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lan Korea
Columbia
Scott

어제의 딜레마는 딜레마가 아니라 그냥 잘 수 없게 된 외통수였다. C 44-1일반적으로 한숨도 못 잤다 했을 땐 "정말 한숨도 못 잤을라고?"하며 태연하게 반문하면 머쓱해지기 마련인데 어젠 정말 단 1분도 잘 수가 없었다.  모기가 어찌나 많은지 쉬지 않고 몸을 긁느라 밤을 지샜다. 모기 퇴치 스프레이, 패치 다 소용없다. 인도에서부터 모기들이 퇴치제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그렇게 날이 밝고 한숨을 쉬며 일어난다. 맛없는 아침을 먹어먹고 할 일이 없어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C 44-2

5시 45분. 여행 중 가장 이른 시간에 출발한다. 해가 막 떠오르는 시점이라 선선해서 달리기 좋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가 오르자마자 몸이 달궈지고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견과류 두유 하나 마시고 다시 달리다 수박 파는 아저씨가 있어 멈춘다. C 44-320루피(약 260원) 수박을 세 접시 먹어 치우고 배 두드리고 있는데 두 아저씨가 온다. 주인 아저씨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자전거 타고 왔다고?"하며 내 어깨를 찰싹 때린다. 마치 기대치 않았던 선물을 받은 친구가 "뭘 이런걸 다.."하는 느낌이다. 그만큼 친근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수박 한 접시를 또 사준다. 맛있게 먹고 졸음이 몰려와 쪼그리고 앉아 잠시 존다. 30분쯤 잤을까 몸에 땀이 흥건한 체 불쾌한 느낌으로 잠에서 깬다. 아~ 죽겄다. 몸은 너무 힘들고, 덥고, 졸리다. 이건 미친 짓이다. 이러다 쓰러질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어 근처에 호텔이 있으면 오늘은 쉬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호텔이 있을리가 없다. 이를 악물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데 저 머리 보이는 짙은 먹구름. 그래 폭우라도 좋으니 햇볕만 가려줘. 곧 먹구름 지대에 진입하고 숨을 돌린다. 해만 없어도 전투력이 최소 두 배 이상 상승한다. 먹구름이 아니었으면 버스라도 잡아 탔을지 모를 정도로 심신이 지쳐있다. 하늘은 아직 때가 아니라 하는 건가? 1시간 정도 그늘진 곳을 달리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파키스탄 식 초가 정자라 해야 하나 쉬기 좋은 곳이 있어 늘어져 다시 눈을 좀 붙인다. C 44-4한 시간을 자고 일어나 다시 출발. 배가 고파 맛난 것 좀 먹고 싶은데 먹을 게 없다. 이란 비자피 계산 착오로 돈은 여유 있다. 좀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지만 다른 메뉴는 없다. C 44-5그지같다. 정말 맛난 거 먹고 싶다. 다시 달린다. 주유소 딸린 가게에 멈춰 목을 축이며 사람들과 노닥거린다. C 44-6쉴 때마다 캠코더에 담고 싶은 만남이 생기는데 찍을 기력이 없다. 또 30분 정도 눈을 붙인다. 주유소에 있는 화장실에 샤워 시설도 있어 오늘 여기서 멈출까 고민하지만 아직 해가 지려면 3시간이 남았다. 하루 이틀이면 모르겠는데 일주일은 더 달려야 한다. 힘을 더 내자.

한 시간쯤 지나니 민둥산이 나온다. C 44-7힘들게 올라 넘어가니 완전한 황무지가 펼쳐진다.C 44-8 이상하게도 파키스탄에선 매번 좋은 사람을 만나는데 잠자리를 찾아야 할 쯤엔 그런 만남이 일어나지 않는다. 얼마나 더 달려야 사람 있는 곳이 나오는지... 한참을 달리다 나를 부르는 소리 "헤이 미스터!" 그냥 지나치려다 슬쩍 쳐다보니 수박을 먹고 있다. 후진. 수박을 주는 데로 받아 먹으니 어느새 혼자 반을 먹어 치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텐트 칠 곳도 있고, 어설프게 샤워할만한 곳도 있다. 오늘은 여기서 잔다. 먼저 불러 세운이가 부탁을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 머튼 커리로 저녁을 대접받는다. 빨리 씻고 자고 싶을 뿐이다.

하루 종일 이 자전거 타는 고됨을 멈추고 버스를 타려는 마음을 갖기 위해 얼마나 자기 합리화를 했는지 모른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