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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에 예약해 둔 숙소는 그럴싸한 수영장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수영장까지 딸린 숙소가 거의 최저가 수준이어서 약간 의심스러운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숙소의 위치가 중심가와 1km 떨어진 거 말고는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다. 방비엥에 도착에 GPS에 찍어놓은 숙소 지점에 도착한다. 허나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2km 더 외곽으로 가야 한단다. 뚝뚝을 타고 숙소에 도착한다. 숙소 주변엔 가게도, 식당도 없다. 수영장 딸린 최저가 게스트하우스… 다 이유가 있었다.

우선 짐을 풀고, 수영장에 들어가 고민한다. 중심가까지는 3km. 걷기엔 좀 무리가 있다. 너무 외져서 뚝뚝도 잘 안 다니고, 간간이 나타나는 뚝뚝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한다. 주인아줌마에게 자전거 대여를 물어보니 하루 빌리는 자전거 가격 보태면 중심가에 게스트하우스 가격이 나온다. 만약을 대비해 하루만 예약했으니 내일 숙소를 옮겨야겠다.

숙소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 뚝뚝을 잡는다. 이곳을 지나는 뚝뚝은 대부분 딴 일을 보고 중심가로 돌아가는 빈 뚝뚝임에도 왜들 그렇게 높은 가격을 부르는지… 매번 흥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큰 짜증이다. 중심가로 와서 동네를 둘러본다. 10년 전엔 강가에나 숙소가 좀 있던 한가로운 동네였는데, 완전 투어리스트 타운이 됐다. 언제나 다시 찾은 곳은 실망을 안겨준다. 천 년 전 한 여행기에도 다시 찾은 동네가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작가의 푸념이 있었다고 하니 인간이란 원래부터 과거의 기억을 아름답게 윤색하는 능력이 뛰어난 동물인가 보다. 내일 묶을 숙소를 하나 정해둔 후 다시 뚝뚝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수영장에서 나잇스위밍을 즐기려던 마음은 쌀쌀한 날씨가 빼앗아 가 버린다.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계속되고 있다. 짐을 챙겨 나와 뚝뚝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에게 히치하이킹을 시도하지만 라오스의 차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냥 지나친다. 가끔 지나가는 뚝뚝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한다. 한둘이 아니라 죄다 그런다. 3km에 50,000낍(약 7,100원)을 부르는데, 50,000낍은 이곳에서 다음 목적지인 150km 떨어진 비엔티안까지의 버스비다. 모두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보인다. 돈 맛을 알기 시작한 이들의 추잡함이란… 무분별한 여행객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게 본능으로만 반응하는 이들도 이젠 그리 달라 보이진 않는다. 비가 많이 와서 대충 흥정하고 뚝뚝에 올라탄다.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푼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숙소에 딸린 식당에 자릴 잡고 드러누워 밥을 먹고, 커피 한잔. 이곳의 식당들은 평상 스타일의 좌석이 있어서 늘어지기가 좋다. 그렇게 한동안 누워있다가, 강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늘어진다. 

계속 비가 내는 통에 뭘 할 수가 없다. 이곳에서 유명한 블루라군도 카약킹, 튜빙도, 어떤 것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애초에 푹 늘어지려고 이곳을 찾았다면 상관없지만, 뭔가 엑티비티를 기대하고 온 건데 이런 상황이라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여행사에 들려본다. 블루라군이야 루앙프라방의 꽝시폭포가 더 나은 것 같아서 패스. 튜빙은 물살이 너무 세서 금지. 카약킹만 할 수 있단다. 내일도 오늘처럼 비가 오면 딱 감기 걸리기 십상이지만, 그건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카약킹 투어를 예약한다.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이렇게 계속 비가 내리는 건 처음이다. 왜 하필 지금…

쌀쌀해진 날씨에 감기가 걸렸는지 일로나는 밤새 코를 풀며 뒤척였다. 나도 덩달아 잠에서 깨며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무색하게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다. 종일 물속을 들락거려야 하는 투어를 강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일로나의 감기 기운도 걱정이고, 나도 쌀쌀한 날씨에 물에 들어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아 여행사에 가서 예약을 취소한다. 생각보단 수수료를 덜 떼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침을 먹고 하릴없이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비가 그쳤다 내렸다 한다. 비가 잦아들면 카약킹 할 걸 그랬나 싶었다가, 다시 쏟아지면 안 하길 잘했다 싶은 마음이 교차한다. 역시 동네엔 딱히 볼 게 없다. 방비엥은 경치 좋은 강변에서 튜빙이나 카약킹하는 거 빼면 별거 없는 시골 동네다. 다시 강가 옆 식당에 간다. 강물이 엄청나게 불었다. 어제 사진과 비교해보니 최소 2m는 수위가 올라간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조금씩 불어나고 있다. 너무 할 게 없으니 이것도 구경거리라고 범람한 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

이번 방비엥 여행은 한마디로 ‘망했다’. 버스를 타고 비엔티안으로 향한다. 버스는 여전히 안 좋은 길을 쿵쾅거리며 달린다. 비엔티안에 가까워지면서 푸른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연락된 카우치서핑 친구에게 연락한다. 친구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남은 라오스 돈도 소비할 겸 오랜만에 대형 피자 체인점에 들어간다. 무지하게 비싸게 느껴지는 2만 원짜리 피자를 시키고, 세 시간을 보낸다.

6시에 친구 로힛을 만난다. 로힛은 이곳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인도인이다. 가벼운 담소를 나눈다.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가겠냐는 걸, 일로나의 상태가 좋지 않아 거절한다. 로힛이 나가고, 우리만 집에 남아 태국 여행 정보를 찾는다. 비엔티안엔 볼 게 없다. 내일 바로 태국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이제 그 그리운 푸른 바다가 코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