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20. 짜릿한 역전승 (10월1일 am8:00 ~ 10월2일 am2:00)
2010. 11. 11. 00:36 |한국 식당을 찾아 나선다. 정통 한국 식당은 아닌데 어설프게 짝퉁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타즈마할 근처에 있어서 2km 되는 거리를 걸어간다. 자전거를 타면 바람을 맞아서 좀 덜한데, 걸으면 뜨거운 날씨가 고스라니 느껴진다. 너무 덥다.
숙소와 식당이 많은 여행자 지역에 들어선다. 작은 삼거리 양 모퉁이에 어설픈 한글 메뉴가 적혀있는 식당들이 보인다. 한 식당에 들어간다. 김치를 보여달랬더니 지금은 없고 주문하면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단출한 메뉴판에서 김치관련 음식을 제외하고 불고기와 백숙을 시킨다. 백숙이야 그냥 삶으면 그만이고, 불고기는 적당히 예상한 정도의 맛이다. 김치라고 가지고 온 건 당근 고춧가루 무침이다. 바라나시에서도 그랬는데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김치가 빨가니까 당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인도 음식보다는 훨씬 낫다.
집에선 무선 인터넷이 안 잡혀서 인터넷 카페에 들려 다음 목적지인 델리에 있는 카우치서핑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대도시인만큼 회원들이 많아 델리에서 게스트하우스 잡을 일은 없을 듯 하다.
집에 돌아온다. 어제부터 한국음식을 해달라고 해서 우리도 먹을 겸 알았다고 했었다. 그럼 장을 봐야지. 여기서부터 그 부정적인 코멘트의 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한다.
Round 1.
양념도 없고 하기도 귀찮아서 닭백숙이나 하려고 닭을 사야 한다 하니 닭고기 파는 곳과 다른 재료들 사는 덴 다르다며 돈을 주면 닭고기를 사다 줄 테니 다른 재료를 사오라 한다. 그게 시간을 아끼는 거라고 우리의 편의를 봐주는 듯 얘기해서 굳이 같이 가겠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가격을 물으니 1kg당 200루피(약 5,000원)이라 한다. 1kg이면 중닭 한 마리 정도일 텐데 비싼 느낌이다. 요리된 탄두리치킨 한 마리가 150 ~ 190루피이니 확실히 비싸다고 할 수 있다. 8명이 먹어야 하니 3kg는 필요하다는 말에 국물 내 먹을 테니 2kg만 사달라고 하고 400루피를 준다. 패배.
Round 2.
돈을 주고 우린 아줌마와 다른 재료를 사러 간다. 수퍼마켓에 가서 이런저런 재료를 구입하고 쌀을 사려하는데 1kg당 22루피짜리 쌀이 있는데 안 좋은 쌀이라며 계속 80루피 짜리를 사라고 반 강요를 한다. 우리에겐 다 맛없는 길쭉한 인도쌀 일뿐이다. 그래도 바로 거절하긴 그래서 쌀을 유심히 고르는 척 하면서 아줌마가 한눈 파는 사이에 22루피짜리를 산다. 따로 계산을 하는데 아줌마는 자기가 산 것의 일부만 계산하고 나머지를 뒤로 뺀 후 우리 먼저 계산하라 한다. 우리가 계산대에 서자 아줌마와 가게 직원이 속삭인다. 우리가 산 2kg의 쌀 가격이 44루피가 아닌 140루피로 적혀있는 계산서 포착. 작은 오산 계산서에도 급 흥분하는 효일이가 정확히 지적하고 정가로 계산을 끝낸다. 그 뒤 아줌마는 나머지 물건을 다시 계산한다. 마침 가게에 중국식 간장이 있어 닭백숙에서 닭볶음탕으로 메뉴를 변경한다. 기다리고 있던 오토릭샤를 타고 집에 오니 아줌마는 당연한 듯 우리보고 오토릭샤 가격을 계산하라 한다. 150루피인데 100루피만 주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격이 나올 거리가 아니다. 50루피를 슬그머니 건네니 오토릭샤 아저씨는 그것만 받고 아무 말없이 갈 길을 간다. 무승부
Round 3.
요리를 시작한다. 닭 2kg은 8명이 먹기 부족하다. 그래서 국물 내어 밥에 고기 먹고 국물에 국수 삶아 먹으면 어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요리였다. 이들의 꽁수가 아니었다면 우린 조금은 부족하지만 다 같이 맛있는 닭백숙을 먹을 수 있었다. 나나 효일이 재상이는 매운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이 맵다 하는 음식도 우린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시뻘건 닭볶음탕이 오늘의 주메뉴가 됐다.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계치로 매운맛 게이지를 올린 요리를 만든다.
요리가 완성되고 사람들을 부른다. 아~ 맵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참다운 매운맛이더냐. 효일이는 나보다 매운 걸 더 잘 먹으니 당연히 맛있게 먹는다. 무교동 낚지볶음 노래를 하던 재상이는 한동안 매운 음식 생각 안 나겠다며 좋아라 한다. 한편, 이들 아들내미 얼굴 찡그리고 바로 내려간다. 딸내미 귀 막고 입 후후 불더니 숟가락 놓는다. 비크람 접시 들고 내려간다. 아저씨 온갖 의성어 남발하며
“인도사람만 매운 거 먹는지 알았는데 한국 음식이 훨씬 맵다. 한국 사람들이 다 진짜 이렇게 맵게 먹냐?”
“이 정도가 보통이에요.”
“한국사람들이 왜 강한지 알겠다.”
아저씨는 힘들어하면서도 맛있다며 선전한다. 많이 드세요. 이제 우리 넷이 먹기엔 충분한 양이니까요. KO승.
바라나시에서 닭 잡는 걸 봤는데 여기선 닭 목을 따고 털을 뜯는 게 아니라 껍질째 훌렁 벗겨버린다. 닭 한 마리 잡는데 30초나 걸렸을까 싶었다. 그래서 인도의 닭 요리는 껍질이 없다. 껍질의 지방질이 없고 간장 맛도 좀 이상해서 완벽한 닭볶음탕의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매운맛과 양껏 고기를 먹는다는 것만으로 우린 충분히 맛있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요리사로서 같이 식탁에 앉은 이가 맛있게 먹지 못하는 것쯤이 아닌 입에도 대지 못하는 음식을 내놓고 이렇게 흐뭇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좀 미안하다. 한국음식 먹어본다며 기대도 많이 하고 부엌 떠나지 않고 기다리며 시중도 잘 들어줬는데… 니들은 커서 정직한 사람이 되거라. 지출한 비용과 우리가 느낀 만족감을 따져보면 오늘은 우리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짜릿한 역전승. 다음 경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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