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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지엔수웨이(Jianshui)로, 기차역에서 버스터미널로 이동 후 아저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는 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웬양(Yuanyang)으로, 웬양 버스 터미널 앞에서 합승 택시를 타고 한 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인 신지에에 도착한다. 쿤밍에서 이곳까지 오는 더 편한 방법도 있지만, 위의 방법이 가장 저렴하다.

신지에는 고도 1,700m에 위치한, 인도 다질링과 베트남 사파가 떠오르는 전형적인 산동네다. 일로나는 불가리아의 어느 산동네를 떠올린다. 산동네들은 다 비슷한 분위기인가 보다. 

이곳은 천 년을 넘게 대대로 일구어온 다랑논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지에가 개중 유명할 뿐이지 지역 전체를 다 합하면 다랑논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구글어스로만 봐도 기가 찰 정도다. 사실 수확을 끝내고 논에 물만 차 있는 겨울철에 와야 진짜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쉽게 그 멋진 광경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여행지를 때에 맞춰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근처에 온 김에 들렸다. 숙소 주인아줌마 말로는 지금도 멋있다고 하는데, 주인아줌마야 다 멋있다고 하겠지. 시기가 맞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날씨가 찌뿌둥하니 비가 내렸다 말았다 하고 있어서 비가 구경을 방해할까 걱정이다.

허름한 숙소 투어 프로그램에 맞춰 새벽같이 일어나 독일 할아버지, 프랑스 커플과 함께 봉고차에 오른다. 주인아줌마가 웬양제전을 잘 볼 수 있는 지점에 내려주고, 구경 좀 하다가 다른 지점으로 이동 또 구경하는 식으로 여기저기 둘러본다. 사진으로 봤던 겨울철의 장관은 아니지만, 또 그 나름대로 볼만하다. 날이 흐려 걱정이었는데, 그게 또 구름을 만들어 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이 차고 해가 쨍하면 엄청난 광경일듯하다. 겨울철 이 근방에 들릴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다시 찾아오고 싶다.

다른 엄청난 유적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산을 통째로 이렇게 만든 그 무지막지한 인간의 노력이 경탄스러워 입이 벌어졌다 한숨을 내쉰다. 산언저리라 기계도 쓰기 힘들 텐데 매번 모를 심고 수확할 때마다 얼마나 고될까?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산을 오르내리며 평생 농사를 해야 한다는 얘긴데… 내 상상으론 너무 끔찍하다.

여러 포인트에서 다랑논을 구경하고, 조상 대대로 이곳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을 찾는다. 산 중턱에 드문드문 무리 지어 있는 동네 중 하나다. 역시나 소수민족스러운 옷을 입은 여인네들이 눈에 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지 외국인에 대한 특별한 반응은 없다. 매일같이 누군가가 자기네 삶을 구경하러 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조상이 일궈놓은 논, 본인들의 삶의 터전은 관광지가 됐는데 정작 돈은 수완 좋은 여행 관련 업자들만 버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런 생각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이런 곳을 찾을 때마다 이거 대놓고 사진을 찍어도 무례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셔터를 눌러대지만, 단지 나만의 추억을 위해 그들의 삶을 염탐하는 짓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

그렇게 투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다. 원래 이곳을 둘러보려면 당연히 중국의 다른 곳처럼 100위안의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한다. 주인아줌마가 입장료 포함 한나절 차량 가이드로 150위안을 불러서 참여한 투어였는데, 아무래도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지점에 데려다주고, 돈은 자기가 다 챙겨 넣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온다. 뭐 이미 끝난 일정. 투덜거릴 타이밍은 지나갔다.

신지에에서 징홍(Jinghong)으로 가는 8시간짜리 버스에 오른다. 꼬부랑 산길을 달리니 약간 멀미기가 온다. 버스는 자정에 징홍에 도착한다. 길거리에 야자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게 아열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징홍은 시솽반나의 중심도시다. 시솽반나 지역은 버마 계통 소수민족이 많아서 작은 미얀마라 불리고,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볼거리도 많은 나름 유명한 관광지다. 하지만 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문화는 미얀마에 가서 볼테다. 하여 예약해둔 싸구려 호텔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버스터미널로 간다. 

하루에 한 대뿐인 루앙남타행 버스가 매진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차선책으로 염두에 뒀던 국경 근처 도시인 멍라(Mengla)행 버스에 오른다. 

3시간을 달려 멍라에 도착. 버스터미널에서 바로 국경 마을 모한(Mohan)행 버스를 탄다. 40분 뒤 모한에 도착해서, 터미널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국경으로 간다. 그리고 중국 여행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