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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밤엔 거의 폭풍 수준의 바람이 엄청 불었다. 너무 피곤해서 쌩까고 잤다. 바람이 불어도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바닥이 뜨끈뜨끈 온돌 바닥 같아서 깔고 잔 룽기가 다 젖도록 땀을 흘렸다. 그래도 피곤하니 자 지더라. 온돌이 아닌 냉돌 시스템 못 만드나? 수요가 엄청날 텐데...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 안에 모래가 가득하다. 몸도 모래 범벅이다. 가는 텐트 그물을 통해서 모래바람이 다 들어왔다. C 45-1얼마나 피곤했으면 그걸 다 받아들이며 잤을까. 옷 털고, 텐트 털고 출발.

오늘은 하늘에 아주 옅은 구름이 쫙 펼쳐져 있어서 햇볕이 좀 덜 따갑다. 수박 아저씨를 보고 멈춘다. C 45-2수박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짜빠띠를 커리에 찍어먹는 것만으로는 영양공급에 균형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과일이나 짜이는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 한다. 길거리에서 파는 수박은 단맛이 그리 많지 않지만 얼음과 같이 놓고 팔아서 시원하고 좋다. 한 타임을 더 달려 한 식당에 도착한다. 40도가 넘는 날씨에 식욕이 날 리가 없지만 그래도 안 먹으면 안될 것 같아 그냥 입에 우겨 넣는다.

한 교차로에 길을 물으려 멈췄다가 라씨파는 곳이 있어 멈춘다. C 45-3사람 부대끼는 게 싫어 마을 가장자리 한산한 곳에 멈추곤 한다. 역시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선 라씨를 연거푸 세 잔을 마신다. 파키스탄에선 라씨가 제일 맛있다. C 45-4사람들이 '친 친'이라 쑥덕이기에 '꼬리아'라 외쳐주니 그 기회를 틈타 여기저기서 질문공세가 쏟아진다. 시골이지만 한 두 명은 영어를 한다. 당연하게도 이쪽동네 사람들은 얼굴만 보고는 동아시아 사람을 구분 못한다. 오래 전 배낭 여행할 때 여행지에서 나보고 백이며 백 일본사람이냐 물었다. 내가 일본사람 같이 생겼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일본 행 비행기에선 일본 비행기나 한국 비행기나 승무원이 일본말로 안내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그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많이 들어본 나라라 생각하는 거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에선 중국인, 한류열풍이 있는 곳에선 한국인, 그 밖엔 일본인이라 묻는다. 그래서 여기는 무조건 '친'이냐 먼저 묻는다. 잠깐 역사 얘길 덧붙이자면 중국이 서방과 본격적으로 교류를 한 시점은 한무제 때부터였는데 당시 외국사람도 진나라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 'Qin(친)'이라 부르는 걸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친, 치나, 차이나가 된 것이다. 어쨌든 파키스탄에선 여전히 '친'이라 부른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호의도 많아져 수박이며, 아이스바를 잔뜩 얻어먹고 떠난다. 좀 달리니 주변이 허허벌판이다. C 45-5그런고로 가게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시점부터 30km는 달려야 뭔가가 나오고 있다. 해질녘이 돼서 두리번거리다 경찰서를 발견하고 들어가 묻는다. 수 차례 여권 검사와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 경험도 대응책도 없다. 여권을 보여주면 비자 달라고 그러고 비자면을 펴주면 여권 달라는 식이다. C 45-6한참을 그러다가 경찰 서장으로 보이는 아저씨차례까지 간다. 여행기간, 루트 등을 물어보고 지들끼리 뭐라 하며 키득거리는데 짜증이 난다. 여권 뺏고 그냥 나가버릴까 하다 그래 봤자 어쩔거냐. 과정이야 짜증나도 경찰서엔 번듯한 샤워실이 있지 않나. 잠시 후 옥상에 텐트를 치게 해준다. 밥도 대접해준다. 관료주의적인 모습이 꼴보기 싫었던 경찰서장 아저씨도 올라와 밥 먹었냐 물으니 투덜거린 게 괜히 미안해진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