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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뎀이 감기에 걸려 겔겔거리고 있는데 나도 옮았는지 밤새 훌쩍이며 잤다. 일어나니 다행히 감기 기운은 금방 사라졌다. 아뎀이 해주는 똑같은 토스트를 먹고 파묵칼레 구경을 가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여기서 20km 정도 떨어져있다. 우선 시티은행에 들려 돈을 뽑는다. 자전거 수리비만 아니었으면 딱 맞출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그 사이 환율이 급변해서 달러를 바꾸는 게 좋은데 여긴 또 사설 환전소가 없다. 은행에서 환전하면 수수료를 너무 많이 땐다. 하는 수없이 현금 서비스를 받는다. 앞으로 한달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쓸 150리라(약 97,700원)를 뽑는다. 앙카라에선 리라당 624원으로 뽑았는데 이번엔 651원으로 비싸졌다. 짜증.

파묵칼레로 간다. 매표소에서 20리라(약 13,000원)를 내고 들어간다. C 60-1오랜만에 입장료 내는 곳을 왔다. 그 값어치를 할지… 파묵칼레는 언덕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미지근한 온천수의 석회 성분이 쌓인 퇴적층이다. C 60-3흰색으로 덮인 언덕이 인상적이다. C 60-2그래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미지근한 온도의 물이 계속 흐르고 있어 사람들은 물놀이 하는 기분으로 파묵칼레를 즐긴다. C 60-4C 60-7C 60-5유명한 관광지라 사람이 많다. 한국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C 60-9흰색의 퇴적층이 계단식으로 형성되고 물이 고여 푸른빛을 띠는 게 참 볼만하다. C 60-6C 60-8사진 찍기는 아주 그만이다. C 60-10정보가 있어서 준비를 했으면 몸을 물에 담그고 놀아도 좋을 것 같다. C 60-11

언덕을 다 오르면 ‘히에라폴리스’라 불리는 고대 로마도시의 유적지가 있다. C 60-12그러니까 이미 1,700년 전 로마인들이 파묵칼레의 멋스러움에 반해 이곳에 도시를 만들어 살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그 흔적만 남아있다. 길을 만들어 놓긴 했는데 따로 규제가 없어 발길 닿는 데로 가고 싶은 곳에 다가가 아무데나 걸터앉아 쉬며 구경할 수 있다. 그나마 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건 원형극장뿐이다. C 60-14일년에 네댓 번 관광객을 위한 공연을 한다는데, 관람석 끝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때로 가서 로마인의 연극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멋진 극장이다. 로마도시유적이 있는 곳엔 어디나 이런 극장이 있는 걸로 봐서 로마인은 문화 예술을 꽤나 즐겼던 것 같다.

다시 폐허가 된 도시 주변을 서성인다. C 60-19꽤나 큰 도시였던 것 같다. 로마시대의 역사를 좀 알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고대 유적지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C 60-17수천 년 전 이곳에서도 지금과 같이 똑같은 삶이 펼쳐졌겠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 서 있었던 그들도 똑같이 사랑하고, 이별하고, 삶에 치이고, 친구들과 술 퍼먹으며 놀고… 그런 상념에 빠져있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C 60-15‘이곳에서 살았던 로마인은’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 집에 살았던 그 녀석은’하고 대상을 구체화시키면 왠지 더 애틋한 기분이 든다. 인생무상이란 체념 섞인 단적인 표현보다 더 많은 것이 이곳에 있다. 살아간다는 게 무얼까 생각하기 좋은 기회다. C 60-18파묵칼레도 멋지지만 난 개인적으로 폐허가 된 히에라폴리스를 거니는 게 더 맘에 들었다. C 60-16

해가 질 무렵 입구에 있는 석회층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C 60-21지금은 철이 아닌지 물이 마른 곳이 많다. 물이 넘치면 정말 장관일 것 같은데 아쉽다. C 60-20여기는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말고도 20km 내에 볼거리들이 많다는데 난 귀찮아서 이걸로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오니 아뎀은 여전히 폐병환자처럼 축 늘어져 담배를 피고 있다. 아뎀에게 물이 마른 곳이 많아 아쉬웠다 하니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 온천 물을 호텔에 팔아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정치하는 놈들은 어디나 눈앞에 작은 이익 때문에 큰걸 버리는 습성이 있다. 바보 같은…

잘 구경을 하고 돌아온 집의 싱크대에는 적어도 2주는 방치한 것 같은 설거지거리들이 쌓여있고 방은 지저분하다. 살아생전 이놈처럼 집 관리 안 하는 놈을 본적이 없다. 결국 내가 못 참겠어서 설거지를 한다. 아뎀이 계속 말리는데 대신 토스트 해 달라하고 설거지를 계속한다. 그래도 착한 놈이라 이 정도 수고는 아깝지 않다.

이곳 구경도 마쳤으니 내일 하루 더 쉬고 또 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