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혼자 심심하다. TV와 DVD가 있는데 TV는 전파 수신이 안 되는 것 같고, DVD는 잭이 다 끊어져 있다. 끊어진 잭을 모아 연결해서 DVD를 볼 수 있게 고친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며 두툼한 DVD집을 꺼내는데 죄다 밸리댄스 아니면 포르노 영화다. 남자들이란... 간단히 밥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한다. 포옹을 하고 양 볼에 뽀뽀를 해주는데 까칠한 수염의 여운이 남는다.
이제 계속 오르막이다. 아무것도 없는 산길 오르막일 뿐이다. 다행인 건 가끔 샘물을 받아먹을 수 있게 해 놓은 곳이 있다. 물이 다 떨어질만하면 그런 곳이 나온다. 샘물마저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으로 점검했을 때 이곳 길의 고도는 1,800m 정도가 최고였는데 그것과 아랑곳없이 고도는 계속 올라간다. 2,500m까지 올라가니 드디어 내리막이 보인다. 죽것다. 오전 내내 1,100m를 올라왔다. 고도가 높아져서 바람이 쌀쌀하다. 이제 여기서부터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가겠지 싶었는데 계속 내리막이 이어진다. 내리막의 경사가 크고 구불구불해 브레이크 잡는 손에 쥐가 날 정도다. 끝간 데 없이 내리막이 이어지더니 드디어 아르메니아의 첫 도시인 '카판'에 도착한다.
한 번에 1,800m를 내려왔다. 그래서 다시 더워졌다. 이곳의 분위기는 생소하다. 이 여행 전에 인도나 동남아 여행경험이 있어서 그 동안은 어느 나라도 그렇게 큰 이질감은 없었는데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내가 느끼는 감정만큼 이곳 사람들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는지 왠지 모르게 날 경계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쪽에서 그러면 당연히 나도 그렇게 되고 그게 불편하다.
우선 배가 고파 복숭아를 사먹는다. 5개에 450드람(약 1300원)이다. 근처 가게에서 담배와 커피를 사서 먹고 다시 달린다. 3km정도 달리자 도시는 끝이 나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동네 길은 보통 오르락 내리락 하게 돼있는데 여긴 주구장창 오르막이 이어지고, 또 그만큼 내리막만 계속된다. 어느 일정한 고도를 올라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땐 그게 더 효울적이긴 하나 효율이고 뭐고 따질 기분이 아니다. 주변의 경치도 좋으나 경치를 구경할 기분이 아니다. 정말 힘들다. 도시에서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고파오고 진이 빠져 너무 힘들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처음엔 식당이 나오기를, 그리곤 곧 가게라도, 어느 민가라도, 잠잘 공터라도 나오길 바라며 희망을 줄여 나간다.
배가 너무 고프고 진이 빠져 더 이상 못 달리겠다. 마침 길가 옆으로 빠지는 길이 있어 둘러보니 텐트 칠 자리가 있다. 오늘은 여기서 멈춘다. 아무래도 여기선 먹을 걸 좀 싸가지고 다녀야겠다. 텐트에 누운 후 잠이 들 때까지 계속 음식생각만 한다. 맛있는 것도 필요 없다. 그냥 김치에 밥 한 공기만 있으면 좋겠다. 예레반까지 남은 거리 270km. 며칠이 걸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Production[Story] > S#22. Armen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C#6. 평화로운 하루 (7월17일 am9:30 ~ 7월17일 pm11:30) (1) | 2011.08.24 |
---|---|
C#5. 고됨 속에 술자리 (7월16일 am9:00 ~ 7월17일 am12:30) (0) | 2011.08.18 |
C#3. 한가로운 하루 (7월14일 pm12:00 ~ 7월15일 am2:00) (0) | 2011.08.18 |
C#2. 산골 오두막 집 (7월13일 am7:30 ~ 7월14일 am3:00) (0) | 2011.08.18 |
C#1. 아르메니아 입국 (7월12일 pm9:00 ~ 7월13일 am1:30) (0) | 2011.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