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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2. 얼추 일 년

2013. 7. 10. 22:55 | Posted by inu1ina2

여행이 끝난 지 얼추 일 년이 다 됐습니다. 이제 일 년이란 생각도 들고, 벌써 일 년이란 생각도 드네요. 여행을 마치고 장기여행자의 여행 이후 얘기에 대해 좀 끄적여보고 싶었습니다만, 마땅히 쓸 얘기가 없더군요. 당연하게도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니까요. 아마도 저는 아주 다르진 않아도 조금은 전과 다른 삶이 펼쳐질 줄 알았나 봅니다. 어쩌면 그런 기대를 했겠죠. 그래도 일로나와 함께 있다 보니 제가 했던 여행이 완전 과거에 묻혀 단절되는 느낌은 덜 합니다. 여전히 대한민국 밖으로 다리 하나를 걸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어쩌면 그게 외국인과 같이 사는 장점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별거 없었던 그간의 일을 좀 끄적여보지요.

일본에서 일로나의 학생비자를 받고 온후 어학당에 입학하기 전에 잠깐 제주도에 갔다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처음인 사람이야 여기저기 가볼 만한 데가 많겠지만, 날도 춥고 아무래도 제주도가 구경거리가 많으니까요. 친구가 제주도에 좋은 호텔을 잡아준 이유도 있었지요. 마침 비수기라 차 막힘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한적하고 맑은 협재 해수욕장, 성산일출봉, 쇠소깍, 주상절리 등을 구경하고, 올레길도 좀 걸어보고, 제주도와 아무 상관 없는 박물관도 돌아봤지요. 물론 제주 흑돼지를 빼놓으면 안 되겠지요.C 2-1C 2-2C 2-3C 2-4C 2-5C 2-6C 2-7C 2-8

일로나의 학기가 시작되고, 저는 다시 여행기 쓰기 시작했습니다. 집필 작업이라는 게 혼자 집중해야 잘 되는 건데, 제가 좀 게을러서 혼자 있으면 다른 놀 거리를 찾느라 바쁩니다. 그러다 보니 옆에 일로나가 있는 게 책임감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 때문에 집중이 더 잘 되더군요. 무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강제성이 조금 부여되는 것도 능률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에서 글을 쓰고, 일이 생기면 틈틈이 아르바이트하는 생활을 했고, 일로나는 학교에 다니며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일로나는 처음엔 새로운 학교생활을 즐기는 듯하더니, 등급이 올라가면서 공부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슬슬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같은 학급의 한두 명 있던 서양 사람들이 등급이 올라가면서 다 떨어지고, 한자어권 나라인 일본, 중국, 대만, 마카오 출신의 친구들만 있다 보니 그들의 이해에 맞춰 나가는 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제가 집에서 교재를 보며 설명해 주곤 하지만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더군요. 한글은 쉽지만 한국어는 정말 익히기 어려운 언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정치권에서나 언론에선 담화록 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엉터리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죠. 갑갑합니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면서 세상의 따뜻함을 참 많이도 얻었죠. 그래서 적어도 최소한 제가 받은 만큼은 갚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살기를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내내 뉴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럼 나도 모르게 사람을 의심하고, 행여 불이익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경계하고, 눈에 보이는 걸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는 몇 년 전과 비교해 너무 다르고 이상해졌습니다. 어쩌면 이럴 때일수록 그 다짐을 더 굳건히 해야겠지요. 지눌 스님이 설파한 돈오점수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깨닫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그걸 체화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이럴 땐 인터넷을 잘 하지 못해 뉴스를 못 보던 때가 더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니면 뭔가 바쁜 삶을 살아야 덜 관심을 둘 텐데 하는 마음도 들고요. 아닌 게 아니라 일을 구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장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다 여행 이후를 걱정하곤 합니다만 저 같은 경우엔 여행을 가기 전에도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여서 큰 상관은 없을 거라 생각했죠. 아마도 저 혼자였으면 지금의 상황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짝이 생기니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습니다. 뭐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남들 다 하는 고민을 이제야 시작합니다. 혹시 단기간 일손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주십시요. 제가 게을러도 주어진 일은 책임감 있게 잘 합니다. 일로나는 일주일에 한 번 영어 과외를 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가 영어권 나라는 아니지만,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합니다. 요즘 직장인이나 학생들 영어 회화능력 향상을 위해 원어민과 대화하는 과외들을 많이 하던데 일로나가 그거 잘해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그런 과외 필요하신 분도 연락주세요. 이 블로그가 개인 블로그이긴 합니다만 너무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6월에는 일로나와 만난 지 1주년 기념으로 경주에 놀러 갔습니다. 4월이 1주년이었는데 일로나의 학기 중이라 방학 때 간 것이지요. 마음 같아서는 태국의 멋진 해변엘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돼야 말이죠. 그나마 일로나가 외국사람이라 우리나라를 돌아보는 것도 좋아해서 다행이었죠. 1주년이니 뭐니 그런 걸 챙기려는 것도 좋아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 의무가 아닌 즐거움으로 할 수 있어 좋습니다. C 2-10C 2-11C 2-12C 2-13C 2-14

1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저희 둘 사이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애정이 넘칩니다. 쑥스럽지만 그 점은 자랑하고 싶군요. 저희가 적은 나이도 아니고 각자 연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마음이 처음처럼 계속 유지되는 게 꽤 새롭습니다. 그런 얘길 하면서 서로 놀라워하며 즐거워하죠. 경제적 여유도 없고, 엄마와 한 집에서 좁아터진 방에서 살아도 그 마음이 변치 않아 주어서 참 고맙습니다. 우리끼리는 장난스레 우리의 만남이 운명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제가 비포 선라이즈에 대해 언급을 많이 했었죠. 당연히 우리는 얼마 전에 개봉한 비포 미드나잇을 보러 갔습니다. 사실 이 시리즈는 별다른 사건도 없이 두 남녀가 노닥거리는 게 답니다. 그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사로운 연애감정을 건드려주니 재미있는 거죠. 그래서 누구나 자기들 얘기 같이 느낄 수 있는 건데도 저희는 그 영화를 우리의 관계와 너무 동질화한 나머지 진짜 우리 얘기 같이 느끼는 것 같아요.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온 일로나가 1년 전을 회상하며 비포 선라이즈를 다시 보더니 갑자기 우리가 언제 비엔나에 갔었는지 물어보고는 날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블로그를 쓸 때 날짜까지 다 기록을 해 놔서 찾아보니 저희가 비엔나에 방문한 날이 6월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이었죠. 헌데 비포 선라이즈에서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헤어질 때 에단 호크가 줄리 델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이 6월 16일이니까 6개월 뒤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정말 놀라웠죠. 그들이 비엔나를 돌아다닌 날이 6월 15일과 16일이었던 겁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저희 사이에 일어났던 우연은 확률적으로 로또 수십 개 맞는 확률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큰 제 인생의 대박이기도 하고요. 비포 미드나잇을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쌍둥이를 갖는다면 이건 정말 운명이 분명하다 하면서 저희끼리 즐거워하곤 합니다. 그런 것에서 피어나는 즐거움, 행복들이 참 좋습니다. 모름지기 사랑이란 그래야 하지요.

그런 즐거움 속에서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여행기를 탈고했습니다. 책을 쓴다는 게 블로그와는 차원이 달라서 쓰면서도 잘 쓰고 있는 건지 엉망인 건지 판단이 힘들더군요. 제 머릿속에 있는 멋진 기억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뻔한 여행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쓴 걸 또 보고 확인할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짜증이 났는데 제가 뭐 노벨상을 받으려고 쓰는 것도 아니고 해서 마음 편히 갖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제 이 글을 책으로 만들어줄 출판사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 여행을 한 사람도 여행기를 낸 사람도 너무 많아서 이 글이 관심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기간 내에 출판되길 바랄 뿐입니다.

오랫동안 집에 있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살도 많이 쪘고요. 다이어트엔 뭐니뭐니해도 여행 다이어트가 최고지요. 다시 여행길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일로나가 받은 학생비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직 시도는 안 해봤지만,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직장도 없고, 재정형편도 안 좋은 저와 혼인을 한다 해도 결혼이민비자를 받기가 수월치 않을 것 같더군요. 니들이 사랑을 하든 결혼을 하든 돈이 없으면 여기선 못 산다 라고 하는 게 참 웃깁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쩌겠습니까? 그걸 핑계로 또 떠나는 수밖에 없겠지요. 여하튼 그 문젠 시간이 좀 있으니 차차 생각해 봐야지요.C 2-9

아마 다음 글은 책이 출간될 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곧 밀어닥칠 뜨거운 여름 잘 보내시고, 즐거운 하루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피에스>
블로그에 스팸 댓글이 많이 달려서 스팸신고를 한다는 게 잘못해서 제 이름을 클릭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방명록은 살아있는데, 포스팅한 글에 달린 댓글에 대한 저의 답글이 다 지워져 버렸어요. 하나하나 다시 답글을 달려다가 그것도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이렇게 양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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