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lan Korea
Columbia
Scott

일어나자마자 이란 대사관으로 향해 달린다. 대사관 지역 근처에 들어서면 도로를 막고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경찰들이 곳곳에 있다. 근데 이 사람들이 일관된 면이 없어서 가라고도 했다가 셔틀버스 타야 한다고 했다가, 한국 여권으로는 한국 대사관만 갈 수 있다고 하는 등 아주 엿장수 맘대로다. 그래서 매번 쉽게 통과 시켜준 멀리 구석진 곳 입구로 들어가서 이란 대사관에 도착한다.

문을 두드리고 비자 받으러 왔다 하니 여권 달라하고, 비자피 계좌용지를 주고 3시에 다시 오라 한다. 우선 다시 나가 비자피 150루피(약 2,000원) + 수수료 60루피를 은행에 내고 영수증을 받는다. 이미 신청료 3,600루피(약 46,800원)를 내긴 했지만 비자피가 또 필요하다 해서 5,000루피(약 65,000원) 더 뽑아 놨는데 너무 싸서 놀랐다. 네 시간 동안 뭘 하며 기다릴까 하다 돈도 굳은 김에 중국집에서 밥도 먹고, 이란 돈도 좀 환전해 놓을까 하다 여권이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한다. 중국집 가려고 5km를 달리기엔 너무 덥다. 대사관 지역엔 식당이고 뭐고 없어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서 닭다리와 음료수를 사서 다시 대사관으로 간다. 닭다리 두 개가 130루피(약 1,700원)로 150루피하는 샌드위치보다 싸서 두 세트 샀는데, 일반 식당에서 먹는 한끼보단 많이 비싸다. C 40-1

닭다리를 뜯고 있으니 창문으로 빼꼼히 보던 대사관 아저씨가 영수증 달라 한다. 영수증 주고 30분 정도 기다린다. 슬레이트로 햇볕을 차단한 그늘이라 무지 덥다. 1시경 문이 열리고 이란 비자가 붙은 여권을 준다. 3시까지 오라는 말은 넉넉잡고 그때면 돼있을 거라는 의미였나 보다.

비자를 보니 왠 횡재. 60일 비자다. C 40-2다들 3주에서 한달 비자를 받는다고 해서 이란에서 비자 연장하려면 또 골치 아프겠구나 싶었다. 이란에서 비자연장은 만료일이 3일 남은 시점에서 신청할 수 있는데 그러다 안되면 큰일인데 싶었더랬다. 그렇지 않아도 비자 관련 일은 다 짜증스러워서 60일이 찍혀 있는 비자가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준다. 하나 더 다행스러웠던 점은 내가 찾은 정보로는 한국대사관에서 추천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했었는데 그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사관에서는 여기서 이란으로의 육로이동은 위험하다고 비행기티켓이 없으면 추천서를 안 써줘서 여행사 가서 비행기 예약 후 비자받고 취소하는 식으로 수수료를 몇 만원 날리고 추천서를 받았다고 하던데 얼마나 다행인지. 빈 라덴 사건이 있었으니 더 안 써주려 할 텐데, 비행기 예약 취소 수수료는 날리기 싫고, 헌법을 들먹이며 대사관 직원과 한판 해야 하나 싶었었다. 만약 대사관에서 추천서를 안 써줘서 그 이유로 법정에 가져가면 승소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여행자도 그러지 않을 것이고 대사관 측도 그걸 알고 그런 식으로 나온 걸 거다. 사건의 수습보다 면피성 짙은 사건 예방에 더 열을 내는 게 한국 대사관의 특징이니까(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훈자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에게 이 나라 위험하니 빨리 떠나라는 대사관측의 문자가 수시로 왔었다. 난 현지폰이라 번호를 모르는 듯)

사실 따지고 보면 여행금지국가를 국가 맘대로 지정하고 못 가게 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그 보다 상위 개념인 국민의 권리를 가볍게 무시해주는 나라인 거다. 배불리 먹게 해 주겠다며 인권이고 나발이고 깔아뭉겠던 시절과 뭐가 다른가. 시절이라 하니 좀 그렇다. '배불리'를 소수정예로 한정해서 그렇지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을 뿐더러 그 시절 아버지의 유지를 기반 삼은 대선 후보가 나올지도 모르는 정국이니...

어쨌거나 난 이란 비자를 순조롭게 받아 한시름 덜었다. 오늘은 정말 덥다. 이게 지금 자전거를 타도 되는 날씬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니 머리가 띵할 정도다. 조금 남은 발의 통증을 없애고, 여기서 916km 떨어진 숙소를 구할 수 있는 도시 '퀘타'에 28일에 도착하기 위해 9일전인 금요일에 출발하기로 결정한다. 28일에 숙소를 잡아야 하는 이유는 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알겠지. 3일만 잘 버텨보자.

팁>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비자 받기

1. 여권과 여권사진, 여권 복사본을 가지고 이란 대사관에 간다.
2. 아저씨가 건네는 신청서 두 부를 작성하고 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윗선과 전화를
   연결해준다.
   전화내용은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거부돼도 신청료는 환급이 안 된다'등의 협박.
   쿨하게 'No problem'하면 신청료 내라고 은행 계좌표를 준다.
3. 대사관에서 6~700m 정도 떨어진 지정은행에 가서 신청료 3600루피(약 46,800원)와
   수수료 60루피(약 780원)를 주고 영수증을 받는다.
   (은행 뒤편에 복사집이 있어서 거기서 여권 복사본을 만들어도 된다.)
4. 다시 대사관에 가서 영수증을 주면 성의 없게 종이 쪽이 쭉 찢어서 전화번호를 적어
   주면서 15일 후에 전화를 하라 한다.
5. 철수 후 15일을 기다린다.
6. 여권을 맡기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에 훈자 등 다른 동네 구경을 간다.
7. 15일 후 전화를 걸어 이름을 말해주고 신청승인 받았냐 묻는다.
   아직이라면 다음날 또 건다.
8. 승인이 났다 하면 다시 여권을 들고 대사관에 간다.
9. 여권을 주고 비자피 은행 계좌표를 받는다.
10. '3'과 같은 방법으로 은행에 가 비자피 150루피와 수수료 60루피를 내고 영수증을
   받아와서 대사관에 준다.
11. 오후 3시에 다시 오라 하지만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한 두 시간 후 비자가 찍힌
   여권을 준다.

복잡한 서류며, 인터뷰 같은 거 없다. 이곳까지 와서 이란비자를 받으려는 내공의 여행자라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거 빼고 굉장히 수월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란 대사관 비자 업무 시간은 오전9시~12시. 금, 토, 일 휴무.
여성분들은 히잡을 두른 여권사진이 필요하다는데, 그 밖의 진행과정 또한 남성과 동일한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