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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Chengdu, China (2015. 7.8 ~ 7.11)

2015. 9. 25. 17:03 | Posted by inu1ina2

지긋지긋한 기차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29시간… 인도에서도 40시간 걸리는 기차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다. 덥고 먼지 많은 인도 기차 안에선 아무런 공상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멍한 상태가 된다. 난 그게 단지 환경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인도 기차와 비교하면 그 쾌적함이 특급 열차에 가까운 중국 기차에서도 역시 멍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장거리 여행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울, 부산을 무궁화호로 3번 왕복해야 한다고 생각해봐라. 그냥 짜증만 나지 즐거울 수가 없다. 중국 기차는 인도 기차와 달리 제 시각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청두역에 내려 연락된 카우치서핑 호스트 친구 숀을 만나러 남쪽 신도시 부근으로 내려간다. 만나기로 한 지하철에서 숀이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전화를 건다. 숀은 어제 오는 줄 알고 한참을 기다렸다고 한다. 날이 넘어가는 기차 이동 시간을 내가 착각한 탓이다. 다행히 숀은 짜증 내는 기색 없이 우리를 데리러 나온다. 서글서글하니 상대방을 편히 해주는 친구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숀의 집에는 그의 여자친구 코코와 어머니가 계신다. 어제 우리가 오는 줄 알고 청두의 명물인 훠궈를 준비했었다고 하는데 내 실수로 우리는 우리대로 아쉽고, 그쪽은 그쪽대로 귀찮은 상차림을 했다. 갑작스레 손님을 맞이한 상황이 돼서 저녁은 나가서 먹자는 걸 어머니께서 무슨 소리냐며 후딱 상을 차려주신다. 집밥은 언제나 맛있다.

청두에선 세 명의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숀은 카우치서핑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친구였는데, 첫 손님을 받게 됐다며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그게 마음에 들어 숀네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대게 경험이 많은 친구들보다 막 시작한 친구들이 손님에 관심을 더 쏟는다. 그래서 나도 보통 한두 번의 경험만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편이다. 숀은 아주 신이 났고, 그런 호스트를 만나는 우리도 즐겁다.

원래 청두는 여행 계획에 없던 도시다. 장예에서 윈난 지역으로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렸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촉한의 수도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탐방이 될 수 있는 곳이지만, 삼국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일로나에게 그 이야기를 다 해 줄 수도 없고, 그게 어디 말로 전달될 수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어설픈 영어로 설명하려면…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청두의 명물 판다를 보러 간다.

버스를 두 차례 갈아타고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판다 동물원에 도착한다. 

비가 살포시 내리는 대나무 숲을 거닐며 군데군데 연령별로 나뉘어있는 우리 속의 판다를 구경한다. 대부분 자고 있지만 자는 모습조차도 미소를 짓게 하는 마력의 동물이다. 간혹 깬 상태로 대나무 속을 뜯어먹고, 몸을 긁적이는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귀여운지… 생김새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웃음 자아낸다. 한 마리 집에 가져가 키우고 싶다. 누가 보든 말든 먹고, 싸고, 늘어져 자는 모습이 아주 태평스러워 그야말로 무위자연을 실천하는 동물이 아닐까 싶다.

난 여행을 떠날 때면 항상 문고판 ‘장자’를 챙긴다. 작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 좋고, 수백 번은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내게 큰 영향을 끼친 고전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일로나와 중국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장자’ 얘기가 나왔고, 일로나에게 영문판 ‘장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오늘 세상 편하게 유유자적하는 판다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어쩌면 장자는 판다를 보고 득도한 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득 스쳤다. 우리에 갇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판다가 땅을 치고 하소연할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판다 구경을 마치고 시내로 돌아온다. 버스터미널로 가서 리장행 버스표를 산다. 내일 표가 매진이라 하루 더 머물게 됐다. 터미널에서 숀을 만나 청두의 명물인 추안추안을 먹으러 간다. 청두에서 제일 유명한 추안추안 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양껏 꼬치를 먹는다. 추안추안은 먹고 싶은 꼬치를 골라 가져와서 육수에 담가 익혀 먹는 요리다. 예전에 청두에서 같은 요리를 먹고 이게 훠궈라 생각했었는데, 훠궈랑은 비슷하지만 염연히 다른 요리라고 한다.

딱 보기에도 꼬치를 형상화한 것 같은 한자 ‘串’는 ‘땅 이름 곶, 꿸 관, 꼬챙이 찬’이라는 여러 뜻과 음을 가지는데, 꼬챙이를 뜻하는 ‘찬’을 중국어로 말하면 ‘추안’이 된다. 그러니 이 요리를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하면, ‘꼬치꼬치’ 정도가 되겠다. 익힌 꼬치를 찍어 먹는 소스가 독특하다. 참기름 가득한 종지 그릇에 마늘 듬뿍, 중국의 검은 식초 약간, 그리고 고수를 넣고 섞는다. 물론 나는 고수는 넣지 않았다. 딱 봐도 열라 느끼할 것 같지만, 얼얼한 육수에서 익혀진 꼬치와 궁합이 아주 잘 맞아 느끼한 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 어련히 조화를 맞춰놓았을라고… 일로나도 나도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 후 펍 가서 맥주를 마신다. 

외국인이 많이 보이는 게 나름 트렌디한 곳인가 보다. 밥 잘 먹었겠다, 흥겨운 음악 흐르겠다, 좋은 친구 있겠다,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은 이런 분위기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숀이 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서 우리만 잠깐 달아올랐다가 진정하고 굳게 지갑을 닫는다.

그동안 나름 바쁘게 움직였다. 버스표가 매진된 탓에 생긴 하루는 아무런 일정 없이 편히 쉰다. 동네 어귀에 있는 강가를 거닐고, 강가 옆 야외 찻집에 앉아 낮잠도 자며 하루를 보낸다.

숀은 회사 워크샵을 간다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코코와 어머니는 자고 있는지 외출을 했는지 집이 조용하다. 우리는 조용히 짐을 정리하고 나와 버스터미널로 간다. 리장행 버스에 오른다. 이번 이동 거리도 24시간이다. 어휴…~ 지겨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