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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아침부터 뭐 이리 깨워 쌌는지 끝까지 버팅기다 포기하고 일어난다. 안 그래도 더워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지붕이 얇은 양철 지붕이라 햇볕이 비치면 방이 금방 데워진다.

차려주신 아침을 먹는다. 도루묵 맛이 나는 생선 반찬이다. 고기를 먹을 땐 돼지나 소고기를 선택하기 때문에 생선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어 가끔 먹는 생선이 맛있다. 아침을 먹고 쉬고 있으니 타릿의 아버지가 자기 학교에 가지 않겠냐 한다. 우먼 컬리지 교수라고 한다. 어제 선생님과 면담하는 어색했던 분위기는 괜한 게 아니었다. 따라 나선다.

여긴 시골 동네라 차를 타고 멀리 나갈지 알았더니 소로길로 걸어간다. 그 순간 짐작했듯이 도착한 곳은 야학 분위기가 나는 작은 건물이다. 교무실이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선생님을 소개하는데 모두가 무보수로 일한다고 한다. 역시 야학 같은 곳과 다를 바 없다. 아닌 게 아니라 론니플래닛 2008년 방글라데시편을 보면 방글라데시의 여성 문맹률이 70% 가까이 된다고 하니 이런 의식 있는 분들의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양철 파티션으로 나눠진 교실에 들려 학생들과 인사를 한다.    C 12-4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어 곧 집으로 돌아온다. C 12-5

아침부터 가는 비가 내리더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디나스푸르에서 플랜과의 약속을 여유 있게 잡아놔서 급할 건 없지만 하루 더 머무는 게 좀 조급한 마음을 들게 했는데 비가 오니 차라리 잘 됐다 싶다.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니 타릿이 말쑥하게 차려 입고 우릴 깨운다. 그의 친구 아잘과 함께 싸이클 릭샤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방글라데시에선 어딜 방문할 때 스윗을 손에 들고 가는 게 예의라고 한다. 시장에서 스윗 한 박스를 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또 오토릭샤를 타고 구석진 곳까지 들어간다. C 12-2도착한 곳은 타릿의 처가집이다. 아내가 임신을 해 이곳에서 지내고 있나 보다. 사가지고 온 스윗을 하나씩 먹는다. 어쩜 이렇게 단 걸 즐길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다. 매운 걸 좋아하는 내가 경험한 최고의 매운맛은 신천에 있는 해주냉면인데, 그걸 단맛으로 역지사지해도 도저히 이 단맛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에피타이저 격인 스윗을 먹은 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 이곳 밥 인심도 배 터질 때까지 계속 리필을 해줘서 어차피 어느 순간 거절해야 할 것이라면 미안해 말고 일찌감치 거절해야 한다. 중간에 전기가 나가니 부인이 식탁 옆에서 계속 부채질을 해주는 게 좀 민망하다. 식사를 하고 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C 12-1

산책을 하자며 친구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는데 메인 도로에서 2~300m 정도 떨어진 철로길이다. 가로등도 없어 어두운 철로에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노닥거리고 있다. 어느 지점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가자'라는 담배를 권하는데 계속 마약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걸 보니 마리화나 같은 마약류인가보다. 가져 오려면 많이 가져올 것이지 한 두 개피 가져와서 몇 모금 돌려 피더니 괜찮냐고 계속 묻는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상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기가 열라 물어서 온몸이 가려워 폐 속에 뭐가 들어가도 집중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름 귀한 거 해줬는데 멀쩡해서 실망스러운 눈치다. 그들의 기분과 상관없이 철로 주변을 수 놓고 있는 수많은, 이라고 하긴 좀 부족하지만 처음 보는 많은 반딧불이의 불빛이 마음은 따뜻하게 해준다.

돌아와 밥을 먹는다. 이제 손으로 먹는 것도 괘 익숙해졌다. 하기야 손보다 더 좋은 도구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한가지 문제라면 밥을 먹을 때 왼쪽 팔에 모기가 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미칠 것 같다는 것뿐이다.

다시 타릿과 나간다. 어제부터 술 한잔 하자 해서 그러자고 했는데, 무슨 007 작전을 방불케 하듯 비밀스럽게 술을 구입하고 다시 깜깜한 철로 향한다. 그러고 보면 이 철로길이 불빛도 없는 게 어른들의 탈선 공간이지 싶다. 그런 분위기에서 과자 부스러기 안주에 사이다를 섞어주며 마시라고 권하는 술을 홀짝이니, 마치 동네 깡패 형이 인적 드문 곳으로 끌고가 술을 가르쳐주겠다며 부리는 호기에 잔뜩 주눅든 꼬마가 된 느낌이다. 하루 종일 너무 덥고 피곤해 빨리 먹고 들어간 심산으로 잔을 빨리 빨리 돌렸더니 그제야 깡패 형들이 두 손을 든다. 방글라데시 술은 베트남에서 먹었던 술과 맛이 거의 비슷하다. 쌀을 재료로 제조 방법도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 추측된다. 술 먹기가 이렇게 힘드니 맛을 내는 기술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돌아와 씻고 눕는다. 좀 친해졌다 싶은지 타릿은 사회에서 매장돼 마땅한 썰렁한 농담을 던지며 혼자 웃고, 음담패설도 던지는 데 과연 어제 알라의 말씀을 전하던 독실한 무슬림 신자가 맞나 싶다. 좋게 생각하면 우릴 그만큼 편하게 생각하는 거고, 나쁘게 생각할 거 없이 우린 그렇게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면 된다. 내일 다시 디나스푸르로 달려야 한다. 일찍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