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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방에 있는 짐을 들고 밖에 들락거리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 에어컨이 있는 방에서 벗어나기 싫다. 정말 너무 덥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주행 시작.

이제 자전거 타는 것에 이골이 나서 한 달 정도의 휴식으로는 그렇게 큰 타격이 없다. 그러나 지금 환경이 너무 안 좋다. 아무리 숙련된 자전거 여행자라도 짜증낼만한 날씨. 길도 평지가 아니라 계속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당연히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거리 욕심을 내면 말 그래도 죽어나는 거다. 식당에 들어가 밥을 시킨다.

C 43-1서자마자 물을 엄청나게 들이켜서 정작 밥은 많이 먹지 못한다. 꽁꽁 얼려온 물통의 물은 한 시간 만에 미지근해진 것도 아니고 뜨거워졌다. 체온을 상회하는 날씨의 위력이다.

다시 달린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은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기 마련인데, 날씨 때문에 머리가 텅 비어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인상 쓰며 더위에 짜증만 낼 뿐이다. 도심을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가게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C 43-2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를 발견하고, 10루피(약 130원)짜이 아이스 바를 먹는다. C 43-3한 개로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 한 자리에서 8개나 먹어 치운다.

다시 출발. 여전히 더위에 짜증내며 달리다 길을 잘못 든다. 파키스탄 GPS 지도는 엉성해 큰 도로 위주로 나와 있어서 GPS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간다고 자꾸 삐삐거리는데 너무 짜증이 난 상태라 1~2km 되는 거리를 돌아가기가 싫다. 무슨 상관이랴. 남서쪽으로만 가면 된다. 다시 한 가게에 서서 바로 음료수 3개를 동 낸다. 너무 물만 먹어서 속이 이상한데도 계속 갈증이 난다. 한 아저씨가 나타나 여권을 요구한다. 동네 이장님쯤 되는 아저씨 같은데 짜증내다 여권을 보여주니 인적 사항을 적으며 꼼꼼히도 살핀다. C 43-4한참 후 신분확인이 됐는지 환영한다며 음료수를 하나 건낸다. 동네에 아프카니스탄 사람이 있어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한다. 벌써부턴가? 어쨌든 난 앞으로 가야 한다.

뭘 파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점상이 몇 번 보이길래 궁금해서 먹어본다. C 43-5아이스박스 같은 데서 두유 같은 음료를 가득 담아준다. 뭐냐 물으니 견과류 껍데기를 보여주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먹을만하다. 천연음료가 역시 좋다. C 43-6근데 너무 달아서 두 번은 못 먹겠다. 그 사이에 짜이도 한 잔 대접받고 음료 값도 안 받는다. 역시...

인사를 하고 다시 달리는데 경찰이 세운다. 어떻게 이 길로 왔냐며 묻다가 오토바이 경찰이 붙는다. 뒤에서 계속 졸졸 쫓아온다. 퀘타에서 국경도시인 타프탄으로 가는 길에 경찰이 붙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벌써부터 이럴 줄은 예상치 못했다. 날이 어두워져 주유소에 멈춰 여기서 자고 싶다 하니 경찰이 여긴 위험하다며 5km 정도 가면 경찰서가 있다고 거기서 자라 한다. 따져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어서 순순히 따른다. 문제는 진짜 5km만 가면 되느냐다. 깜깜한 거리를 5km 정도 달리니 뒤에서 비추던 오토바이의 불빛이 사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경찰 오토바이가 붙는다. 관할지역이 바뀐 것이다. 그 뒤로 다시 10km를 달려 경찰서에 도착한다.

경찰서라기 보다 체크포스트라고 도로 막고 차량 검문하는 곳이다. 경찰서에 가면 샤워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여긴 물 사정이 영 아니다. 우선 대충 씻고 밥 얻어먹고 쉬고 있으니 여기는 위험하다고 25km 떨어진 큰 도시로 가잖다. 난색을 포명하니 이곳 건물에 난 총탄 자국을 보여주며 열흘 전에 테러로 경찰 다섯 명이 죽었다고 겁을 준다. 그래도 난 힘들어 못 가겠다 우긴다. 설마 또 오랴. 결국 마당에 그물 평상 하날 제공 받는다. 그렇잖아도 내부가 너무 더워 다 나와서 잔다. 도심을 벗어나면 저녁엔 서늘하진 않을까 싶었는데 절대적인 기온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이불을 덮고 땀을 줄줄 흘리고 자느냐? 모기에게 모든 걸 허락하느냐? 이런 어려운 딜레마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