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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늦은 술자리 다음날이 그렇듯 술 똥 한판 때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모두들 낮잠을 자는 사이 그 동안 미뤘던 자전거를 점검한다. 바퀴를 분해해 자전거를 깨끗이 닦고 기름칠을 한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 다음은 빨래를 한다. 몽골 와서 처음 하는 빨래다. 어제 샤워도 마찬가지. 한국에 있을 때 난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술에 취해도 샤워를 하지 않고 잔 적이 없을 만큼 깔끔 떠는 놈이었다. 이제 여행 세 달도 안돼 일주일에 한번 속옷을 갈아입는 것 조차 사치로 느껴질 만큼 이 여행에 적응해 있다.

40일 동안 외출복, 평상복, 잠옷이 같은 옷이었다. 끔찍하다고? 맞다. 그렇다. 열라 끔찍하다. 쫄바지 같은 내복을 그렇게 계속 입으면 다리의 털이 눌려 살 속을 파고들어 다리에 뽀드락찌처럼 무언가가 일어나는 현상이 생긴다. 죽을 병은 아니니 다행. 40일 동안 수염을 깍지 않으면 밥을 먹을 때마다 수염이 따라 들어온다. 40일 동안 파란색 트레이닝 복 바지를 입고 있으면 포토샵 잘못한 듯 녹색끼 가득 광택 나는 바지가 된다. 40일 동안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겨드랑이 부분의 면이 마처럼 굳어진다. 어제 오늘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됐다. 자랑할만하지 못한 그 기록이 다시 갱신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 저녁을 먹고 왔지만 구준함이 가시지 않아 떡볶이를 해 먹는다. 한국 생활에 익숙한 제기 집에는 고추장과 고추가루가 있다. 떡이 없었지만, 밀가루 반죽을 길게 뽑아 흉내 낸 떡볶이를 만든다. C 45-1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지라 고추가루를 잔뜩 넣었더니 제기를 제외한 다른 몽골 친구들은 인상을 쓰며 수저를 내려 놓는다. 덕분에 배불리 배를 채운다. 한 병씩 먹자며 제기가 사온 맥주를 마시다 또 판이 커진다. 사실 말도 안 통하는 남자들끼리 않아서 뭘 하겠는가? 술은 자연스레 모두를 즐겁게 만드니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나 또한 술을 좋아하기도 하니 두말할 나위 없다.C 45-2

나도 고기를 좋아하지만 몽골 사람들의 고기 사랑은 따라 갈 수가 없다. 난 통풍이란 지병을 갖고 있는데, 이 병은 나름 불치병이라 식이 요법을 잘 해야 한다.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단백질 과다 섭취라 육류 금지, 그리고 술, 그 중에서도 맥주는 아주 쥐약이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고기 안주에 맥주를 계속해서 먹는 상황을 맞고 있다. 굳이 피하고 싶지 않다. 퉁풍 발작이 오면 한 열흘간 산고와 비견된다는 통증이 오지만 그 까이거 때문에 이 즐거움을 놓칠 순 없다. 열흘 아프면 그만. 어차피 그런 마음 가짐이 아니었더라면 떠나지도 못했을 여행이다. 40일 동안의 찝찝함도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행에서 얻는 즐거움에는 그런 댓가가 필요하다.