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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라 캄밍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간다. 우리가 항상 가던 식당 뒤편에 있는 곳으로 갔는데 여기 또한 훌륭하다. 웬만한 우리나라 결혼식 뷔페보다 더 알차고 다양한 음식들이 깔려있다. C 10-1물론 여긴 뷔페가 아니라 먹는 데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맛있어 보이는 고기와 야채를 잘 골라야 한다. 왼편에서 아줌마가 접시에 밥을 퍼 주면 그 위에 원하는 찬을 얹고, 마지막에 서 있는 아저씨가 얹어진 반찬을 보고 얼만지 말해주면 돈을 내고 먹으면 된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에, 무작위로 담는 찬을 보고 무슨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지는 캄밍도 모른단다. 조심스럽게 양껏 반찬을 얹은 내 밥의 가격은 6RM(약 2220원).C 10-2 오호! 이 정도면 훌륭하다. 내일 또 와야지.

돌아와 뭉그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인터넷도 하고 우쿨렐레도 만져보고…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 줄 알았으면 친구에게 책 좀 잔뜩 부탁할 걸 그랬다. 책을 못 읽은 지 너무 오래 됐다. 무슨 새로운 음악이 나왔는지도 모르고, 스마트 폰이니 아이패드니 구글TV니 하는 새로운 기술도 전혀 체험할 수 없다. 5년 뒤 나는 세상에 얼마나 괴리감을 느끼게 될까?

군대 시절, 제대할 때까지 대대 전체에서 여자 친구가 기다린 사람이 딱 두 명 있었다. 26개월 동안 전역하고 입대한 사람을 따지면 500여명이 되는데 그 중에 딱 두 명! 0.5%도 안 되는 그 확률을 내 한 달 고참과 내가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었다. 결과는? 결혼까지 약속해 서울에서 대구까지 이, 삼 주에 한번씩 면회를 왔던 놀라운 내 한 달 고참 커플은 전역 후 얼마 안돼 헤어졌다. 뭐 나라고 별 수 있었겠나. 그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의 마음이 달라진 것도 있었겠지만, 전역 후 그 아이와 나 사이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난 그 아이가 변했다고 판단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먼저 손을 놨지만, 돌이켜 보건 데 그건 그 아이가 변한 게 아니라 세상이 변한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26개월 동안 세상과 함께 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간간히 휴가도 나가고, 정보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인터넷 초기 시절의 26개월도 그런 괴리감을 만들어내는데, 지금 같은 스피드 시대의 5년 공백은 과연 어느 정도 일지. 기다리는 여자 친구가 없어 다행이지만(아~ 원인이 없어 당할 결과도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세상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체화하지 않는 한 여행 내내 그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저녁엔 캄밍과 함께 수영장에 간다. 수영을 잘 하진 못하지만 난 물에서 노는 게 좋다. 길이 50m에 라인도 없는 널찍한 풀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긴다. 늦은 시간의 야외 수영장이지만 춥진 않다. 대부분 야외 수영장이고 몇 안 되는 실내 수영장이 오히려 더 춥다고 한다.  C 10-3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상쾌하지만 금쪽같은 발목 딱지가 물에 불어 떨어져나갔다. 이것 때문에 수영장에 갈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아직 일주일 이상 쉴 시간이 있고 해서 결심한 수영장 행이었다. 다행히 진물은 흐르는데 고름은 없다. 이제 박테리아는 박멸됐나 보다.

수영이 끝나고 캄밍이 또 다른 식당에 데리고 간다. 그냥 평범한 메뉴를 파는 노천 식당인데 사람이 길게 줄 서 있다. 한국을 떠나고 처음 보는 광경이다. 동네 맛집인갑다. C 10-420여분을 기다리고 주문한 음식은 맛집 포스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맛이었지만 같이 시킨 팥빙수는 훌륭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팥빙수의 이름이 ‘ABC’라는 것이다. 캄밍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ABC’란다. 설마… 처음엔 그냥 동네에서 부르는 명칭인 줄 알았는데, 말레이시아에서 팥빙수의 공식 명칭이 ‘ABC’다. 그러니까 팥빙수 같은 게 보이면 가서 “아줌마 ABC 주세요.”라고 하면 된다. 말하면서도 웃길 것 같은 이름이다. 밥을 다 먹고 입가심으로 ABC를 하나 더 먹고 돌아온다. 오랜만에 운동을 했더니 약간 피곤하다. 잠 잘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