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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밥 먹자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아르메니아 식 식사는 두꺼운 빵에 간단한 야채다. 난보단 빵이 낫다. 거기에 오이지와 피클의 중간 정도되는 절인 오이와 큼직한 고추, 그리고 치즈. C 2-1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야채를 먹는 데도 드물다.

이곳의 친구들은 수작업으로 콘크리트 벽돌을 만든다.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나 보다. C 2-2인사를 하고 앞으로 달린다. 현재 고도 500m. 1,800m까지 올라가야 한다. 줄곧 오르막이 이어진다. 각오를 했기 때문에 부담은 없다. 오히려 낮은 경사가 다행스럽다. 이쪽 삼국, 즉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젠은 하나의 론리플레닛으로 소개돼있다.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섹션에 소개된 글을 보면

'이곳에 자전거 여행자는 드물다. 첫째 산이 많아 길이 좆같다. 둘째 차나 오토바이가 위험하게 질주한다. 셋째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그만큼 드무니 여분의 부품을 준비하라. 하지만 가끔 이 길을 달리는 용감한 사이클리스트가 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이 글이면 이곳의 상황을 알 수 있을 터. 참고로 난 아제르바이젠은 안 간다. 비자피도 비싸고 국경비자도 안 된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터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앙숙이라 육로국경이 없다. 그루지아를 통해야 갈 수 있다. 어쨌든 론리플레닛의 기술만큼 길이 험하진 않다. 아마도 그 보다 험한 길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우선 아스팔트길이고 가끔 나타나는 급격한 경사 길을 제외하곤 적당한 경사각이다. 그래도 오르막이니 힘들다. C 2-3

마을이 별로 없어 물 구하기가 첫째다. 한 주유소에서 물을 동냥한다. 마침 식사 중이다. 식사 중에 사람을 그냥 보내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같이 밥을 먹는다. C 2-4물도 가득 채우고 다시 달린다. 끊임없는 오르막이다. 그래도 신기한 건 이란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왔을 뿐인데 바람이 서늘하고 나무가 많아 쉴 곳이 많다. 오르막 길만 아니면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달리기 좋은 길이다. 차도 별로 없어 주변 풀벌레 소리나 계곡물 소리가 좋다. 한시경 지독한 오르막을 오르고 샘물이 나오는 곳에 멈춰 쉰다.C 2-5

옆에서 쉬고 있던 아저씨가 자기 트럭에 자전거 싣고 가자고 하는데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닌 것 같다. 아저씨는 가고 좀 더 쉬고 있으니 맞은 편 오두막에서 한 할아버지가 부른다. 간다.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이다. 차를 대접받고 한 숨 잔다. C 2-6일어나니 움직이기가 너무 싫다. 오전 내내 1,000m 고도를 오르고 20km를 달렸다. 좀 쉬고 싶다. 할아버지에게 말해 오늘 여기서 자기로 한다. C 2-7주변 풍경이 너무 좋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살라고 하면 굉장히 불편할 테지만 도시 생황에 찌든 사람이라면 이런 곳을 동경할 수밖에 없다. C 2-8

잠시 후 몇몇 차량이 들어온다. 이곳은 운전자의 쉼터 같은 곳인데 아는 사람만 오는지 모두 잘 아는 사이 같다. 어설프게 살이 붙어있는 소 뼈다귀를 삶고 술을 꺼낸다. 와인과 보드카를 에스프레소 잔만한 잔에 따라주는데 무조건 원샷이다. 다들 운전자라 나와 할아버지만 마신다. 술이 떨어지자 맥주를 꺼내오는데 맥주가 12.5도다. C 2-9정말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리고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마지막까지 남은 운전자는 옷이랑 신발 도매업을 하는지 실은 물건 중 할아버지에게 몇 개를 주는데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려 하고 그는 안 받으려 하는 모습을 보니 술 때문에 감성이 민감해져서 그럴 테지만 흐뭇함에 눈물이 나려 한다.

술자리가 끝나고 다시 할아버지와 나만 남는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어딜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다. 차를 타고 산 아래 마을로 가서 장을 보고 어느 집에 간다. 아들이 사는 집인 것 같다. 고기와 야채를 꼬챙이에 끼운다. C 2-10아주 두툼한 샤슬릭이다. 준비된 화로에 불을 붙이고 고기와 야채를 굽는다. C 2-11냄새가 좋다. 곧 술상이 차려지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 파티가 시작된다. 두툼한 고기를 통째로 구우니 맛이 아주 그만이다. 거기에 와인과 포도로 만들었다는 70도짜리 독주, 맥주가 곁들여진다. 처음에 좀 서먹했던 분위기가 술과 함께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세상 어디나 술에 취하면 다 친구가 된다. C 2-12

무리 중 경찰이 하나 있었는데 어제 저녁에도 그랬던 것처럼 경찰이나 군인은 사진을 못 찍게 한다. 그래서 그냥 카메라를 내려놓고 술과 고기만 먹어댄다. 이런 곳에서 술을 권하는 데로 다 먹어주면 사람들이 졸라 좋아한다. 그 동안 못 먹었던 술을 한 번에 다 마시는 것 같다. 정말 늦은 시각까지 엄청나게 먹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할아버지의 차에 오르는 순간 바로 곯아 떨어진다. 집에 오자마자 이빨만 닦고 바로 뻗어 잔다.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