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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중국 여행을 계획할 때 티벳에 가는 일정을 잡았었다. 왠지 가보고 싶은 곳. 하지만 역시 경비문제로 티벳 여행을 포기했다. 퍼밋을 받아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신청할 수 없고, 여행사를 통해 퍼밋뿐만 아니라 차량, 운전사와 숙소까지 함께 구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3박 4일 투어가 우리의 한 달 경비에 육박하니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쓰촨성에 있는 티벳 마을들, 이를테면 캉딩, 타공, 리탕… 그런 마을을 고려했지만 교통편이 너무 안 좋고, 그럼 당연히 교통비가 부담스러워진다. 결국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에서 티벳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들 알다시피 샹그릴라는 중덴이란 도시에서 관광 유치 차원에서 개명한 도시다. 이름을 바꿨으면 샹그릴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시를 관리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뻔한 첫인상의 중국 도시다. 카우치서핑 친구와 약속 날짜가 어긋나서 첫날은 고성 부근에 호스텔을 잡았다.

짐을 풀고 고성 주위를 둘러본다. 맘에 든다. 리장이 잃어버린 듯한 그 정취가 느껴진다.

고성 중심 광장에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단체로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껴 같이 춤도 추고, 

광장 바로 뒤편에 있는 작은 절도 구경하고,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마니차도 돌려본다. 

작년 겨울 이곳에 큰 불이 나서 많은 건물이 불에 탔다고 하더니 여기저기에 공사 중인 건물이 보인다. 그 화재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둘러볼 동네를 줄어들었지만 한가로이 걷기엔 좋다. 이런 소소함이 좋다. 가만히 걷다 보니 현재 이곳 분위기가 12년 전 네팔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 타멜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방문했던 타멜은 리장처럼 번잡해졌던데, 지진 때문에 또 달라졌겠지. 어쨌든 이곳도 새로 짓고 있는 건물들이 완공되고, 곧 뚫린다는 기차까지 들어오면 여느 곳과 다름없이 번잡해질 게 뻔하다. 그래, 평범한 여행자에게까지 알려진 샹그릴라가 진짜 샹그릴라일 리는 없지. 그래도 더 번잡해지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이곳의 고도는 3,300m다. 고도 탓인가? 심장 쪽이 눌리게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왠지 모르게 호흡이 힘들다. 그래도 잠을 잘 잤다. 어제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아침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 짐을 싸고 카운터에 맡겨둔 후 고성을 가로질러 걸으며 식당을 찾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온통 공사 중이라 딱히 볼만한 게 없다. 고성을 벗어나 나타난 식당에서 윈난의 유명한 쌀국수인 미센을 먹는다. 예전 윈난 여행에서도 즐겨 먹던 건데 이제야 이름을 알아냈다.

식사 후 고성 광장에 있는 사원인지 박물관인지 눈에 보이는 건물에 들어간다. 

절 같아 보이던 건물은 국공내전 시절 홍군의 대장정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맞은 편 티벳 전통의학에 관련된 탱화스러운 그림과 자료들이 전시된 박물관엔 티벳 의상으로 코스프레한 한족들이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여행객을 상대로 열심히 약을 팔고 있다. 

비 때문에 딱히 갈 곳이 없어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티벳풍 인테리어와 조용히 흘러나오는 티벳 음악이 잘 어우러져 분위기가 그만이다. 비가 오는 날 이런 곳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좋은 선택은 별로 없다. 

두어 시간 동안 그렇게 한가로움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버스 터미널 부근에 사는 카우치서핑 친구 샌디를 만나러 간다.

샌디와 그녀의 남편은 딱 한눈에도 순박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는 게 보인다. 차를 마시고, 국수를 한 그릇 먹고 잠시 노닥거린다. 

비가 오니 뭘 할 수가 없다. 저녁엔 또 다른 카우치서핑 친구 아누쉬카와 브라이언이 온다. 샌디가 대접해주는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어울린다. 오랜만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니 그것 또한 즐겁다.

샌디는 끼니때마다 밥을 차려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살림살이가 뻔히 보이는데도 형편에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접한다. 이들은 언제나 가진 것 없이 베푸는 데 능숙하다.

샌디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다시 고성으로 간다. 근처 언덕에 절이 있다길래 헐떡거리며 언덕을 오른다. 

타르초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초라한 절(백계사)을 둘러보고,

별거 없는 샹그릴라 시내를 바라본다.

다시 고성으로 돌아와 어제 들렸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여전히 하늘하늘 비가 내리고 있다. 투어를 신청해 멀리 가지 않는 한 샹그릴라엔 더이상 볼 것이 없다. 샌디의 집으로 돌아온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또 샌디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야크 간이 메인인 훠궈가 차려졌다. 쓰촨의 유명한 훠궈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훠궈 가게가 많다. 샤브샤브 같은 요리뿐만 아니라 전골류의 요리를 죄다 훠궈라고 하는 것 같다. 식사 후에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노닥거린다. 인형극을 하는 아누쉬카의 깜짝 공연에 모두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사람과의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대화를 경청해주고 그 속에서 농담을 건네고… 우리가 바라는 샹그릴라는 어쩌면 멋진 풍경이 아닌 이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곳 샌디의 집이 내겐 그 어디보다 더 샹그릴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