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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라주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다카에서의 마지막 식사. 펑크 패치를 사야 하는데 파는 곳을 찾을 길이 없다. 라주가 여기저기 물어보지만 오토바이용은 있는데 자전거는 로컬 방식뿐이란다. 로컬 방식이란 폐튜브를 잘라 붙이는 방식. 새 타이어라 잘 펑크가 나진 않을 텐데 좀 걱정스럽다.

라주와 인사를 나누고 지옥의 도로에 들어선다. 첫 주행, 뜨거운 날씨, 수많은 먼지, 교통체증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다른 건 그렇다 치는데 경적소리가 너무 심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쉴 때가 되면 가능한 사람이 없는 곳을 찾고 싶은데 인구밀도 세계 최고급인 이 나라에 그런 곳은 없다. 냉장고가 보이는 한 가게에 멈춰 선다.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둘러싸 뚫어지게 쳐다본다. 걔 중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 우리에게 말을 걸면, 나와 사람들의 간격이 급속도로 좁아졌다가 그 사람이 떠나면 다시 물러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 기분이 스타의 느낌인지 동물원 원숭이의 느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쉴 땐 편히 쉬고 싶은데 옆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휴식을 방해하는 건 매한가지다. C 11-1다카를 벗어나니 사람은 좀 줄었는데 자동차의 경적소리는 여전하다. 시끄러워 미치겠다. 날도 너무 더워서 힘들다. 세 번째 휴식시간. 주유소 근처 가게에서 음료를 마신다. 방글라데시에선 얼음을 볼 수가 없다. 냉장고는 있는데 정전이 잦으니 시원하지도 않다. 이럴 거면 동남아의 아이스박스 시스템이 훨씬 좋다. 30분 정도 더 달릴 수 있는 시각이지만 몸이 너무 힘들고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 주유소에 멈췄으니 오늘은 여기서 텐트를 칠 요량으로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이곳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모여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다가 한 친구가 자기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한다. 옳커니. 첫날부터 운이 좋다.

그의 집으로 간다. 킹 사이즈 침대가 있는 자기 방을 내주며 자라 한다. 자전거도 방에 들여 놓게 해서 안심이다. C 11-6 이곳 사람들의 호기심이 너무 왕성해 자전거를 밖에 두기가 걱정스러웠었다. 우선 먼지와 땀에 찌든 몸을 씻는다. 밖에 있는 수동 펌프 시스템인 수도가다. 아무렴 어떠리 샤워만 할 수 있으면 된다. 빨래도 하고 물을 끼얹으며 오늘의 피로를 씻어 내린다. C 11-5

돌아오니 타릿(우리를 초대한 친구)의 아빠가 와 있다. 아빠를 소개하고 어디론가 가 버리는 타릿. 아저씨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릴쳐다보고 우린 할 말이 없어 안절부절하며 멍하니 앉아 있는다. 무슨 잘못을 해서 담임선생님과 일대일 면담하는 듯한 요상한 분위기다. 정말 난감한 30분. C 11-2

타릿과 함께 동네 찻집에 가서 차를 한잔하고 오니 먹을 걸 주신다. 쌀 뻥튀기와 땅콩, 고추, 양파를 버무린 간식 정도되는 음식이다. 배가 고파 이 정도로 성이 안차 아쉬워하고 있는데 밥은 좀 있다 먹자 한다. 그리고 다시 나가 차 한잔. 식당주인도 친구라서 서로 인사를 하니 몸에 좋은 거라며 음료를 하나 준다. 이걸 음료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기 육수에 커리 풀고 라임즙 짜 넣은 커리육수 국물이다. 매일 한 잔씩 먹으면 좋다고 권하는데 기름기가 심해 그리 맛있진 않다.

돌아오니 밥을 주는데 다카에서 먹었던 커리맛 갈비찜과 난이다. C 11-4 커리맛 갈비찜은 지금껏 먹은 최고의 방글라데시 요리인 만큼 맛있게 배를 채운다. C 11-3타릿의 아빠가 우리가 잘 방을 둘러보더니 뭐라 뭐라 한다. 타릿에 반응으로 봤을 때 “손님 대접이 이게 뭐냐.” 정도 되는 것 같다. 곧 베개가 깨끗한 것으로 바뀌고 모기장이 쳐진다. 우리가 다 송구스러울 정도다. 곧 우리와 타릿만 남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종교 얘기가 나온다. 타릿은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무슬림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의 조종을 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 역시 무슬림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지금 자기가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고 한국사람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알라는 모든 걸 사랑하고 사람을 죽이지 말랬는데 그들은 사람을 죽이니 무슬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가 오해 받고 있는 것이 꽤나 속상한 모양이다. 아무렴 무슬림은 오해 정도를 넘어서 비난까지 받고 있으니 나 역시 안타깝다.

어째거나 첫 날 주행에 이런 친구를 만나게 된 건 큰 행운이다.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런 친구들은 온라인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과 또 다른 느낌의 기쁨을 준다. 내일같이 어디 가자고 하는데 그곳에선 또 무슨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