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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 Lijiang, China (2015. 7.12 ~ 7.14)

2015. 9. 28. 22:11 | Posted by inu1ina2

리장까지 24시간이 걸린다는 버스가 12시간 안에 도착할 속도로 쌩쌩 달린다. 두 차례 비싸고 맛대가리 없는 휴게소 식당에 서고, 해 질 무렵 드디어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꼬불꼬불 산길에 들어선다. 속도가 줄고 덜컹덜컹 비포장길이 간간이 나타난다. 그래도 여전히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속도다. 이러다 괜히 새벽에 도착하면 숙소를 어떻게 잡나 고민하는 찰라 버스가 어둑어둑한 작은 동네에 멈춘다. 운전기사가 뭐라 쏼라쏼라 떠들고, 그 말을 들은 승객들이 모두 내려 옆에 있는 허름한 여관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덩달아 들어가 소변을 보고 나온다. 기지개를 켜고 버스 옆 도로 난간에 주저앉는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근처에 서성이던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냐 물으니 운전기사가 자러 갔단다. 그래서 승객들도 다 자러 갔다고… 버스는 5시에 출발할 거란다. 뭐시라? 이 무슨 뭣 같은 경우가 다 있나. 장거리 버스 기사가 택배운송을 겸하여 예정된 도착시각을 10시간이나 넘게 걸려 도착한 경험은 있지만, 기사가 중간에 자러 가는 건 또 처음이다. 그것도 이런 허름한 여관이라니. 여관 주인과 모종의 계약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왜 중국 사람은 이런 상황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걸까? 5시간 눈을 붙이려고 여관비를 내기도 아깝고 해서 하릴없이 동네를 걷는다.

불이 켜진 작은 상점에서 어둑해진 동네를 떠도는 외국인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친다. 할 일도 없는데 잘 됐다 싶어 마지막 손님의 시중을 들고 있는 술집 주인에게 다가가 맥주와 꼬치를 주문한다. 당황하는 주인 내외와 손님에게 사람 좋은 웃음 한번 날려준다. 옆 테이블 손님이 담배를 권하지만 난 잠시 담배를 끊은 상태. 건배 제의로 담배를 대신한다. 여행객이 전혀 올 일 없는 시골 동네라 그런지 맥주값은 같지만, 꼬치는 꽤 저렴하다. 

여행 중에 일어나는 이런 의외의 상황들. 난 이런 게 너무 좋다. 일로나 역시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여행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재미있어한다. 기분 좋게 맥주와 꼬치를 먹고 나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망고를 한 봉지 건넨다. 버스 기사가 만든 이 짜증스러운 상황을 순박한 주인 내외가 좋은 기억으로 바꿔준다.

5시가 되자 기사를 비롯한 승객들이 다시 버스에 오르고, 버스는 예정된 시각에 맞춰 리장에 도착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 유명한 리장의 숙박비가 엄청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있었지만 그나마 다른 도시와 비슷한 오름세여서 다소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그래도 5년 만에 두 배 반이 올랐으니 짜증은 난다. 그런 물가 인상에도 사람은 북적북적거린다. 외국인은 거의 볼 수 없고, 다 중국 사람들이다. 유명한 여행지는 계속해서 입소문이 퍼져나가기 때문에 다시 그곳을 찾으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중에 꼭 여자친구와 같이 와야지 싶었던 그 넘쳐 흐르던 낭만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사람이 너무 많아 숙소 앞을 나서기가 짜증스러울 정도다.

여독을 핑계로 숙소에서 늘어지다 해 질 녘에 나와 동네를 걷는다. 오래된 건물과 조명, 여기저기 흐르는 냇물은 여전히 좋은 그림이지만, 어수선하긴 매한가지다. 조금만 중심가로 가면 무슨 연말연시의 명동을 걷는 느낌이고, 여기저기 크게 볼륨을 높인 스피커에서 쏟아져나오는 라이브 음악은 소음과 다를 바 없다. 예전엔 시끄러운 구역과 조용한 구역이 잘 나뉘어있어서 취사선택이 용이 했었는데, 그런 암묵적인 경계가 다 사라졌다. 리장을 맘껏 즐기려고 중심가에 숙소를 잡은 게 판단 착오가 됐다.

버스 터미널로 가서 샹그릴라행 표를 끊는다. 3박 이상을 계획했으나 2박만 하고 떠나야겠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피해 다니려니 주변을 빙빙 돌게 된다. 그렇게라도 리장의 한적함을 즐길 수 있는 게 다행인가? 몇 년 뒤면 이런 곳까지 관광객이 들어찰지 모를 일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음 일정을 위한 정보를 찾는다. 모든 게 너무 비싸다. 작은 구경거리만 있으면 모든 것에 요금을 징수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돈에 미쳐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시시콜콜한 것에도 경비를 고려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짜증이 나고, 그래서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된다. 정말 정떨어지려 한다.

해 질 녘의 숙소에서 기어 나와 사진을 좀 찍는다. 사람이 많아서 그렇지 앵글만 잘 잡으면 여전히 예쁜 색감의 사진이 나온다. 여자친구와 같이 왔으면 했던 그 느낌은 사진으로만 담는다.

역시 비싼 가격에 성에 안 차는 양과 맛의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짜증 난다. 내가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했던 그 초저예산 여행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 걸까? 그래, 어쩌면 어차피 변해가는 세상에서 뒷방 노인네 마냥 좋았던 과거의 추억만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되면 안 되는데… 아~ 그래도 중국은 좀 심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 나라의 저소득층은 그야말로 노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경이 이를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잖아 시진핑! 하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남의 나라 걱정할 상황이 아니지.

짐을 싸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고성을 빠져나와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뜨끈한 국수 한 그릇. 고성을 벗어나니 음식도 제 가격을 찾는다. 하지만 리장은 고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찾는 곳이 아닌가. 언제 또 리장을 찾게 될지… 기약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