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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할아버지는 혼자 심심하다. TV와 DVD가 있는데 TV는 전파 수신이 안 되는 것 같고, DVD는 잭이 다 끊어져 있다. 끊어진 잭을 모아 연결해서 DVD를 볼 수 있게 고친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며 두툼한 DVD집을 꺼내는데 죄다 밸리댄스 아니면 포르노 영화다. 남자들이란... 간단히 밥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한다. 포옹을 하고 양 볼에 뽀뽀를 해주는데 까칠한 수염의 여운이 남는다.

이제 계속 오르막이다. 아무것도 없는 산길 오르막일 뿐이다. C 4-1다행인 건 가끔 샘물을 받아먹을 수 있게 해 놓은 곳이 있다. C 4-2물이 다 떨어질만하면 그런 곳이 나온다. 샘물마저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으로 점검했을 때 이곳 길의 고도는 1,800m 정도가 최고였는데 그것과 아랑곳없이 고도는 계속 올라간다. 2,500m까지 올라가니 드디어 내리막이 보인다. 죽것다. 오전 내내 1,100m를 올라왔다. C 4-3고도가 높아져서 바람이 쌀쌀하다. 이제 여기서부터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가겠지 싶었는데 계속 내리막이 이어진다. 내리막의 경사가 크고 구불구불해 브레이크 잡는 손에 쥐가 날 정도다. 끝간 데 없이 내리막이 이어지더니 드디어 아르메니아의 첫 도시인 '카판'에 도착한다. C 4-4

한 번에 1,800m를 내려왔다. 그래서 다시 더워졌다. 이곳의 분위기는 생소하다. C 4-5이 여행 전에 인도나 동남아 여행경험이 있어서 그 동안은 어느 나라도 그렇게 큰 이질감은 없었는데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C 4-7내가 느끼는 감정만큼 이곳 사람들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는지 왠지 모르게 날 경계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쪽에서 그러면 당연히 나도 그렇게 되고 그게 불편하다.

우선 배가 고파 복숭아를 사먹는다. C 4-65개에 450드람(약 1300원)이다. 근처 가게에서 담배와 커피를 사서 먹고 다시 달린다. 3km정도 달리자 도시는 끝이 나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동네 길은 보통 오르락 내리락 하게 돼있는데 여긴 주구장창 오르막이 이어지고, 또 그만큼 내리막만 계속된다. 어느 일정한 고도를 올라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땐 그게 더 효울적이긴 하나 효율이고 뭐고 따질 기분이 아니다. 주변의 경치도 좋으나 경치를 구경할 기분이 아니다. 정말 힘들다. C 4-8도시에서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고파오고 진이 빠져 너무 힘들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처음엔 식당이 나오기를, 그리곤 곧 가게라도, 어느 민가라도, 잠잘 공터라도 나오길 바라며 희망을 줄여 나간다.

배가 너무 고프고 진이 빠져 더 이상 못 달리겠다. 마침 길가 옆으로 빠지는 길이 있어 둘러보니 텐트 칠 자리가 있다. 오늘은 여기서 멈춘다. C 4-9아무래도 여기선 먹을 걸 좀 싸가지고 다녀야겠다. 텐트에 누운 후 잠이 들 때까지 계속 음식생각만 한다. 맛있는 것도 필요 없다. 그냥 김치에 밥 한 공기만 있으면 좋겠다. 예레반까지 남은 거리 270km. 며칠이 걸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