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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1. Epilogue - 어떤 가치

2011. 8. 11. 07:27 | Posted by inu1ina2

이란 여행은 순조롭지 못했다. 어디는 위험하고, 어디는 너무 덥고, 도난 사건도 일어나고…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할 수밖에 없었던 구간이 많았다. 땅 덩어리가 크다 보니 마지막에 달린 거리만 해도 900km에 다다르지만, 그 구간은 이란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인도를 넘어가기 전까지 만났던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에게서 파키스탄과 이란 사람은 정말 친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 만큼 기대를 했고, 파키스탄에서는 그 기대만큼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기 전에도 이란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했다.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정말 손님 대접에 길들여진 냥 능숙하게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나라 전체적인 면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강해 이곳 사람들의 전체적인 성향이라 판단하긴 힘들다. 여권을 재발급 받고 자전거로 이동을 하면서 드디어 이곳 사람들의 친절을 느끼면서 역시 소문만큼 좋은 사람들임을 확인했다.

이란 사람들은 정말 잘 훈련된 대접쟁이들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대접문화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어느 나라가 더 친절하네, 못하네 가르는 건 좀 우스운 일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세상엔 좋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pilogue 2

그보다 내가 더 주목하게 된 것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다. 그 동안 누누이 이렇게 힘든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기 못하는 이유에 대해 찬사를 늘어놨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생각해 보질 못했다. 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지, 왜 자전거 여행자들은 그토록 연대감이 강한지... 물론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곳을 가게 되니 만나는 사람도 많아지고 그만큼 좋은 사람을 만난 확률도 높아질 테고, 행색이 그지 같으니 동정을 유발할 수도 있겠고, 흔치 않으니 시선을 쉽게 끌 수도 있다. 그런 이유들도 있겠지만 문득 자전거 여행이 돈 안 되는 가장 힘든 일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일중 하나가 알래스카 게잡이라는 토픽을 읽었다. 그런데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임에도 해마다 지원자들이 몰린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히 보수가 세기 때문이다. 3~4개월에 수 천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하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자전거 여행이라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힘들 때도 많고, 춥고, 덥고, 배고플 때도 부지기수다. 살은 다 타서 벗겨지고 그 속살이 또 벗겨져 피부는 망가지고, 얼굴은 검붉게 얼룩지고, 다리엔 상처투성이다. 그런데 그런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점점 철저히 돈 먹고 돈 먹기로 변해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일을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는 게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나만 바본지 알았는데 또 다른 바보를 만나서 자전거 여행자들은 서로 반가워하는 건 아닐까?Epilogue 1

돈은 어떤 가치를 측정하는 것 중 하나일 뿐이다. 세상엔 여러 가치들이 있고, 돈은 대부분의 것을 측정할 수 있지만 당연히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그리고 돈으로 측정이 불가능한 가치들을 쌓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들은 놀랍게도 마이너스도 되지 않는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이 시간. 집에 먹을 것도 없는데 너 대접해주느라 더 부족해지는구나. 근데 너나 나나 우린 왜 돈 안 되는 일을 서로 하고 있는 거지?’

‘그건 말야. 돈으로 살수 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