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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Beijing, China (2015. 6. 30 ~ 7. 4)

2015. 9. 11. 18:21 | Posted by inu1ina2

마지막 여행이 3년짜리여서 그런지 2달짜리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어디 잠깐 둘러보고 온다는 느낌 정도. 생각해보면 그전엔 10주짜리가 가장 긴 여행이었었는데, 이런 것도 일종의 교만인가? 두 달이나 되는 본인의 가장 긴 여행길에 오르며 즐거워하는 일로나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두 달도 짧지 않은 여행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엔 가 봤지만, 배낭여행으로는 또 처음이니 또 다른 여행이 펼쳐지겠지. 그것도 아내와의 첫 배낭여행.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렌다.

메르스 때문에 체온이 높으면 중국 입국이 불허될 수 있다는 인천공항 관계자의 말에 평상시에도 약간 열이 있는 일로나는 노심초사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웨이하이 공항에 도착해 굉장히 바쁜 듯 열 감지 카메라를 재빨리 지나친다. 세르비아 여행객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입국심사대에선 언제나 일로나의 여권을 이리저리 뚫어지게 쳐다본다. 한참 만에 도장을 받고 공항 밖으로 나와서야 일로나는 웃음을 보인다.

우리의 첫 목적지인 베이징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가기 위해 많은 경로를 따지고 따진 끝에 인천에서 웨이하이까지 비행기를 타고, 웨이하이에서 베이징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웨이하이에서 베이징까지 기차만 16시간을 타야 하는 기나긴 길이지만 장기 여행에선 시간보다 경비가 우선이다. 사실 내겐 언제나 경비가 우선이지만…

한 달도 안 된 론니플래닛 개정판에 10위안이라던 공항버스비는 그새 20위안으로 올랐다. 중국은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대부분은 여기저기 지어지고 있는 고층빌딩 숲이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미리 예매한 기차표를 뽑는데 뭐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수시로 다운되는 컴퓨터에 맞춰 동료와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는 매표원의 모습에 울화통이 치민다. 한참을 기다려 표를 받고 근처 식당으로 간다. 오랜만에 먹는 진짜 중국 음식은 나름 먹을 만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6년 전 물가를 염두에 뒀다간 큰코다치겠다.

식사 후 장시간 기차여행을 위한 주전부리를 싸 들고 기차에 오른다. 큰 땅덩어리와 많은 인구 때문에 중국과 인도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기차 역시 인도의 그것을 생각하고 각오는 다졌는데, 이거 웬걸? 인도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다. 하긴 인도는 그만큼 저렴하니까 중국 기차가 낫다고만은 할 수 없지. 여하튼, 에어컨도 너무 잘 나와서 한여름임에도 이불을 푹 덮고 자야 할 듯하다.

포근한 잠자리에서 그야말로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기차는 어느새 베이징에 도착.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베이징 역에서 빠져나온다.

천안문 기차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사는 카우치서핑 친구와 연락이 됐는데 퇴근 후에 만나기로 해서 우선 시간도 보낼 겸 천안문으로 간다. 배낭을 맡길 데가 있으면 자금성 둘러볼 시간은 충분해서 일로나를 앉혀두고 코인록커를 찾아 자금성 주위를 배회한다. 커다란 문을 통과해 자금성 매표소까지 둘러보지만 코인록커 같은 건 없다. 투덜투덜 일로나에게 돌아가려는데, 문지기들이 길을 막는다. 천안문부터 자금성 방향으로 어떤 문이든 한번 통과하면 뒤돌아 나올 수 없는 시스템이다. 뭔 길을 이따구로… 하긴 옛날엔 이 문을 통과하면 다짜고짜 목을 쳤는데 이 정도면 다행인 건가? 옆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해자를 건너 궐을 쭉 돌아 다시 천안문으로 돌아오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리고 천안문에 다다르기 전 엑스레이 보안검사를 하느라 선 줄에서 30분을 기다리는 건 덤이다.

6년 전엔 없던 지점까지 보안검사가 생긴 걸 보니 어째 뭔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데 이렇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세우니 원. 확실히 6년 전보다 더 통제되고 있는 느낌이다. 인터넷도 차단된 사이트가 많은데, 이 많은 사람을 통제하려는 정부나 이 통제를 받아들이는 이 수많은 사람이나… 하긴 다른 나라 흉볼 때가 아니지. 어쨌든 한 시간 반을 걸어 다시 일로나와 재회한다. 코인록커는 없고, 이미 천안문을 또 통과했고… 배낭을 들고 다시 옆 문을 통해 해자를 건너 돌고 돌아 자금성을 빠져나온다.

날도 더운 데다 힘들고 지쳐 카우치서핑 친구와 만나기로 한 지점으로 일찌감치 이동해서 KFC 매장에 들어가 쉰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두 시간을 기다려 친구 제니를 만난다. 제니 집으로 가서 짐을 풀고 나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고 싶은데 제니가 임신을 한 몸이라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 날, 집 앞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본격적으로 베이징 관광을 시작한다.

나는 예전에 다 둘러본 곳이지만 일로나를 위해 다시 한 번 천안문 광장을 둘러보고,

자금성으로 간다. 다들 신분증을 내밀고 입장권을 사고 있어서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외국인이라 그런지 여권 없이 표를 샀다. 중국에선 무슨 입장권을 살 때도 그렇고 기차표를 살 때도 꼭 신분증 정보를 입력한다. 나라에서 뭘 이렇게 개인 정보를 긁어모으는지 모르겠다.

자금성은 전에 느꼈던 바대로 별 감흥이 없다. 이미 우리나라의 궁을 봤던 일로나도 슬렁슬렁 둘러본다.

자금성 북쪽에 있는 경산 공원에서 사진 한 방 박고,

옆에 있는 호수 공원으로 간다. 입장료 20위안. 뭘 어딜 들어가려고만 하면 입장료를 요구하는 통에 짜증이 난다. 별 볼 것도 없는 평범한 공원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니. 괜히 헛돈을 쓰고 나와서 싼리툰이라는 곳에 간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어쩌고저쩌고 한 곳이라는데 그냥 비싼 쇼핑, 클럽 지역이다. 여기저기 걸어 다니느라 힘들고 지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길바닥에 늘어진다.

너무 덥다. 여름철 도시 여행은 여러모로 힘들다. 대충 구경을 마치고 집 앞에 식당에서 맥주를 마신다. 베이징이라서 그런가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6년 동안 물가가 상당히 올랐다. 언능 시골 동네로 가고 싶다.

제니가 내준 방은 정말 작다. 방이 작고 꽉 막혀 더운 거야 신세 지는 입장에서 불평할 일은 아니지만, 임신한 몸에 소아과 의사라는 친구의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저분하다. 특히 화장실. 중국의 화장실 문화가 유난한 건 익히 알고 있다. 그래도 그렇지 수세식 변기의 수압이 약하면 기다렸다 두어 번 물을 내리던가 바가지를 이용하면 될 일을 꼭 그렇게 변기 안에 건더기를 남겨둬야 하는지… 하루 이틀 때문에 숙소 알아보고 짐 꾸리는 것도 귀찮고. 좀 짜증 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 늦잠을 즐기는 우리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집에서 나오게 된다. 겸사겸사 시간 버는 셈 쳐야지 뭐 어째.

중국에선 아침 식사가 단출하다. 보통 죽이나 만토우(속에 아무것도 안 넣은 찐빵)를 먹는다. 그래서 식당에서도 아침엔 그런 음식만 준비한다. 좀 든든한 밥을 먹고 싶어 들어간 중국식 페스트푸드 점에서도 비슷한 음식뿐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완탕스프를, 일로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덩어리 음식을 시킨다. 아마도 요거트나 치즈를 떠올렸나 본데 순두부였다. 대부분 서양인이 그렇듯 일로나도 흐물흐물 물컹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주문한 완탕스프에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고수가 뿌려져 있다. 우린 사이좋게 음식을 바꿔 먹는다.

식사 후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만리장성으로 향한다. 우리가 간 만리장성은 팔달령이다. 장성에 오르는 입구에서 북쪽과 남쪽으로 장성이 뻗어있다. 북쪽 장성에서 보이는 경치가 더 좋은지 케이블카나 슬라이딩카는 모두 북쪽 장성으로 향해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케이블카의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우리는 한적한 남쪽 장성으로 슬슬 걸어 올라간다.

뜨거운 날씨에 그늘도 없는 장성을 오르기가 걱정스러웠지만, 고도가 있어서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걸을 만하다.

사진으로 볼 때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쳤을 땐 그다지 감흥을 없던 만리장성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이거 굉장한 미친 짓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가만 보면 세상의 많은 유적지는 통치자가 백성을 고생시킨 그 정신 나간 야망의 크기에 비례해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조상의 그 고생으로 후손들이 이익을 얻는 셈 치면 되겠네 싶지만, 과연 그 수익이 후손들에게 돌아갈지 또 다른 통치자에게 돌아갈지 누가 알랴. 그런 의미에서 난 우리나라에 거대한 규모의 유적지가 없다는 것이 뿌듯하다. 있었는데 없어진 건지, 전혀 미학적이지 못해서 구경거리가 못 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만리장성 구경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유명한 왕푸징 거리로 간다. 일로나에게 재미를 주려고 간 왕푸징 노점상 거리는 많이 달라졌다. 전체적인 풍경은 비슷하나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이 이상한 벌레 곤충 꼬치에서 평범한 먹거리로 바뀌었다.

여전히 별스런 꼬치들이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만 끄는 이상한 음식들보다는 팔릴만한 음식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 대가로 관광객은 예전보다 덜 한 것 같다.

대충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와 근처 식당에서 맥주 한 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여행 중 절대 지나쳐선 안 되는 소중한 순간이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제니는 여전히 방구석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첫날 함께한 저녁 식사 말고는 아무런 교류도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런 친구를 만날 때마다 왜 카우치서핑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함께한 즐거운 경험이 너무 많아서, 이젠 공짜 숙소 그 이상의 기대를 하게 된다. 맘에 맞는 외국인 친구를 만나 하룻밤 만에 불알친구 대하듯 농담을 주고받는 그 즐거움은 진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큰 행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카우치서핑은 좀 실망스럽다. 그건 그녀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생각은 하고 사는 사람과의 만남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덕분에 물가 비싼 베이징에서 3일을 공짜로 묶었으니 그것에 감사하면 될 일이다.

빈집에서 짐을 챙겨 나온다. 기차역으로 간다. 목적지인 장예로 가는 기차가 매진이어서 우선 후오하우터로 가고, 거기서 다시 장예 행 기차를 타야 한다. 총 24시간이 넘는 장거리 기차여행. 중국은 참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