 있지만, 만남의 모든 것이 그들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다고,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값진 만남이다.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이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가끔 할 일이 없어 그 동안의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오래된 과거처럼 보이면서도 그들과 나눴던 술잔과 웃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입가엔 엷은 미소가 드리워진다. 정말 다시 없을 멋진 추억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여행 중에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세우곤 한다. 아직 수년이 남은 여행 중이지만 나 또한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 갖고 있는 GPS는 나의 움직임을 초 단위로 모두 기록하고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다음 여행은 아마 그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그땐 현지인과의 교류가 아닌 친구와의 교류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여행이다.Epilogue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