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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이른 새벽부터 닭, 오리, 소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깬다. 사람들 역시 동이 트기 시작하는 5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플랜 사무실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푹 자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버티다 버티다 못해 일어난다.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모여 우릴 구경하고 있다. C 2-2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하면서 짐을 챙긴다. 주인집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뚝바'라는 음식인데 티베트음식으로 걸쭉한 국물이 있는 면 요리다.C 2-3 네팔 음식은 전반적으로 좀 짜다.

밥을 먹고 플랜 사무실을 향해 달린다. 35km 정도되는 거리라 부담이 없다. 근처에 도착해서 전화를 하는데 전화기가 터지지 않는다. 어제 분명 새 심카드를 200루피(약 3400원)에 샀는데 남은 요금이 1루피라고 뜬다. 빌어먹을. 그 동안의 어떤 문제들이 우리의 실수가 포함돼 있음을 감안하면 여행 중 가장 큰 사기를 당한 셈이다. 하는 수없이 근처에 있던 아저씨께 전화기를 빌려 플랜 담당자 아저씨께 전화를 거니 바로 코 앞이 플랜 사무실이었다. C 2-1 원래 19일쯤 도착한다고 했었는데 그것보다 이르고 휴일이라 직원 분들이 당황해 했지만 금새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신다.

네팔도 여러 민족이 섞인 나라지만 토종 네팔 사람들은 몽골계라 우리와 생김새가 같아 친근감이 든다. 칼반, 주주 아저씨, 안주 아줌마와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눈다. C 2-4 이곳은 플랜코리아에서 직접적으로 염소 보내기 사업을 한 곳이라 우리에 대한 호감이 더 큰 것 같이 느껴진다. 이곳 사무실은 따로 게스트 하우스가 없어서 근처에 있는 숙소를 잡아줬는데, 우연찮게도 그 숙소 주인이 우리가 전화기를 빌린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 역시 가끔 플랜 지원 학교에서 선생님을 한다고 한다. 자전거는 플랜 사무실에 두고 필요한 짐만 숙소에 푼다.

샤워를 하고 좀 쉬고 있으니 칼반 아저씨와 주주 아저씨가 맥주 한 잔 하자고 우릴 부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방글라데시, 인도를 거쳐 오면서 술이 반 금지거나 너무 비싸서 한 동안 그리웠고 네팔도 그리 싸지 않기 때문에 염치불구하고 승낙을 한다. 술자리에 앉아 칼반 아저씨가 처음 하는 소리는 이 술자리는 플랜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닌 개인적인 거라는 얘기다. 그럼요 알고 말고요. 아무렴 어때요. 칼반 아저씨의 영어는 알아듣기 편해 꽤 진지한 얘기까지 진행돼서 생각보다 더 마시는 것 같다.

내가 처음 플랜을 통해 아이 후원을 하게 된 동기는 한비야 씨의 책을 읽고 월드비전에 대한 글을 읽어서다. 하지만 난 종교라는 게 싫어서 어떤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없는 단체를 찾다가 플랜을 만났다. 그리고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처럼 나의 여행기를 읽고 아이들을 위한 후원에 누군가가 동참해 주길 바라면서 플랜코리아에 우리 여행이 작으나마 플랜을 홍보할 수 있게 부탁을 했던 거다. 수많은 플랜 가입국이 있지만 후원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뀐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수혜국이었던 만큼 그 도움을 돌려줘야 한다는 보은의 마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정말 많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한 하늘 아래 사는 사람으로서 그 아이들에게 삶의 선택권 정도는 제시해 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단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그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온전히 전달치 못하는 내 표현 능력이 아쉬울 뿐이다.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숙소 주인 아저씨가 우리의 저녁식사를 준비해 놨다. 배는 부른데 거절할 수가 없어 싹 비운다. 내일은 아침부터 플랜 사업을 둘러봐야 한다. 이건 정말 기쁘고도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