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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일찍 일어나 파키스탄 대사관을 찾아간다. 대사관 한쪽 벽면에 뚫린 창구에서 비자 신청을 받는데 외국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 줄을 서고 기다린다. C 25-1 조그만 구멍에 얼굴을 들이밀고 비자 신청하러 왔다고 하니 여행객 신분이면 비자 신청이 안 된다고 한다. 모든 외국인은 자국에서만 여행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런 정보를 읽긴 했지만 실제 상황이 되니 막막하다. 그 동안 찾은 정보로는 이란 비자도 3일짜리 경유 비자만 가능하다 한다. 서쪽으로 가는 통로가 막혀버렸다. 북쪽으로 올라 중국을 거쳐 ‘스탄'국들을 거쳐가는 것도 계절상 불가능하다. ‘스탄'국들의 비자도 받기 힘들고 비싸기까지 하다.

돌아와 한국에 있는 파키스탄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보니 대리인이 신청하는 것은 가능한데 당사자가 외국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제 육로 이동은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 됐다. 돈도 많이 떨어져 비행기를 타고 멀리 이동하진 못한다. 이 기회에 루트 짜기 애매했던 아라비아반도 아랫부분을 갈까 싶어 예멘 정보를 찾아보니 올 초에 도착비자는 없어졌고, 최근엔 외국인에게 여행비자를 안 내준다고 한다. 10월 1일엔 탈레반과의 전쟁을 예멘으로 옮긴다는 오바마의 성명도 있었다. 현재 중동지역을 여행하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다이렉트로 가는 방법뿐이 없는 셈이다. 한 두 나라라면 그냥 건너뛰겠는데, 중동 전 지역이 그러니 전체를 건너뛰는 거리가 길어져 비행기 값이 큰 타격이다. 미국과 탈레반이 우리 여행을 망치고 있다.

지도를 보고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대책이 서질 않는다. 골치 아프다. 어쨌거나 내일 예멘 대사관과 이란 대사관에 가볼 생각이다. 이란 여행 비자 발급이 안되면 유럽이나 아프리카로 바로 가는 방법밖에 없고, 그럼 우리의 여행은 예산부족으로 종착역을 향하게 된다. 망했다.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지며 정보를 찾느라 머리가 아프다. 저녁이 되자 집 주인들이 퇴근을 하고 점심에 온 또 다른 서퍼인 이탈리아 친구들도 온다. 모두 둘러 앉아 밥을 먹는다. 이탈리아 커플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어린 애들인데 영어를 잘 못한다. 우리보다 영어를 못하는 유럽인은 처음 본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일 저녁은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한국요리로 정해진다. 골치 아픈 일이 또 늘었다. 재료만 쉽게 구할 수 있다면야 한국요리를 대접하는 건 큰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양념도 없는 상황에서 어설픈 한국요리를 선보이는 건 괴로움이 된다. 아그라때처럼 아무도 못 먹는 음식을 내놓을 수는 없는 자리다. 또 파스타와 경쟁을 해야 하니 더욱 그렇다. 몸은 편해졌는데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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