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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짐을 정리하고 나온다. 캄밍이 어느 정도 데려다 주겠다며 자전거를 가지고 나온다. 캄링과 아쉬운 작별의 악수를 하고 출발한다.

오래 쉰 후에 달리는 첫 타임인데다가 짐 없이 달리는 캄밍을 따라 가기가 버겁다. 낮은 오르막도 너무 힘들어 순간적으로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우린 보통 한 시간 혹은 20km 정도를 달리고 휴식을 취하는데, 캄밍은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우리 같은 사이비 자전거 여행자는 숙달된 자전거 쟁이의 보조를 맞추기가 힘들다. 33km 정도를 달린 후에야 캄밍이 멈춘다. 음료로 목을 축이고 작별인사. C 24-1그 동안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을 뒤로하고 우린 싱가포르를 향해 달린다.

우기철인데 다행히 비도 안 오고 구름이 껴서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좋다. 지방 국도라 오르막 내리막의 반복이 힘들 뿐이다. 캄밍의 집에서 쉴 때 앞으로 갈 네팔의 정보를 보며 고도는 높지만 경치가 좋은 북쪽으로 가 볼까 싶었는데 자전거를 타자마자 바로 현실감을 찾는다. 낭만과 현실의 차이.

어느덧 해가 지고 경찰서 앞에서 페달을 멈춘다. 7시 20분쯤이 일몰시간인데, 마침 경찰서 맞은 편 가게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 시각으로 7시 30분이 첫 경기 시간이다. 가능한 늦게 경찰서에 가야 좋기 때문에 가게에 들어가 커피 한 잔하며 축구를 본다. 월드컵 경기 다 놓칠까 염려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많이 챙겨 볼 수 있겠다.

경기가 끝나고 경찰서에 가지만 퇴짜를 맞는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GPS가 3km 앞에 또 다른 경찰서가 있다고 해서 더 달린다. 경찰서 근처에 다다랐을 때 그 옆에 있는 소방서를 발견한다. 아무래도 소방서가 경찰서보다 공익적이고, 친절한 이미지도 강하다. 그리고 공간도 훨씬 커서 우리에겐 최적의 잠자리라 할 수 있다. 다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면 텐트 치며 자는 게 위험하다면서 가능한 도로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숨어 자는 게 좋다고들 하는데, 왜 모두들 그런 공간에 텐트를 치는지 모르겠다. 우리 같은 경우는 내 몽골과 고비사막에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론 모두 다른 이의 공간에 허락을 받아 텐트를 치고 있다. 그러면 안전도 훨씬 보장받을 수 있고, 때론 즐거운 만남의 기회도 얻을 수 있어 좋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까탈스런 성격이 아니라면 뭐로 보나 그 편이 좋다. 소방서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역시나 흔쾌히, 그것도 당직 대기 대원들 잠자리 옆 거실을 내주며 자라 한다. 샤워를 하고 거실에 앉아 대원들과 차를 마시며 축구를 본다.

무지 고생스러울 거라 생각했던 첫 날의 주행을 무사히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C 24-2싱가포르까지는 3~4일이면 족하기에 큰 부담이 없다. 비만 안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