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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한국 식당을 찾아 나선다. 정통 한국 식당은 아닌데 어설프게 짝퉁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타즈마할 근처에 있어서 2km 되는 거리를 걸어간다. 자전거를 타면 바람을 맞아서 좀 덜한데, 걸으면 뜨거운 날씨가 고스라니 느껴진다. 너무 덥다.

숙소와 식당이 많은 여행자 지역에 들어선다. 작은 삼거리 양 모퉁이에 어설픈 한글 메뉴가 적혀있는 식당들이 보인다. 한 식당에 들어간다. 김치를 보여달랬더니 지금은 없고 주문하면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단출한 메뉴판에서 김치관련 음식을 제외하고 불고기와 백숙을 시킨다. C 20-1백숙이야 그냥 삶으면 그만이고, 불고기는 적당히 예상한 정도의 맛이다. 김치라고 가지고 온 건 당근 고춧가루 무침이다. 바라나시에서도 그랬는데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김치가 빨가니까 당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인도 음식보다는 훨씬 낫다.

집에선 무선 인터넷이 안 잡혀서 인터넷 카페에 들려 다음 목적지인 델리에 있는 카우치서핑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대도시인만큼 회원들이 많아 델리에서 게스트하우스 잡을 일은 없을 듯 하다.

집에 돌아온다. 어제부터 한국음식을 해달라고 해서 우리도 먹을 겸 알았다고 했었다. 그럼 장을 봐야지. 여기서부터 그 부정적인 코멘트의 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한다.

Round 1.
양념도 없고 하기도 귀찮아서 닭백숙이나 하려고 닭을 사야 한다 하니 닭고기 파는 곳과 다른 재료들 사는 덴 다르다며 돈을 주면 닭고기를 사다 줄 테니 다른 재료를 사오라 한다. 그게 시간을 아끼는 거라고 우리의 편의를 봐주는 듯 얘기해서 굳이 같이 가겠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가격을 물으니 1kg당 200루피(약 5,000원)이라 한다. 1kg이면 중닭 한 마리 정도일 텐데 비싼 느낌이다. 요리된 탄두리치킨 한 마리가 150 ~ 190루피이니 확실히 비싸다고 할 수 있다. 8명이 먹어야 하니 3kg는 필요하다는 말에 국물 내 먹을 테니 2kg만 사달라고 하고 400루피를 준다. 패배.

Round 2.
돈을 주고 우린 아줌마와 다른 재료를 사러 간다. 수퍼마켓에 가서 이런저런 재료를 구입하고 쌀을 사려하는데 1kg당 22루피짜리 쌀이 있는데 안 좋은 쌀이라며 계속 80루피 짜리를 사라고 반 강요를 한다. 우리에겐 다 맛없는 길쭉한 인도쌀 일뿐이다. 그래도 바로 거절하긴 그래서 쌀을 유심히 고르는 척 하면서 아줌마가 한눈 파는 사이에 22루피짜리를 산다. 따로 계산을 하는데 아줌마는 자기가 산 것의 일부만 계산하고 나머지를 뒤로 뺀 후 우리 먼저 계산하라 한다. 우리가 계산대에 서자 아줌마와 가게 직원이 속삭인다. 우리가 산 2kg의 쌀 가격이 44루피가 아닌 140루피로 적혀있는 계산서 포착. 작은 오산 계산서에도 급 흥분하는 효일이가 정확히 지적하고 정가로 계산을 끝낸다. 그 뒤 아줌마는 나머지 물건을 다시 계산한다. 마침 가게에 중국식 간장이 있어 닭백숙에서 닭볶음탕으로 메뉴를 변경한다. 기다리고 있던 오토릭샤를 타고 집에 오니 아줌마는 당연한 듯 우리보고 오토릭샤 가격을 계산하라 한다. 150루피인데 100루피만 주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격이 나올 거리가 아니다. 50루피를 슬그머니 건네니 오토릭샤 아저씨는 그것만 받고 아무 말없이 갈 길을 간다. 무승부

Round 3.
요리를 시작한다. C 20-2닭 2kg은 8명이 먹기 부족하다. 그래서 국물 내어 밥에 고기 먹고 국물에 국수 삶아 먹으면 어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요리였다. 이들의 꽁수가 아니었다면 우린 조금은 부족하지만 다 같이 맛있는 닭백숙을 먹을 수 있었다. 나나 효일이 재상이는 매운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이 맵다 하는 음식도 우린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시뻘건 닭볶음탕이 오늘의 주메뉴가 됐다.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계치로 매운맛 게이지를 올린 요리를 만든다. C 20-3요리가 완성되고 사람들을 부른다. 아~ 맵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참다운 매운맛이더냐. 효일이는 나보다 매운 걸 더 잘 먹으니 당연히 맛있게 먹는다. 무교동 낚지볶음 노래를 하던 재상이는 한동안 매운 음식 생각 안 나겠다며 좋아라 한다. 한편, 이들 아들내미 얼굴 찡그리고 바로 내려간다. 딸내미 귀 막고 입 후후 불더니 숟가락 놓는다. 비크람 접시 들고 내려간다. 아저씨 온갖 의성어 남발하며

“인도사람만 매운 거 먹는지 알았는데 한국 음식이 훨씬 맵다. 한국 사람들이 다 진짜 이렇게 맵게 먹냐?”
“이 정도가 보통이에요.”
“한국사람들이 왜 강한지 알겠다.”

아저씨는 힘들어하면서도 맛있다며 선전한다. 많이 드세요. 이제 우리 넷이 먹기엔 충분한 양이니까요. KO승.

바라나시에서 닭 잡는 걸 봤는데 여기선 닭 목을 따고 털을 뜯는 게 아니라 껍질째 훌렁 벗겨버린다. 닭 한 마리 잡는데 30초나 걸렸을까 싶었다. 그래서 인도의 닭 요리는 껍질이 없다. 껍질의 지방질이 없고 간장 맛도 좀 이상해서 완벽한 닭볶음탕의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매운맛과 양껏 고기를 먹는다는 것만으로 우린 충분히 맛있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요리사로서 같이 식탁에 앉은 이가 맛있게 먹지 못하는 것쯤이 아닌 입에도 대지 못하는 음식을 내놓고 이렇게 흐뭇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좀 미안하다. 한국음식 먹어본다며 기대도 많이 하고 부엌 떠나지 않고 기다리며 시중도 잘 들어줬는데… 니들은 커서 정직한 사람이 되거라. 지출한 비용과 우리가 느낀 만족감을 따져보면 오늘은 우리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짜릿한 역전승. 다음 경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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