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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동쪽 벽에 텐트를 쳤지만 8시가 되니 텐트는 햇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짐을 정리하고 나온다.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짜이 한 잔 마시고 출발한다. 노면 상태가 영 좋지 않고 어제 막판부터 불어오던 역풍이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평균 시속이 12km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혼자 달리고부터 휴식 시간을 시간이 아닌 거리로 하고 있어서 한참을 달려야 겨우 거리를 채울 수 있다. 견과류 두유를 마시고 배가 고파 수박을 찾는다. 이곳엔 수박을 잘라 파는 곳이 없어 그냥 한 통을 산다. 한 통에 50루피(약 650원)이다. C 46-1엉성하게 칼집을 내준 부분만 먹어도 배가 찬다.

다시 달리다 이번엔 시장에 오랜만에 사탕수수 즙 파는 게 보여 멈춘다. C 46-2사람들 우르르 모여든다. C 46-3사람들이 모여들면 더운 건 둘째치고 자전거가 시야에 가려 불안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우선 말을 걸고 접근하는 사람, 아무도 영어를 못하면 적당한 사람 하날 선택해 말을 건다. 그냥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몇 번 웃는다. 그러면 그 친구는 낯선 외국인이 나타난 이 깜짝 이벤트의 조연이 되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그 사이에 잠깐 잠깐 고개를 들어 자전거를 확인하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깜짝 이벤트의 주인공을 편하게 해줄 의무가 생긴 우리의 조연은 어깨의 힘을 유지한 체 호통을 치며 사람들의 자전거 접근을 막는다. 그럼 난 그 다음부터 자전거에 대한 신경을 꺼도 된다. 현재까진 효과 만점이다. 물론 대부분은 애초에 그럴 사람이 없는 거겠지만 마음 편히 있는 게 중요하니까...

또 다른 휴식시간. 4일 묶은 똥을 빼러 간다. 먹는 게 부실한 것도 있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변의가 잘 오지 않는다. 아마 열악한 상황에서 오는 몸의 긴장 때문일 거다. 그리고 똥 싸는 게 큰 일이기도 하다. 작열하는 태양열을 머금은 꽉 막힌 좁은 화장실에서 인간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자세로 앉아 있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땀은 줄줄 흐르고, 개념 없는 똥파리는 똥에 앉았다 엉덩이에 앉았다 얼굴에 앉으며 귀찮게 한다. 조금의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없는 단순 배설행위일 뿐이다. 그러니 적당한 변의는 참아버린다. 그러니깐 오늘은 며칠에 한 번 해결해야 하는 큰 일을 치른 거라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불어오는 역풍이 휴식시간에 몰려드는 사람을 귀찮게 여기게 만든다. 한적한 가게 앞에 멈춘다. 우유를 팔길래 배도 고프고 해서 한 번에 1리터를 마셔버린다. 마지막 한 타임을 달리려고 아저씨에게 값을 물으니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있던 아저씨가 손님이니 돈 받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잘 때 없으면 여기서 자라는 말도 덧붙인다. 오늘 달린 거리가 짧아 햇볕이 약해지는 마지막에 열심히 달릴 생각이었는데 역풍은 여전하고 한 시간 달려봤자다. 못 이기는 척 승낙한다. 짜이가 온다. 우유 1리터 마시고 달짝지근한 짜이를 마시니 오바이트 쏠린다. 꾹 참고 먹는다. C 46-4

아저씨가 아까부터 샤워하겠냐 물어서 자기 전에 하겠다고 했는데 할 일이 없어 샤워하러 따라 나선다. 어머나!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를 가동하고 있다. 아저씨가 흐뭇해하며 망설이는 나를 보고 일꾼 하나를 불어 물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옷을 벗어 던지고 동참한다.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졸라 시원해. 밤에 더워서 잠자기 힘든 이유는 공기가 덥고, 바닥이 뜨끈한 이유도 있지만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아서 땀을 내내 흘리는 것이다. 몸이 으슬으슬 떨릴때까지 물 속에서 놀다 나온다. 정신까지 상쾌한 이 기분.

개운하게 씻은 후 밥을 먹으러 간다. 형이 한다는 근처 식당에서 푸짐한 상차림을 받는다. 닭고기, 염소고기, 그 밖에 여러 요리들. 내내 식욕이 없었는데 몸이 개운해서 그런지 잘 먹힌다. 배터지게 먹고 다시 가게로 돌아온다. 잠시 후 어떤 아저씨가 와서 마사지를 한다. 이른바 출장 마사지다. C 46-5흥미를 보이니 나에게도 전신 마사지를 해준다. 파키스탄 정통 마사지라는데 아저씨의 아귀 힘이 강력하다. 온 몸을 주무르고 마지막으로 머리 마사지를 한다. 오일을 머리에 두르고 십분간 지지고 볶는다. 빠른 손동작으로 드럼 치듯이 머리를 두들기는데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머리를 때릴 수 있구나 싶다. 아마도 트뤼포는 파키스탄에서 마사지를 받고 '400번의 구타'라는 멋진 제목을 지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잠자리에 눕는다. 여기도 밖에서 그냥 그물 평상을 펴고 자는데 신기하게도 모기가 한 마리도 없다. 모기만 없다면냐 밖에 그냥 누워 자는 게 제일 시원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다. 시원하게 샤워도 하고 마사지도 받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