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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라오스 국경을 넘는다. 국경 앞에서 봉고차 똘마니들이 목적지인 루앙 남타까지 찔러보는 수준을 넘어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한다. 아~ 이 새끼들 진짜… 하여튼 국경 앞에선 왜들 그렇게 사기를 쳐대는지… 축구 경기에서 시작 5분 종료 5분이 중요한 것처럼, 국경에선 도착하기 500m 넘어가서 500m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 GPS를 보니 600m 앞에 작은 마을이 있어 우선 그쪽으로 걸어간다.

작은 마을이라도 국경을 접하고 있으니 당연히 안쪽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을은 유령도시처럼 서늘한 기운만 내뿜을 뿐 버스 정류장이나 터미널 같은 건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면세점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값비싼 명품을 팔고 있는 점원에게 다가가 교통편을 물어본다. 

“여긴 버스 안 다녀요. 하하하.” 

뭐가 웃기다고… 다시 국경으로 가서 그 망할 봉고차를 타야 하는 건가? 히치하이킹을 하든 뭐든 잠시 기다려보기로 한다. 

가끔 나타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지만, 차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행여 잡힐까 빠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쳐간다. 잠시 후 로컬분위기가 확 풍기는 허름한 버스가 덜컹거리며 다가온다. 격하게 손을 흔들어 버스는 세우자 운전사를 비롯한 많은 승객이 창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우릴 바라본다. 

“루앙 남타?”
“루앙 남타!” 

운 좋게도 루앙 남타로 가는 버스다. 승객들의 짐으로 빼곡한 버스로 낑겨 들어간다. 다 떨어져 나무로 덧댄 허름한 미니 버스에 앉아 목청 좋은 라오스 아줌마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루앙 남타로 향한다.

갑자기 소나기가 몰아친다. 원래 동남아 지역의 우기는 확 쏟아붓고 그치는 스타일인데, 올핸 유난히 우리나라 장마처럼 지리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한다. 버스는 루앙 남타의 버스터미널에 우릴 내려준다. 루앙 남타 버스터미널이 맞긴 한데, 시내와 8km 정도 떨어져 있어 다시 뚝뚝과 흥정을 시작한다. 네 대의 뚝뚝 기사들이 모두 담합을 했는지 전혀 흥정할 태세를 취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금액만 불러댄다. 돌아서 터미널 한쪽에 앉아 궁리하는 중에 한 아저씨가 몰래 다가와 처음보다는 낮은 금액을 제시한다. 아마도 담합한 운전사들 사이에선 흥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비는 퍼붓고, 몸은 피곤하고 해서 그냥 웃돈을 주고 차에 오른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자 비가 잠시 그친다. 밖으로 나가 삼겹살 구이와 맛난 비어라오 한 병. 아~ 꿀맛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들에게 뼈도 몇 점 던져준다. 중국에선 좀 많이 아꼈다. 여행의 절반을 고생스럽게 했으니 이제는 소비의 폭은 좀 늘려볼 생각이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동네 한 바퀴 둘러본다. 무슨 에코 투어라고 해서 국립공원에 가고, 고산족을 만나고, 트랙킹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는 작은 동네다. 우린 당연히 산에 오르는 건 안 한다. 중국의 북적거림에서 벗어났으니 한적함을 좀 즐겨야겠다.

느지막이 일어나 일로나의 뜻에 따라 서양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에 간다. 일로나는 샌드위치를 나는 쌀국수를 시킨다. 당연히 이런 식당의 쌀국수는 비싸고 맛이 없다. 쌀국수는 모름지기 로컬 냄새 풀풀 풍기는 곳에서 먹어야 한다. 단지 저렴해서가 아니라 그런 데가 더 맛이 좋아서 찾는 건데 일로나는 서양식을 먹고 싶어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외국인 아내와의 문화 차이는 이런 데서 가끔 발생한다.

밥을 먹고 자전거를 빌려 동네를 좀 크게 돌아온다. 또 비가 쏟아진다. 자전거를 빌렸는데 하필… 

오전 내내 내리던 비는 오후에야 그친다. 동네 언저리에 보이는 작은 사원에 간다. 오전에 내린 비 때문에 사방이 다 진흙탕이다. 

별 볼 것 없는 사원을 둘러본 후 자전거를 반납한다. 갈 데도 없는데 괜히 후진 자전거 끌고 다니느라 고생만 했다.

미용실에서 머리 마사지해주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받고 싶다고 해서 일로나도 머리를 조금 자르고, 나도 좀 자란 머리를 민다. 머리 감겨주는 게 서비스가 아니라 더 돈을 내야 하는데 그만큼 정성스레 머리를 감겨주고, 한참 마사지도 해준다.

이제 이 동네서 더 할 일이 없다. 야시장에서 다시 삼겹살 구이와 비어라오. 

비어라오는 여전히 됫병에 그 맛을 유지하고 있다. 내 경험으로는 640ml의 맥주가 세련된 포장에 500ml로 바뀌는 순간 그 맛을 잃는다. 캄보디아의 앙코르비어가 그랬고, 중국의 많은 맥주도 그랬다. 하지만 비어라오는 여전히 그 용량과 맛을 유지하고 있다. 일로나도 맥주 맛이 맘에 드는지 한 잔 더 하자 해서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치열한 절약 정신은 술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서양인들이 많은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언젠가 파키스탄에서 몇 주 만에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이제 항상 내 옆에 있는 아내조차도 오똑한 코에 금발을 하고 있으니 가끔 나의 모습을 잃을 때가 있다. 과연 나란 존재는 나로부터 확립될 수 있는 것인가?

뚝뚝을 타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VIP 버스 티켓을 산다. 내 눈앞에는 허름한 로컬 버스가 한 대 있을 뿐인데 굳이 그게 VIP버스란다. 승차하려는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아줌마가 비닐봉지를 하나씩 건넨다.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신발 벗고 타야 하는 버스는 또 처음이다. VIP버스의 의미는 ‘버스가 VIP’ 였나보다. 어쨌든 이 버스님을 타고 우린 루앙프라방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